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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천재의 영감과 특허성

박성준 특허심판원장

박성준 특허심판원장




영화 ‘Flash of Genius’는 포드 자동차를 상대로 오랜 특허소송 끝에 거액의 손해배상을 받아낸 로버트 컨 교수의 실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다. 컨 교수는 비 오는 정도에 따라 속도 조절이 가능한 자동차 와이퍼를 개발하고 포드사에 시제품을 보여준다. 포드사는 구체적인 자료를 받아낸 후 협상을 중단해 버린다. 포드사가 동일한 와이퍼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본 컨은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하지만 포드 측은 오히려 컨 교수의 발명은 트랜지스터, 저항, 콘덴서 등 이미 알려진 구성요소의 단순 결합이므로 진보성이 없어 무효라고 주장한다.

특허의 진보성 판단은 영원한 숙제이다. 특허는 기존의 기술이나 물건의 조합에 의해 용이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라면 진보성이 없다는 이유로 등록이 불가하다. 그러나 용이한가 여부의 판단처럼 용이하지 않은 것도 없다. 영화 제목 ‘Flash of genius’는 1941년 미연방대법원이 제시한 특허성 기준이다. 발명은 그때그때의 필요에 따라 땜질식 변화를 준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천재적 영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특허 받기를 너무나 어렵게 했고 미국은 1951년 특허법을 개정해 이 기준을 ‘비자명성(non obviousness)’으로 변경한다.

영화 속 주인공은 진보성에 관한 명변론을 한다. 주인공은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의 한 구절을 읽어준다. 이 소설의 창작성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지만 구성하는 모든 단어는 이미 알려진 것들임을 상기시킨다. 발명도 알려진 구성요소를 창조적으로 재구성한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쉽게 진보성을 부정하려는 당시 특허 실무에 경종을 울리는 대목이다.

조금이라도 하자가 있으면 과감하게 특허무효를 시켜서 누구나 쓸 수 있게 할 것인가. 아니면 가급적 무효를 어렵게 해서 특허를 믿고 투자와 창업이 활성화되도록 할 것인가. 특허정책에 있어서 상반된 두 가지 선택지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이 영화 속 시기에 특허정책의 대전환이 이루어진다. 이전 미국연방대법원은 높은 진보성 기준을 제시하고 반(反) 특허적 입장을 취해왔다. 그러나 1982년 특허고등법원 격인 연방순회항소법원(CAFC)을 설립하고 진보성 기준을 완화해 특허 무효를 어렵게 하기 시작한다.

이제 우리나라도 이러한 특허정책 전환의 시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1992년 이전 국내 특허출원의 70%는 외국인 출원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내국인이 75% 이상을 차지할 만큼 국내 기술 수준과 특허환경은 급변하였다. 다행히 지난해 특허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되고 아이디어 기술탈취에 대한 처벌이 대폭 강화되고 있다.

해결해야 할 과제는 남아있다. 우리나라 특허 무효율은 40~50% 정도로 미국 25%, 일본 21% 에 비해 높은 편이다. 특허가 믿을 만한 것이어야 이를 보고 투자하고 거래하며 연구개발에 재투자하는 선순환적인 혁신생태계가 조성될 것이다.

믿을 수 있는 특허를 확보하는 것은 상당히 긴 호흡으로 오랜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혁신생태계를 위한 첫발로서 특허심판원의 심판장을 11명에서 35명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심판장의 확대로 증거조사의 강화, 구술심리 확대 등 실질적 3인 합의체에 의한 특허심판이 가능해질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특허의 진보성에 대한 깊은 고민의 출발점이 되고, 나아가 특허의 신뢰성을 높여 혁신생태계가 선순환하는 초석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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