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간송미술관이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인 소장 불상 2점을 급작스레 미술품경매에 출품하자 많은 국민들이 안타까움을 표했다.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일제강점기의 문화독립운동으로, 사재를 털어 일본 등 외국으로 반출될 뻔한 우리 문화재를 기와집 몇 채 값을 지불해가며 사들인 ‘간송신화’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국립중앙박물관이나 문화재청 등지에 전화를 걸어 “국가가 구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민원인이 상당했다. ‘보물’ 매각의 이유가 상속세 등의 세금 문제가 아니라 부실한 경영으로 인한 재정난임이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공적(公的) 지원이 간송미술관의 유물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 같은 ‘간송 신화’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증조부 때부터 종로 일대의 상권을 장악한 10만 석 지주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전형필은 휘문고보와 일본 와세다대학 법대를 졸업한 후 엄청난 가산을 물려받았다. 그의 문화재 수집은 대학 졸업 직후인 1930년부터 시작됐다. 그가 ‘민족문화재 수호자’가 된 데는 휘문고보 시절 미술교사였던 춘곡 고희동의 소개로 알게 된 위창 오세창 등의 영향이 있었다. 개화기 이후 한국 근대미술시장의 형성사를 다룬 ‘미술시장의 탄생’(푸른역사 펴냄)의 저자 손영옥은 “간송의 등장은 1930년대 고미술시장에 나타난 새로운 현상으로 이해해야 한다”면서 “일본의 식민지가 된 이래 일본인들의 한국 진출이 늘어났고 경제력을 장악했지만 동시에 경제적으로 부를 성취한 한국인도 등장했는데, 이렇게 부와 권력을 갖게 된 한국인 가운데 새롭게 미술품 수집에 뛰어드는 이들이 나타났다”고 짚었다. 조선 양반의 서화 수집의 취미가 중인층으로 확산된 것으로 단순히 해석해서는 안된다고 한 저자는 “새롭게 부를 축적한 한국인들이 신(新)수장가층으로 등장해 일본인 중상류층의 미술품 수집문화를 모방”했으며 이 같은 한국인 수장가들의 고미술품 수집 배경은 “민족적 행위로서의 수집과 경제적 행위로서의 수집”으로 나눠서 살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 문화재를 사 모은 사람들은 제법 있었으나 간송처럼 끝까지 ‘지킨’ 경우는 많지 않았으며 이는 ‘민족적 행위’로 평가받을 만했다.
책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주요 조선인 고미술품 수장가 중 한 사람인 박창훈은 방대한 수장품을 모았으나 1940년과 1941년 두 차례에 걸쳐 각각 300여 점씩 미술품 경매회사인 경성미술구락부를 통해 처분했다. “애국적 행위로서 미술품을 수집했다면 전쟁에 대한 불안이 고조되는 시점에서 미술품을 매각하는 행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해설이 뒤따른다. 막대한 시세차익을 거둔 수집가도 있었다. 서울에 살던 경성대학의 일본인 교수에게서 추사 김정희의 부채 그림을 50원에 구입한 수집가 장택상은 이를 경성미술구락부 경매에 내놓아 간송에게 700만원에 팔았다. 구입가격의 14배나 되는 낙찰가였다.
어느 정도의 재력을 갖춰야 1930년대에 ‘수집가’로 이름을 올릴 수 있었는지 또한 책은 오목조목 분석했다. 당시 잡지 ‘삼천리’의 1940년 8월호를 뒤져 미술품 수집가들의 연소득이 대략 3만원 이상 20만원 대였음을 찾아냈다. 이 중 연소득 10만원으로 기록된 전형필 등의 재력 수준은 1938년2월17일자 동아일보의 ‘소득세에 나타난 조선의 부력(富力)’을 근거로 책은 “연간 소득이 10만원 이상인 소득자는 전국적으로 1935년에 38명, 1936년에 56명, 1937년에 59명으로 집계된다”고 확인했다. 참고로, 지난해 우리나라의 전국 상위 0.1%의 연소득은 30.3억원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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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1920년대 일제의 문화통치하에서 민족주의 진영이 실력양성운동으로 전개한 유적보존운동이 1930년대 고미술품 구매를 통한 ‘민족문화의 보존’으로 이어졌다”면서 “1934년에 장택상, 1940년에 오봉빈이 동아일보에 쓴 글을 보면 간송 전형필의 미술품 수장과 박물관 개설 계획에 대해 전문대학 창설 이상의 사회공헌이라 극찬했고 마침내 1938년 서울 성북동에 세운 ‘보화각’이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박물관이자 간송미술관의 모태가 됐다”고 설명했다.
책은 1876년 시작된 개항기부터 일제 ‘문화통치’ 이전, ‘문화통치’ 시대, 모던의 시대의 4부로 나뉜다. 간송신화’의 탄생은 책의 후반부에 자리잡고 있다.
‘근대=자본주의’의 등식에 따른 저자는 “한국 근대 미술시장이 전근대적 성격을 벗어나 근대적인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으로 이행한 시점이 개항기”라면서 “화가가 국가에 예술돼 공납품으로서의 미술 작품을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인의 신분으로 미술시장에서 불특정 수요자를 대상으로 미술품을 제작하고, 예술의 중개자를 통해 다수의 수요자와 생산자가 매개되는 형태가 근대적 시스템”이라고 분석했다. 책은 개화기 서양인에 의해 재발견된 풍속화, 중인 부유층의 등장과 민화의 인기, 고려청자를 둘러싼 열기와 한국에도 등장한 경매회사, 전람회 시대의 개막과 서양화 전시의 등장 등 근대 미술시장의 형성을 대하드라마처럼 펼쳐 보인다. 근대기의 미술사를 경제·사회사적으로 살폈다는 점이 발군으로 꼽히는 책이다. 2만7,900원.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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