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 7년 혜성이 동쪽에서 나타나 북쪽으로 이동하더니 5월에는 서쪽에서도 보였다.’ 사마천이 지은 ‘사기’의 본기 6권(진시황 본기)에 나오는 기록이다. 서력으로 환산하면 기원전 240년 5월25일, 중국인들이 목격한 혜성은 페르시아와 바빌로니아에서도 봤다고 한다. 1,952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1682년, 영국의 26세 젊은이도 같은 별을 보고 놀랄 만한 결론을 내렸다. ‘이 혜성은 이전에도 무수히 왔다. 1531년과 1607년의 혜성과 동일한 혜성이다. 1758년에 다시 올 것이다.’ 예언대로 1759년 혜성이 나타나자 사람들은 혜성에 그의 이름(에드먼드 핼리)을 붙였다.
사기의 기록은 문헌에 남은 최초의 핼리 혜성(Halley’s Comet) 관측으로 손꼽힌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466년 관측했다는 ‘별처럼 생긴 꼬리’가 바로 핼리 혜성일 것이라는 최근의 추론도 있으나 근거가 약한 편이다. 저술로 ‘기상학(Meteorologica)’을 남겼지만 혜성은 잘못 짚었다. 우주가 불변의 진리(이데아)로 구성됐다고 확신했기 때문일까. 불규칙이란 없다던 그는 혜성을 기상이변 정도로 여겼다. 동양은 조금 달랐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혜성을 불길한 징조로 봤지만 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사마천의 사기에도 혜성 등장 이후 진시황의 장군과 조모(祖母)가 죽었다는 기사가 뒤따른다. 천재지변과 군주의 덕이 맞닿는다는 천인상관설(天人相關說)이 녹아 있다. ‘핼리 혜성과 신라의 왕위쟁탈전(서영교 지음)’에 따르면 수많은 정변과 해상왕 장보고 세력의 와해까지 혜성과 관련이 깊다. 심상치 않은 별 무리가 나타나면 권력자들은 몸을 낮췄다. 조선왕조실록에도 혜성 기록이 103개가 나온다. 고려사에는 이런 대목도 있다. ‘혜성이 나타나자 왕이 사면령을 내리고 스스로 반성하며 선정을 베풀었다. 혜성은 재앙이 되지 않았다(고려 성종 8년·989년).’
유럽의 지적혁명 덕분에 타원운동과 혜성의 주기적 방문이 규명됐으나 막연한 공포 역시 주기화하고 있다. 핼리 혜성의 거대한 꼬리에 지구가 묻혀 독가스로 멸망할 것이라고 우려했지만 2010년 지구 일부가 꼬리에 들어갔는데도 아무 일도 없었다. 지난 1997년에는 4,210년마다 지구를 도는 장주기 혜성의 꼬리에 위치한 신의 우주선에 오르겠다며 미국인 광신도 38명이 자살한 적도 있다. 굳이 멀리 갈 것도 없다. 전염병으로 지구촌이 신음하는데도 선거용 패권 다툼과 편 가르기에만 골몰하는 지도자도 있다. 천인상관설을 공부하고 근신하면 좋으련만.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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