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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하지만 강력하지 않았던 트럼프…홍콩 특별지위 박탈회견 독해법 [김영필의 3분 월스트리트]

홍콩 특별지위 박탈한다는 의미 크지만

시장, “예상보다 심각하지 않아” 제한적 평가

조치 순서·구체적 내용 설명 안 해 불확실

블룸버그, “거의 어떤 조치도 당장 안 일어나”

위구르 인권법안 서명 문제도 언급하지 않아

그럼에도 미중, 당분간 최악 치달을 수밖에 없어

두 나라 본격적인 수싸움은 지금부터 시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강행에 따른 대응 조치를 내놨습니다. 그는 이날 “홍콩 특별지위 박탈 절차를 시작하라고 지시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국제금융도시로서의 홍콩의 지위를 뒤흔들 강력한 한 수죠. 그런데 회견 전까지 비틀거리던 증시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후 상승했습니다. 실제 이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은 전날 대비 14.58포인트(0.48%) 오른 3,044.31, 나스닥은 120.88포인트(1.29%) 상승한 9,489.87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다우지수도 트럼프 대통령 회견 직후 상승 반전했지만 막판에 소폭 하락(0.07%)하면서 마감했습니다.

시장이 잘못된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회견 내용이 강력하지만 강력하지 않았던 데 이유가 있습니다. 이날 트럼프 회견은 단어 하나하나를 곱씹어서 봐야 할 정도로 고도로 계산된 발언이었습니다.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내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 후 S&P 500을 포함해 주요 지수는 되레 상승했다. /AFP연합뉴스




칼뽑은 트럼프 행동 나섰다…홍콩 국제금융·무역중심지 흔들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홍콩의 특별지위 박탈과 관련해 “오늘 발표는 범죄인 인도조약에서 기술 사용에 관한 수출통제, 그리고 더 많은 것까지 거의 예외 없이 홍콩과 맺고 있는 모든 범위의 협정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중국의 국가안보장치로 인해 감시 및 처벌 위험이 증가된 것을 반영해 국무부의 여행권고를 개정할 것이다. 중국의 다른 지역과 달리 관세와 여행에서 홍콩에 제공한 우대를 폐지하는 조처를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홍콩의 자치권 침해에 연루된 중국과 홍콩의 당국자를 제재하겠다고 했죠.

중국의 산업기술 탈취 문제를 지적하면서 유학생 입국 중지를 위한 포고문을 발표하겠다고도 했습니다. 앞서 뉴욕타임스(NYT)가 인민해방군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중국 유학생의 비자를 취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는데 이 내용인 듯합니다. 이는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 중국도 비슷한 수준의 보복조치를 취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금융거래소에 상장된 중국계 기업에 미국의 회계 및 감사 기준을 준수하도록 의무화하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특별지위와 관련해 범죄인 인도와 관세, 무역, 비자 등 주요 내용이 모두 포함되는 만큼 강력한 보복조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더 이상 홍콩과 중국을 분리해서 보지 않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죠. 트럼프 대통령 자신도 이날 “강력한 조치”라고 자신했죠.

이제 분석을 해보겠습니다. 특별지위 박탈이라는 용어에서 오는 충격이 크지만 차분히 들여다보면 지금의 상황을 오롯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독해 포인트 5가지를 짚어보겠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중국 관련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그는 홍콩 특별지위를 박탈 절차를 시작하라고 지시했다고 했는데 구체적인 내용이나 시한은 언급하지 않았다. /USA투데이 방송화면 캡처


①“박탈 절차를 ‘시작’하라고 지시하고 있다”

→해석: 트럼프 대통령은 대중 관계에서 움직일 공간을 남겨 뒀다. 시간벌기 측면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별지위 박탈과 관련해 거의 모든 분야가 될 것이라고 했지만 지금부터 ‘시작’하라고 지시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반면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보건기구(WHO)에 대해서는 오늘(Today)부로 관계를 종료(terminate)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니까 긴급하고 중대한 상황이면 당장 지금부터 하겠다거나 아니면 언제부터 전면 종료라고 못 박아서 얘기해야 합니다.

지금부터 시작한다는 얘기는 앞으로 시간이 걸린다는 뜻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한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시한을 정해두면 스스로를 옭아맬 수 있기 때문이죠. 물론 이 조치들이 이르면 다음 주부터 곧바로 시작될 수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불분명합니다. 곧바로 할 거였으면 이날 공개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미 경제방송 CNBC는 “트럼프 대통령은 정확히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 또 어떤 순서로 할 것인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며 “추가 해명을 백악관에 요구했지만 대변인은 언급을 피했다”고 했습니다. 블룸버그통신은 “거의 어떤 조치도 당장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②행정명령 얘기가 없다

→해석: 세부조치의 폭과 수위가 지금으로서는 불분명하다. 단계적 접근을 취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홍콩에 적용 중인 특별지위를 박탈하고 이에 따른 혜택을 종료하려면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있어야 합니다. 1992년 미국 홍콩정책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특혜 일부를 중단하거나 전면 취소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이날 기자회견에 행정명령을 내리겠다는 부분이 없다는 겁니다. 박탈절차를 시작하라고 한 게 그 얘기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그게 그렇지는 않습니다. 홍콩의 특별지위를 없애는 중차대한 사안이기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회견 내용이 그만큼 불확실한 부분이 많다는 뜻입니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의 성명으로는 그가 공식적인 행정명령을 내려 홍콩의 특별지위를 끝낼지 불분명하다”며 “트럼프 정부는 최종적이고 극적인 절차를 밟기 전에 중국산에 하듯 홍콩으로부터 오는 상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단계적 접근을 취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③미중 무역합의 얘기는 없었다

→해석: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을 앞두고 무역합의를 끝까지 지키고 싶어한다



이날 회견의 중요한 포인트 가운데 하나가 미중 무역합의였습니다. 최악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먼저 무역합의 파기를 선언하거나 합의이행을 꾸물거리는 중국을 강하게 질타하며 또다른 압박을 내놓을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합의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월가와 워싱턴 정가에서 계속 제기해왔듯 트럼프 대통령은 아직 무역합의에 대해 미련을 못 버렸기 때문입니다. 11월 대통령 선거와 빠른 경기회복을 고려하면 중국의 미국산 수입확대가 필요합니다. 어떻게 보면 무역합의와 홍콩 문제를 분리해 대응하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홍콩 문제에 무역합의가 엮이면 중국 정부 입장에서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겠죠. CNBC는 “중국과의 무역협상에 아무런 변화도 없다는 신호에 투자자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S&P가 올랐다”고 전했습니다.

지난 22일 전국인민대표대회 회의장에 들어서는 시진핑 국가주석.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홍콩 특별지위 박탈 카드를 꺼낸 만큼 중국 지도부가 어떻게 대응할지가 관심사다. /로이터연합뉴스


④시진핑 국가주석 언급도 빠졌다

→해석: 감정싸움으로 치달아 최악의 상황으로 가는 것은 피하자는 의도

비슷한 맥락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 대한 비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앞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좋은 관계지만 지금은 대화하고 싶지 않다”며 직접 불만을 드러냈던 트럼프 대통령입니다. 그러나 이날은 시진핑 주석을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정부의 불법행위의 결과로 세계가 고통받고 있다고 말했지만 시진핑 주석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다”며 “그는 중국인들이 미국의 지적재산과 일자리를 훔쳤다고 지적하고 전임자들이 이를 놔둔 것을 맹비난하며 친숙한 불만만 되풀이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와 별도로 트럼프 대통령은 상원과 하원을 통과한 위구르 인권법안을 서명할지 여부도 밝히지 않았습니다. 위구르 인권법안 시행은 시진핑 주석을 포함해 중국 지도부를 자극할 가능성이 지배적이지요. 지난해 홍콩 인권법 때도 트럼프 대통령은 그에 대한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다가 마지못해 서명하는 모습을 연출했습니다.

⑤질문 안 받은 기자회견

→해석: 구체적 내용이 없거나 민감한 부분에 대한 정리가 덜 끝났다

마지막으로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질문을 받지 않았습니다. 10분도 안 되는 짧은 성명 발표형식이었는데 이중 상당 부분이 중국 비난과 세계보건기구(WHO)와의 관계 청산에 할애됐습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은 종종 회견 후 질문을 받지 않았습니다. 질문을 받다가도 화가 나면 중간에 회견을 끊고 들어가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날 기자회견은 그러기에는 내용이 중하고 불분명한 부분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냥 끝낸 것이죠. 미국기업연구소(AEI)의 중국 전문가 데릭 시저스는 “그들은 홍콩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일주일 전 발표할 수 있었던 내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구체적인 조치나 시점을 적시하지 않았다는 뜻이죠. WP는 “미국이 중국에 강한 조치를 취하기 원하는 일부 지지자들은 대통령의 10분짜리 성명에 실망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미국 매체 중 상당 수는 기사 제목을 뽑을 때 홍콩의 특별지위 박탈보다 WHO와의 절연을 앞쪽에 배치하기도 했습니다.

큰 틀의 방향 제시한 트럼프…미중 갈등은 계속된다

그럼에도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회견은 의미가 적지 않습니다. 아직 모든 조치가 완료되는 시점은 모르지만 궁극적으로 홍콩 특별지위를 박탈하겠다고 했기 때문이죠. 미중 관계의 새로운 분기점이 될 것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문제는 앞으로입니다. 1차적으로 중국 정부의 반응이 중요합니다. 바로 맞보복에 나설 수도 있지만 그보다 미국 정부가 구체적 조치에 대한 세부지침을 내놓거나 시행 시점을 앞두고 맞보복에 나설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습니다. 이 경우 미국도 재보복에 나서겠죠. 한동안은 미중 관계는 지속적으로 나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남중국해와 대만 주변 해역에서 미국의 대중 군사압박도 계속될 겁니다. WP는 “미국 정부의 움직임은 미중 긴장을 심화할 것이 확실해 보인다”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회견만 놓고 보면 미국 정부가 운신의 폭을 남겨둔 측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언젠가 최악의 순간이 올 수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안도를 주는 부분도 있습니다. 시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새롭거나 심각한 조치를 내놓지 않았다고 보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강력하지만 세부적으로 따지면 강력하지 않은 회견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향후 관전 포인트는 미국 정부가 내놓을 구체적 조치들입니다. 언제 나올지 알 수 없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지시한 만큼 행정부가 앞으로 발표를 할 텐데 무더기로 할 수도 있고 몇 개씩 쪼개서 내놓을 수도 있겠습니다. 이 조치는 중국의 맞보복을 불러오겠죠. 폴 크리스토퍼 웰스파고 수석 글로벌 시장전략가는 “미국 정부가 홍콩과 중국에 대한 언사가 나올 것으로 전망한다”고 했습니다. 결국 11월 대선을 앞두고 구체적으로 어떤 조치와 말들이 오갈지를 보는 게 중요하겠습니다. 두 나라의 본격적인 수싸움은 지금부터입니다.
/뉴욕=김영필특파원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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