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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기지 이전, 원룸 이사 아닌데..." 샌드위치 韓기업 발동동

[美 "反中동맹 참여, 한국에 제안" ]

한중 교역비중 높고 코로나 계기로 관계 더욱 밀접

美 '한국, EPN 참여 땐 中 타격 크다' 판단한 듯

韓기업 양쪽 모두 주요 수출국...절충점 마련 고심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지난 1979년 수교 이후 최악으로 치달으며 신냉전에 접어든 가운데 미국이 한국에도 반중국 전선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면서 한국 정부를 비롯한 동맹국들의 고심이 깊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미중 패권전쟁의 양상이 과거 미국과 소련의 냉전 시대처럼 동맹국들까지 동원해 진영 대결로 형성될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최근 “중국과 모든 관계를 끊을 수 있다”는 초유의 발언을 한 것도 이미 중국과의 정치·경제적 공급 체인을 본격적으로 떼어내는 작업에 들어갔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외교 전문매체 포린폴리시(FP)는 이를 미국과 중국의 ‘대결별(Great Decoupling)’로 표현하기도 했다.

실제로 미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것으로 나타나자 이를 낮추기 위한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마스크나 산소호흡기 등 필수 의료장비 등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었음이 드러난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나온 구상이 친미(親美) 국가들로 구성된 경제 블록인 ‘경제번영네트워크(Economic Prosperity Network·EPN)’다. 미국은 여기에 한국을 비롯해 일본·인도·호주·뉴질랜드·베트남 등 우방국까지 참여시켜 탈중국 전략을 가속화한다는 방침이다.

EPN은 미국이 중국에 타격을 가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평가가 나온다. EPN을 통해 중국 내 생산기지를 미국으로 회귀하거나 한국·인도·베트남 등 미국이 신뢰할 수 있는 국가들로 유도할 경우 중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 판도가 완전히 뒤바뀔 수 있다. 특히 한국은 중국과의 교역 비중이 높고 코로나19를 계기로 중국과의 관계가 더욱 밀접해진 대표적인 국가다. 그만큼 한국이 EPN에 참여할 경우 중국이 입는 정치적·경제적 타격은 매우 클 수 있다는 점을 미국이 계산했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EPN 추진 과정에서 디지털 사업, 에너지와 인프라에서부터 연구·무역·교육·상업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신뢰할 수 있는 국가의 기업·시민사회단체와 협력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인 대만의 TSMC는 120억달러(약 14조7,000억원)를 투입해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탈중국화에 부응하고 나섰다. TSMC는 또 미국 상무부가 중국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를 겨냥해 수출규제를 강화한 15일(현지시간) 이후 화웨이의 신규 주문을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미 상무부는 제3국에서 제조한 반도체라도 미국의 기술을 활용했다면 중국 화웨이에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재 조치를 발표한 바 있다.



미국은 한국에 대해서도 반(反)화웨이 대열에 동참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키스 크라크 미 국무부 경제차관은 20일 국무부 콘퍼런스콜에서 한국에 화웨이의 5세대(5G) 장비를 사용하지 말라고 요구했으며 지난해 11월 방한 당시 국내 이동통신사 관계자들에게 화웨이의 제품을 쓰지 말아 달라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화웨이 통신장비에 탑재된 소위 ‘백도어’를 통해 중요한 정보가 중국으로 빠져나가는 것으로 의심되는 만큼 한국이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면 민감한 군사정보를 공유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의 ‘탈중국 공급망’ 동참 요구에 재계를 비롯한 우리 기업들은 현실적인 절충점을 찾느라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재계는 자칫 트럼프 행정부의 탈중국 압박 후폭풍에 휩쓸리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1일 재계와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 1월부터 4월까지 우리 기업이 중국에 수출한 규모는 393억6,084만달러로 같은 기간 미국에 수출한 243억73만달러를 웃돌았다. 무역수지를 따져도 한국은 중국을 상대로 168억달러를 남긴 데 반해 미국에서는 29억달러 남기는 데 그쳤다. 이 같은 추세는 2003년 대중 수출액이 대미 수출액을 제친 이래 계속돼왔다.

재계는 이날 발언에 대해 탈중국 공급망의 한 축을 한국에 떠넘기려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라고 평했다. 이원석 한국무역협회 통상지원센터 팀장은 “EPN 참여 제안은 중국을 고립시키려는 미국의 정치적 제스처”라며 “기업의 생산기지 이전은 원룸 이사하듯 이뤄지는 일이 아니다. 기업들은 14억명의 시장을 바라보고 중국에 간 만큼 즉각적 ‘탈중국’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노희영·박성규·이수민기자 nevermin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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