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30년 전 우주탐사선 보이저 1호는 인류 문명이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지구로부터 61억㎞ 떨어진 우주에서 카메라를 뒤로 돌려 그가 떠나온 지구를 촬영했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어두운 우주 속에 티끌같이 찍힌 지구를 ‘창백한 푸른 점’이라고 표현했다. 여기에 약 78억명의 인류가 200여개 국가로 쪼개져 살고 있고 440여기의 원전이 운영되고 있으며 추가로 160여기가 건설 또는 계획 중이다. 원자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만 총 에너지의 약 17%를 담당한다.
그러나 원전 이용으로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는 모든 나라의 골칫거리다. 지구상에는 지난 2014년 말 기준 약 34만톤의 사용후핵연료가 쌓여 있고 우리나라는 이 중 약 4% 수준인 1만4,000여톤을 발생시켰다. 에너지전환정책에 따라 오는 2080년대까지 대략 4만톤이 누적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용후핵연료는 재처리를 거쳐 처분하거나 직접 처분하는 방안이 있다. 핀란드와 스웨덴이 직접 처분하기 위한 처분장을 건설하거나 준비 중이고 프랑스가 재처리를 거친 고준위폐기물의 처분장 건설 허가신청을 준비하는 것 외에는 모든 나라의 발걸음이 무겁다.
우리나라 국민의 눈과 귀는 근래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 과정에 쏠리고 있다. 시민대표단의 숙의 과정에 있는 관리정책의 의제도 복잡하고 원전 지역의 의견 수렴도 순탄치 않게 진행되고 있다. 이해관계자 간 감정의 대립도 깊어지면서 급기야 재검토위원회 위원장이 교체되기도 했다.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원자력 발전의 아킬레스건으로 원만한 해결 방안이 마련되지 않는 한 원전의 지속 이용을 주장하기 어렵다.
당장 시급히 임시저장시설을 지어야 하는 월성원전의 분위기를 보더라도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이해도 차이가 큰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건식저장시설을 30년 가까이 아무런 문제 없이 운영하고 있고 이 시설은 사용후핵연료를 원래의 고향인 지구 깊숙한 곳으로 돌려보낼 때까지 깨어나지 못할 잠을 자도록 해주는 전용 숙면실과 다를 바 없는데도 말이다. 사용후핵연료가 잠에서 깨어 국민 사이를 휘젓고 다닐 수 있는 게 아닌데도 말이다.
우리는 원전을 이용하는 한 이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후손에 떠넘기지 말고 우리 세대에서 풀어나가야 한다. 칼 세이건은 우주의 티끌과도 같은 지구에서 우리가 욕심과 오해와 편견 때문에 서로 싸우고 부수고 상처를 주는 게 과연 정의로운가를 묻고 있다. 우리는 갈등을 풀어나가기 위해 서로 역지사지하는 자세가 절실하다. 사회적 중지를 모으는 과정과 절차·방법에 대해서 이해관계자들 모두 무릎 맞대기를 피해서는 헝클어진 실타래를 풀 수 없다. 사용후핵연료 특성에서 벗어난 자극적인 내용을 전파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고 이를 바로 잡는 데는 더 큰 국력이 소모될 뿐이다. 원자력계는 사용후핵연료 문제에 어느 정도의 책임감과 해결 의지가 있는지 자성해야 한다. 이 분야에 많은 전문가들이 뛰어들기를 기대한다.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향상할 수 있는 미래기술도 개발해야 하고 사용후핵연료의 오해와 편견, 그리고 이로 인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소통 프로그램도 쉼 없이 끌고 가야 한다.
국민은 평생 만나볼 수도 없는 사용후핵연료를 막연히 걱정할 것이 아니라 정부가 전문가들과 힘을 합쳐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관심과 쓴소리는 물론 격려의 목소리를 모아주길 기대한다. 이제는 이 난제의 실타래를 풀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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