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 대중음악상 최우수 팝 후보에 오를 정도로 음악성을 인정받았던 싱어송라이터 김모(26)씨는 요즘 음악 작업 대신 외국어 과외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최근 몇 달간 잡혀 있던 모든 공연이 취소됐기 때문이다. 김씨는 “프리랜서를 위한 긴급고용안정지원금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나처럼 비주류 음악을 하는 이들에게는 다른 나라 얘기”라며 “몇 달째 아무런 활동이 없다 보니 포트폴리오에 쓸 게 없어 창작지원금 신청에도 애를 먹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생활고에 시달리는 프리랜서 예술인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정부가 이달부터 프리랜서를 위한 긴급고용안정지원금 신청을 받고 있지만 그동안 상당수의 예술인이 계약서 없이 일해온 탓에 활동 이력과 소득을 증빙하기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소득 증빙의 기준을 다변화하는 등 보다 현실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6일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프리랜서 예술인들이 고용안정지원금을 받으려면 올해 3~4월 벌어들인 소득이 지난해와 비교해 25% 이상 감소해야 한다. 지난해 소득의 기준점은 3~4월과 10~11월, 12월~올해 1월 등 세 구간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다. 또 지난해 전체 소득이 7,000만원 이하이거나 올해 가구소득 기준 중위소득 150% 이하 기준도 충족해야 한다.
문제는 프리랜서 예술인들이 자신의 소득이 줄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동안 정식 계약서 없이 구두계약으로 일해오던 관행 탓에 수입이 줄더라도 이를 입증할 방법이 마땅찮다. 그림작가로 일하는 도모(27)씨는 “대학 시절부터 함께 지내온 친구와 작업해 따로 계약서를 작성하지는 않았다”며 “고용안정지원금을 신청할 때가 돼서야 그게 문제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고용노동부 블로그의 ‘긴급고용안정지원금-프리랜서’ 편에는 자신이 수혜 대상에 해당하는지를 묻는 댓글이 쏟아지고 있다.
까다로운 지원 기준도 프리랜서 예술인들의 불만이다. 하지숙 공연예술인노조 운영위원은 “정부의 노력에도 여전히 많은 예술인이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게 현실”이라며 “생계 문제로 잠시라도 고용보험이 적용되는 일을 했거나 부모와 세대분리를 하지 않은 젊은 예술가들은 지원금을 받을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지원금의 중복·부정수급을 막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소득이 줄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을 설정한 것”이라며 “기준이 복잡하다는 예술인들의 민원이 계속 접수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지원 기준을 바꾸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다만 현장에서는 월별로 정산된 통장 내역이나 애플리케이션 캡처, 사측에서 제공한 노무 사실 입증서류 등을 제시하면 공문에 준해 처리하고 있다는 게 고용부 측의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프리랜서의 경우 대부분 명확한 근로계약관계 없이 일해온 만큼 이들을 위한 구제 방안을 마련해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노무관계를 허위로 부풀리는 것은 잘 가려내야겠지만 충분한 사정이 있다고 판단되면 다양한 증빙 방식을 통해 정부가 구제노력을 해야 한다”며 “이번 기회에 계약서 없이 일해온 예술계의 관행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민구기자 1min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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