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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병사에게 술을 왜?

1970년 英해군 럼주 배급 중단

1940년 영국 전함 킹조지 5세호의 수병들이 럼주를 배급받는 장면. 럼주 배급은 1970년 끝났다./위키피디아




1970년 7월 31일 아침 6시. 기상과 함께 집합한 영국 수병들이 술렁거렸다. 마지막 럼주 배급(rum ration) 날이었기 때문이다. 수병들은 물 284㎖가 든 작은 양동이를 들고 줄을 섰다. 배식 장교는 오크통에서 럼주 71㎖를 떠 수병이 내미는 양동이에 부었다. 입회 장교 2명은 물과 럼주의 희석 비율 4 대 1이 지켜지는지 살펴봤다. 왕립 해군 창립(1546년)이래 400년 넘도록 내려온 ‘술 한 모금’의 전통이 이렇게 끝났다. 일부 수병들은 저항의 표시로 검은 완장을 차고, 일부 부대에서는 군악대를 동원한 장례식까지 치르며 아쉬움을 달랬다.

‘군대에 무슨 술이냐’는 의문이 들겠지만 15세기 후반 이후 바다에서 술은 음식만큼 귀중한 대접을 받았다. 언제든 상륙할 수 있는 연안을 벗어나 먼바다를 항해하면서 물을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진 탓이다. 깨끗한 오크통에 물을 담아도 며칠 지나면 이끼가 끼고 냄새가 났다. 저장성이 떨어지는 물의 대체재가 바로 술. 포도주나 알코올도수 1% 이내의 맥주를 실었다. 항해가 길면 맥주도 변했지만 물 보다는 오래갔다. 잘 변하지 않는 술을 찾은 시기는 1655년 무렵. 서인도제도 사탕수수 농장이 개발되면서다.



설탕 부산물인 당밀로 만든 럼주가 알려지며 해군과 해적, 무역선 가릴 것 없이 럼주를 찾았다. 물과 맥주가 부족하면 럼주를 줬다. 고된 복무와 거친 바다에 지친 영국 수병들은 통상 하루 두 차례인 ‘수분 공급 시간’을 ‘술 한 모금(tot)’이라며 반겼다. 실은 한 모금이 아니었다. 북미 식민지를 발견할 무렵 수병들의 맥주 정량은 하루 4ℓ. 맥주를 많이 적재할 수 없어 배급은 늘 모자랐다. 럼주가 알려진 뒤부터 적재 공간이 확 줄었다. 럼주는 40도 이상이어서 맥주보다 적게 줬다. 하루 284㎖. 수분 부족현상은 줄었지만 만취라는 부작용이 생겼다.

영국 해군 에드먼드 버논 제독이 1740년 해답을 내놨다. 142㎖의 럼주를 물과 4 대 1의 비율로 희석해 하루 두 차례에 나눠 배급하니 그나마 사고가 덜 일어났다. 1850년 폐지론이 일며 하루 한 차례 럼주 71㎖를 배급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1911년부터는 장교들이 배급 대상에서 빠졌다. 1969년부터 영국 하원에서 불거진 럼주 논쟁은 결국 완전 금지로 귀결되고 말았다. 럼주를 둘러싼 갈등은 바다뿐 아니라 미국 독립전쟁(당밀 조례)과 호주 선진화(럼주 반란)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에서도 주당들이 럼주의 숙취에 시달린 적도 있다. 요즘에도 영국은 국가적 경사에 가끔 배급한다고.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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