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에 서울 아파트값이 꾸준히 상승했지만 돈 한 푼 쓰지 않고 집을 장만하는 데 걸리는 기간이 지난해 말보다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12월 말에는 14.5년이 소요됐는 데 올 1월에는 13.6년으로 단축된 것. 이유는 통계청이 새로운 통계 기준을 적용하면서 소득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피부로 느끼는 소득은 줄거나 제자리 걸음이고, 집값은 강남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줄곧 상승하고 있다. 통계 수치 변경이 현실과는 다른 모습을 만들어 낸 것이다.
◇ 줄어든 PIR, 14.5년에서 13.6년으로 = 26일 KB 부동산에 따르면 올 1월 기준으로 서울에서 중간값 주택(3분위 주택가격)을 사려면 중산층(3분위 가구소득)이 13.6년간 한 푼도 쓰지 않고 돈을 모아야 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KB 부동산이 집계한 ‘소득 대비 주택 가격 배율(PIR)’ 결과다. 3분위 기준 PIR 값은 지난해 12월 14.5년으로 2008년 12월 KB가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데 이어 올 1월 13.6년으로 1년 가량 뚝 떨어졌다. 이 지수는 KB국민은행이 대출거래자 정보로 작성하는 ‘실질 PIR’과는 다른 수치다. ‘KB 아파트 PIR’ 지수보다 소득 기준 수치가 더 정확하다.
PIR 배율은 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집을 사는데 까지 걸리는 기간이다. 흥미로운 것은 1월 서울 주택값이 상승했다는 점이다. 서울의 중간 수준의 주택(3분위)의 평균가격은 지난해 12월 7억 6,043만 원에서 올 1월 7억 6,797만 원으로 754만 원 올랐다. 집값 상승에도 불구하고 올 들어 PIR 배율이 낮아진 것은 통계청이 지난 21일 발표한 1·4분기 가계동향조사결과에서 새로운 통계 기준을 적용하면서 소득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KB의 PIR 지수를 구할 때 쓰는 소득 정보는 통계청의 가계동향 조사를 바탕으로 한다.
◇ 구매력 지수도 현실과 달라 = 통계청은 이번 가계소득 조사에서 표본설계와 조사 방법을 변경했다. 이 기준을 적용해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1·4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1·4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535만 8,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7% 늘었다. 특히 코로나19 위기 속에서도 소득 하위 20%(1분위) 가구의 벌이도 줄지 않았다. 월급이 줄긴 했지만, 기초연금 같은 정부 지원 등으로 소득 자체가 떨어지지는 않았다는 것이 통계청 설명이다. 더불어 새로운 기준을 적용하면 5.26배였던 1분위와 5분위 간 소득격차도 4.64배로 낮아졌다.
가계 소득이 늘면서 지난해 12월 42.7까지 떨어졌던 서울 아파트 구매력지수(HAI)도 올 1월 들어 45.0로 뛰어올랐다. 이는 서울 아파트값이 갓 폭등을 시작하던 3년 전 수준의 구매력이다. 주택 구매력지수는 중산층이 중간가격 아파트를 살 때 받은 대출을 상환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며 숫자가 높을 수록 구매력도 높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3분위 가구 기준 소득이 지난해 4·4분기에는 430만 원 정도 됐는데 표본설계와 조사방법이 변경되면서 이번 통계에는 470만 원 수준으로 나타났다”며 “소득이 개선된 수치가 나오면서 PIR 지수나 HAI에서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김흥록기자 ro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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