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인이 아닌 사람이 만든 이른바 ‘사무장 병원’이 부당하게 받은 요양급여를 이 병원에 고용된 의사가 전액 토해내도록 한 처분은 잘못됐다고 대법원이 판결했다.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은 오모씨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급여비용징수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9일 밝혔다. 오씨는 지난 2013년 9월 건보공단으로부터 본인이 원장으로 있었던 사무장 병원에 지급한 요양급여비용 51억원을 징수 당하자 이에 불복해 소송을 냈다.
오씨는 정모씨가 개설한 한 사무장 병원에 지난 2005년 5월부터 2007년 2월까지 의료인 명의를 제공하면서 원장으로 일했다. 사무장 병원은 의료법상 의료기관을 개설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 병원을 만든 다음 고용한 의료인이나 따로 만든 비영리법인 명의로 운영하는 불법 기관이다. 오씨는 일종의 ‘바지 사장’ 역할을 한 셈이다. 이에 건보공단은 오씨가 의료법을 위반해 불법 기관에서 의료행위를 했다며 급여의 환수 처분을 내렸다.
앞서 1·2심은 건보공단의 손을 들어줬다. 사무장 병원에 지급된 요양급여 비용은 국민건강보험법상 부당이득 징수 처분의 대상이라는 이유였다.
반면 상고심 재판부는 요양급여가 부당하게 지급된 데 대해 오씨의 책임이 크지 않다고 봤다. 재판부는 “사무장 병원에 명의를 빌려준 의료인은 개설 및 운영에 관여하지 않으며 노동에 대한 대가만 받을 뿐”이라며 “의료법상으로도 명의를 빌려준 의료인은 가벼운 처벌만 규정했다”고 밝혔다. 또 국민건강보험법상 요양급여의 부당이득 징수는 건보공단의 재량권 행사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의료기관의 개설명의인을 상대로 요양급여 비용 전액을 징수하는 것은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재량권 일탈·남용”이라고 판시했다.
/박준호기자 violato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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