아름다운 조명과 색색의 한복에 눈을 빼앗긴 것도 잠시, 관객은 이내 귀를 열고 배우들이 쏟아내는 깊은 소리에 빠져들었다. 지난 14일 개막한 국립창극단의 신작 ‘춘향’은 ‘오랜만에 듣는 창극을 만들어 보이겠다’던 연출진의 다짐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배우들의 소리를 오롯이 담아내는 데는 음악의 힘이 컸다. 그 소리의 길에는 김성국 음악감독의 고민이 녹아 있다. 김 감독은 첫 공연 직후 “오로지 소리를 돋보이게 하는 데 이번 작업의 방점을 찍었다”며 “그런 시도가 무대에 잘 드러났다면 다행”이라고 전했다.
김 감독이 이번 작업에서 강조한 것은 ‘선율’과 ‘장단’이다. 선율은 배우의 목소리에 맡기고, 관현악기의 선율 표현은 최소화했다. 악기들은 대신 판소리의 소리북처럼 장단을 부각하는 데 초점을 뒀다. 멜로디보다는 타악기적 기능에 집중해 북 반주와 같은 역학에 집중한 것이다. 김 감독은 이를 “소리북의 확장”이라고 표현했다.
서양 악기와의 적절한 조화도 돋보였다. 이번 공연의 악기 편성은 북, 대금, 피리, 거문고, 아쟁, 가야금 등 국악기에 피아노(건반), 기타, 신시사이저 등 서양 악기가 더해졌다. 김 감독이 건반과 기타를 편성하면서 세운 원칙은 ‘코드 패턴의 지양’이다. “코드 반주로 흘러갈 경우 개별 악기로서의 선율 표현에 그칠 수밖에 없고, 음악적인 이질감이 커집니다. 전체 음악과 어울릴 수 있는 악기별 리듬을 찾아내서 편성하는, 국악기와 양악기의 ‘블렌딩’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김 감독은 장단이 지닌 다양한 결을 부각하고, 입체감을 주기 위해 음악의 ‘레이어(layer)’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예컨대 몽룡이 암행어사 출두하는 장면에서는 국악기는 물론이요 기타 반주 위에 건반 두 대로 톤이 다른 베이스 음색을 더해 박진감 넘치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렇다고 악기의 멜로디 표현이 아예 사용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춘향가의 백미 ‘사랑가’에서는 서정적인 피아노 반주가 배우들의 노래와 어우러져 감정을 극대화한다. 춘향이 몽룡을 떠나 보내며 부르는 ‘이별가’의 장면에서도 피아노의 애절한 반주가 귀에 박힌다. 이를 위해 김 감독은 피아노 연주자에게 “피아노가 극 전체의 상상력을 심어주는 역할을 해달라”는 주문을 했다고 한다. 그는 “최근 서양 악기를 사용하는 국악 공연이 늘어나고 있지만, 자칫 전통 음악 고유의 장단과 동떨어진, ‘갓 쓰고 자전거 타는 느낌’의 음악이 만들어질 수 있다”며 “작·편곡 과정에서도 이런 부분에 신경을 썼다”고 했다.
소리에 대한 김 감독의 고민과 색다른 시도가 담긴 창극 ‘춘향’은 24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만나 볼 수 있다.
/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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