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비정규직 제로’ 1호 사업장인 인천국제공항공사가 1,900여명의 보안검색 요원들을 ‘청원경찰’ 신분으로 직접 고용하는 계획을 내놓으면서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는 모양새다.
공사의 정규직 노조는 청원경찰 직고용 계획이 국민의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 제기 준비에 나섰고, 공사 보안검색 요원들은 직고용 과정에서 100% 정규직 고용 승계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이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이번 직고용 사태로 공기업 공개채용 시험 준비를 위해 토익 등 스펙 쌓기에 몰두해 온 취업준비생과 대학생들의 분노가 크다. 직고용 전환 대상인 ‘청원경찰’ 1,900명 가운데 아르바이트로 일을 시작한 사람이 포함돼 있는 걸로 알려지면서 ‘역차별’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24일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실시한 ‘2020년 가장 일하고 싶은 공기업’ 순위에 따르면 인천공항공사는 득표율 18.4%로 1위에 올랐다. 높은 연봉과 복지 수준 등을 보장받을 수 있어 취업준비생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실제로 지난해 인천공항공사의 일반직(5급) 신입직원 공채는 35명 선발에 5,469명이 몰려 156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경쟁률이 높은 만큼 채용 과정도 만만치 않다. 취업준비생이 공채를 통해 인천공항공사에 입사하려면 서류전형과 NCS시험, 전공시험을 포함한 필기전형, 면접(AI면접, 직무면접, 영어면접, 심층면접 등) 등을 거쳐야 한다. 일반적으로 입사자들은 서울 4년제 대학 졸업, 토익 970~980 이상, 각종 자격증 보유 등의 스펙을 지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간단한 서류전형과 면접(일반면접, 영어면접)을 거쳐 입사한 보안검색 용업업체 직원들이 직고용 전환으로 정규직 사원과 비슷한 처우를 받게 될 것으로 알려져 대학생들과 취업준비생들이 반발하고 있다. ‘계층이동 사다리’가 노력 여하에 좌우되는 것이 아닌 정부 정책에 좌우돼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직고용 전환 당사자로 추정되는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오픈카톡방에 “뭐하러 4년제 나와서 우리보다 대접 못받고”, “대학이랑 토익토플에 돈바친 운없는 것들”, “ 너희 5년 이상 버릴 때 나는 돈 벌면서 정규직” 등의 취업준비생 조롱 글을 올려 이들의 허탈감에 불을 지피고 있다.
서울 지역 한 대학교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대학나와 취업준비하면 뭐하느냐. 하향평준화다”, “힘들게 노력하고 애쓰는 자가 바보되는 나라”, “개인 노력 무시하고 동등한 일자리를 일괄적으로 제공하는 공산주의” 등 불만을 토로하는 글이 쏟아졌고, 이번 사태를 두고 “노예와 노예끼리 싸우는 것 같다”며 SNS에 한탄하는 글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공항공사 측은 대졸 공채 직원과 보안검색 요원은 임금체계가 달라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기준 공항공사 대졸 초임 연봉은 4,589만원 수준이다. 이번에 직접 고용되는 보안검색요원은 해당 연봉을 받는 것이 아닌, 별도의 임금 체계를 적용받아 기존 임금보다 3.7%가량 오른 보수를 받게된다.
현재 보안검색요원의 평균 연봉인 3,500만원 수준에 3.7% 인상률을 적용하면 3,630만원가량이 되고, 여기에 일반 정규직 직원과 동일한 복리후생 혜택 505만원(2019년 기준)이 추가된다.
아울러 보안검색요원 전원이 곧바로 본사 직원으로 전환된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현재 용역업체를 통해 고용된 보안검색 직원 1,902명 가운데 2017년 5월 12일 정규직 전환 선언 이후 입사한 800여명은 공개경쟁 방식을 거쳐야 한다. 공사 측은 탈락자의 경우 자회사에 그대로 남게 하는 등의 구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공사 측의 이런 설명에도 이번 직고용 전환 방침이 일자리 축소와 다른 비정규직 직원들의 고용 불안을 야기한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인천공항 노조는 “청원경찰은 노령·관료화 문제로 정부와 한국공항도 폐지하려던 제도”라며 “청원경찰을 통한 직고용 추진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실업자로 내몰고 인천공항뿐 아니라 타 공기업에도 심각한 ‘노노 갈등’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번 논란과 관련해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온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화 그만해주십시오’라는 제목의 청원글은 24일 오전 10시30분 기준 15만5,775명의 동의를 얻었다.
/조예리기자 sharp@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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