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사회는 인공지능(AI)을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구분될 것입니다. 기계와 동반자로 살아갈 수 있다면 전 세계에 산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인류의 문명도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16년 3월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이 벌인 세기의 격돌에서 알파고의 승리를 예측했던 이준정(사진) 미래탐험연구 소장은 최근 본지와 만나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첨단기술을 도구로 활용하겠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포스코 산하 연구소에서 정년퇴직을 한 후에도 인공지능은 물론 재료공학, 생명공학 등 미래 핵심 과학을 주제로 한 강연 및 집필활동을 하는 이 소장은 최근 출간된 ‘퇴근길 인문학수업-뉴노멀’에 필자로 참가했다.
단행본 ‘퇴근길 인문학 수업(한빛비즈 펴냄)’은 본지 부설 백상경제연구원이 2013년부터 운영해 온 인문학 강연 사업을 바탕으로 개발한 인문교양서(멈춤·전환·전진·관계·연결)로 지금까지 누적 판매 20만권을 기록하면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에 지난 6월말 ‘퇴근길인문학수업-뉴노멀’편을 여섯 번째 출간하게 됐다.
‘뉴노멀’편에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현명하게 대처하기 위해 갖춰야 할 인문학적 교양과 지식을 담았다. 인공지능의 미래, 우주와 지구, 디지털과 아날로그 사회, 일과 인권 그리고 고령화 등 사회 전반에 스며든 인문사상을 되새겨 볼 수 있는 융합적인 주제로 구성했다. 전 지구적 전환기에 인간의 실존을 되돌아보고 더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한 가치관을 정립해 나가기 위한 의도로 기획됐다.
그는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결을 앞둔 시기로 거슬러 올라갔다.
“관련 자료를 면밀하게 읽다 보니 이세돌이 이길 수가 없는 게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알파고를 개발한 딥마인드의 최고경영자 데이비드 허사비스는 바둑계 최 고수와의 대결을 준비하면서 ‘거리의 바둑고수’로 불렸던 유럽 바둑챔피언 판후이를 영입해 바둑판 위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경우의 수를 모두 학습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더군요. 점쟁이처럼 점괘를 본 게 아니라 공개된 자료를 모자이크처럼 맞춰보니 자연스럽게 이세돌의 패배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더군요.”
그는 진화를 거듭하게 될 AI를 더욱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사람들은 당시 알파고와 이세돌 9단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지만, 제 눈에는 알파고 대신 바둑판에 바둑알을 뒀던 아마 6급의 아자황 박사가 보이더군요. 알파고가 이긴 것이 아니라 알파고를 이용한 아자황 박사가 이세돌 9단을 이기는 순간이었지요. 만약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 손을 잡았다면 새로운 바둑계의 패러다임을 전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세돌은 바둑 외에도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인간이지만, 알파고는 단지 바둑을 둘 수 있는 프로그램에 불과합니다. 모든 AI 프로그램이 마찬가지입니다. 전문가가 AI를 이용한다면 자신의 능력을 배가시킬 수 있다. 요리사가 요리 AI 프로그램을 이용한다면 세상에 없는 요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죠. 이처럼 AI는 사람이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성균관대를 거쳐 KAIST에서 재료공학 석박사를 마치고 포스코 산하 연구소장을 지냈던 그가 어떻게 정보기술에 해박한 지식을 갖추게 되었을까. 궁금증은 깊어갔다.
“1990년대 50대 중반으로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었어요. 생명공학 분야에 관심을 두고 공부해 보니 곧 100세 시대가 도달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돌이켜보면 앞이 캄캄했어요. 당시만 해도 60대 후반 정도가 기대수명이었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내가 백 세를 산다’는 전제하에 잠자는 시간을 빼고 매일 걷는다고 생각하니, 지구를 몇 바퀴나 돌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새로운 분야에 전문가가 될 수도 있겠다는 판단을 하고 첨단과학기술을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우리 사회의 중추역할을 하는 40대의 지적 판단력을 나이가 들어서도 유지할 수 있다면 스스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테니까요.”
당시 그가 선정한 주제는 생명공학, 정보통신, 인공지능, 에너지, 재료자원, 지구환경 등 6가지 기술분야다. 대한민국 미래의 먹거리 산업과도 맥이 닿아있는 기술들이다. 한가지 기술을 이해하기도 쉽지 않은데 어떻게 다섯 개의 기술을 한꺼번에 공부할 수 있을까. 그의 답은 명쾌했다.
“기술의 개념을 이해하기는 크게 어렵지 않아요. 문과 전공자라고 해도 관련 뉴스부터 읽어나가기 시작하면 점차 기술의 개념과 적용분야를 이해할 수 있지요. 사이언스, 네이처 등 미래기술을 꿰뚫어볼 수 있는 좋은 자료들이 풍부합니다. 공부할 시간이 많아요. 1만 번의 법칙을 적용해 자료를 찾고 차근히 그리고 꾸준히 읽어나면 됩니다. 읽다 보면 기술이 만나는 지점이 있고, 서로 교차하면서 대량생산으로 연결되는 기술을 발견하게 되지요. 어느 순간 미래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나게 됩니다. 공부하는 즐거움이죠.”
이 소장은 오랜 세월 현장에서 쌓은 연륜과 지혜가 풍부한 세대로서 젊은 세대와의 교감하기 위해서라도 첨단기술을 공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나온 문명을 돌아보면 위기는 있었지만, 문명 자체가 파괴된 적은 없었어요. 전환점을 넘어서면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새로운 규범과 질서가 필요한 뉴노멀 시대에 앞선 세대는 과거의 지식이 아니라 젊은 세대가 필요로 하는 지식을 전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의 불안을 잠재우고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알려주어야죠. 그것이야말로 앞선 세대의 책임이자 의무입니다. AI가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동반자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는 자라나는 청소년에게도 AI와 친하게 지낼 것을 강조했다. 이 소장은 “영화 속 주인공 아이언맨은 슈퍼컴이 장착된 갑옷으로 무장한 덕분에 영웅의 반열에 올랐다”면서 “기계와 동반자가 되어 도구를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기회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 장선화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위원(문학박사) /indi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