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같은 대형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산업현장의 안전조치를 소홀히 한 기업에 과징금을 매기고 현장에 대한 경영자의 책임을 높이는 방향의 대책을 발표했다. 이를 위해 ‘김용균법’ 시행 6개월 만에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을 재추진하며 이 과정에서 대법원 양형위원회와도 보조를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18일 고용노동부·국토교통부·소방청 등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수립한 ‘건설현장 화재안전 대책’을 발표했다. 지난 5월 발생한 이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같은 대형 사고의 재발 방지를 막기 위한 연장선에서 나온 대책이다.
우선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이 시행된 후 6개월 만에 다시 산안법 개정이 추진된다. 핵심은 과징금 도입이다. 현행 산안법에서는 사업주에 대한 경제적 처벌이 상한 제한이 있는 벌금형으로 묶여 있다. 과징금 제도가 도입되면 산재사고별로 차등해 경제적 제재를 할 수 있다. 공사를 발주한 원청이 하청에 공기를 앞당기라고 재촉하고, 하청은 소위 ‘날림 공사’로 산재 위험을 높인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를 부당이익으로 보고 과징금을 매기면 산재 예방에 실효성이 높아진다고 판단한 것이다. 현행 산안법상 벌금형은 10억원이 최대인데 과징금은 이를 훨씬 웃돌 것으로 보는 시각이 대체적이다. 산안법 개정안에는 지자체의 건설 현장 지도감독 권한이 추가된다. 이렇게 되면 지자체별로 산재예방 계획을 수립·이행할 수 있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선 사업장에 대한 기업과 경영자의 책임과 관심을 높이기 위한 규정도 담겼다. 경영책임자는 앞으로 사업장 안전관리에 대해 보고받아야 한다. 앞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논의와 관련, 경영계는 현장 사고에 대한 책임을 기업에 모두 부과하는 데 난색을 표해왔다. 이 규정은 과징금 규정의 구체적 틀을 정하기에 앞서 산업 현장에 대한 경영인과 기업의 책임성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는 대법원 양형위원회와 함께 산안법 위반 사건에 대한 양형 기준을 다시 마련한다는 방침도 밝혔다. 고용부는 기업에 경제적 제재가 효과적 수단이 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기업 벌금형에 대한 양형 기준을 신설하도록 양형위원회에 건의했다. 또 산안법 위반 사건을 독립범죄군으로 설정해 개인 과실이 아니라 기업 범죄 차원에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전달했다. 이와 관련해 3일 이재갑 고용부 장관은 김영란 양형위원장을 만나 협조를 요청했다.
건축 자재에 대한 제한도 엄격해진다. 일정 규모 이상의 공장·창고에만 적용되던 ‘마감재 안전 기준’을 모든 현장으로 확대한다. 특히 이천 참사의 주범이 된 샌드위치 패널의 경우 700도 온도에서 10분 이상의 대기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준불연 이상 성능의 자재만 사용할 수 있다. 이외 내 단열재·창호에 대한 안전 기준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이천 사고를 키운 또 하나의 축인 화재 폭발 작업의 동시 작업도 금지된다. 이를 위반할시 공사 현장이 중단될 수 있다.
권혁 부산대 로스쿨 교수는 “이번 대책은 산업재해라는 것이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기업을 포함한 전 사회의 재난이란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데 의미를 둘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실효성에 대한 고민은 더 필요하다”며 “단순 형사 책임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사업주에 책임을 부여하는 데 한계가 있다. 과징금 부과 등 경제 벌을 통해 기업이 스스로 산업 안전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진기자 hjin@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