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유행했고, 한국에서도 잊히다시피 했던 민화에 대한 서구 미술관들의 관심이 뜨겁습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뮤지엄(MET), 로스앤젤리스(LA)의 라크마(LACMA), 샌프란시스코아시아미술관 등 굵직한 기관들이 민화를 전시했고 소장품으로 수집했습니다. 민화가 갖는 시각적 특성이 여느 그림들과 다르게 그래픽아트 같은 현대성이 있어서 인테리어나 제품 디자인 등 다른 분야와 접목하면 더 큰 영향력을 드러낼 수 있을 것입니다.”
변경희 뉴욕 패션기술대학교(FIT) 교수는 한류를 이끌 K아트의 선두주자로 민화를 꼽았다. 올봄 뉴욕 FIT 내 미술관에서 개최할 민화전을 기획했으나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전시 개막을 연기한 변 교수는 “17세기 네덜란드 화가들의 정물화에 등장하는 튤립과 민화의 모란은 매력적이고 큰 행운을 뜻하는 여러 공통점을 갖고 있어 서양에서 공감의 기반을 확보하기 쉽다”면서 “로버트 인디애나의 유명한 작품 ‘사랑(LOVE)’나 지금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작가 제니 홀저를 비롯해 브루스 나우만, 에드 루샤 등의 문자(text)를 이용한 작품과 민화 ‘문자도’의 접점을 찾는다면 해외 미술계가 한층 가깝게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민화에는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아이콘이 있어 관람객이 익숙한 유형을 확보하고 다른 작품을 감상할 배경을 형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2008년 MET에서 책거리 전시를 기획한 이소영 큐레이터(현 하버드대학 프리어갤러리 관장)는 서구에서 책가도가 인기를 끄는 이유로 “책은 누구나 좋아한다”는 보편성과 “동양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물건들이 가득하다”는 한국적 특수성을 언급했다. 민화전문가로서 최근 신간 ‘책거리’(다할미디어 펴냄)을 출간한 정병모 경주대 초빙교수는 민화를 그룹 방탄소년단(BTS) 못지 않은 한류의 선봉장이 될 것이라고까지 예상했다. 지난 2016년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린 ‘조선 궁중화·민화 걸작-문자도·책거리’ 전시기획에 관여한 정 교수는 이 전시가 클리블랜드미술관 등 현지 순회전으로 이어져 현지 언론과 학계의 호평을 얻어냈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이들 전시를 통해 이전까지 존재감 없던 민화가 미술사가들에 의해 재발견됐고, 한국적 이미지로 재창조돼 동북아 문화사를 새롭게 보는 장을 열어줬다”면서 “미국 3대 박물관 중 하나인 시카고 아트인스티튜트가 소장품 도록(2017)을 간행하면서 폴 세잔의 정물화와 ‘한국의 정물화’라고 소개한 민화 책거리를 나란히 소개한 것은 세계화의 가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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