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나 슈퍼 여당에서 요즘 많이 쓰는 단어가 ‘부동산 투기’ 척결이다. 끝도 없이 대책을 내놓았지만 집값이 잡히지 않자 ‘집 가진 자’를 일종의 ‘적폐세력’으로 몰고 있다. 이들이 주장을 빌려보면 투기세력의 선봉은 ‘다주택자’다. 그렇다면 이는 옳은 걸까. 경제학자들과 부동산 교수들께 물어봤다. 답변으로 ‘투기’와 ‘투자’를 구분하는 것 자체가 ‘노벨상감’이라는 말이 돌아왔다.
한 예를 들어보자. 무주택자인 A씨는 서울 강남에서 20~30억원 아파트에 전세를 살고 있다. B라는 사람은 아파트 1채와 빌라 1채를 갖고 있다. 다 합하면 시가 8억원가량이다. 정부와 여당의 시각을 빌려보면 2주택자인 B씨는 투기세력이고 현금부자이지만 무주택자인 A씨는 선량한 시민이다. 하지만 실제 정답은 ‘아무도 모른다’이다. 투기와 투자를 정의하고 구분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는 의미다.
정부 역시 겉으로는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워낙 실체가 없다 보니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특정 적폐세력을 겨냥한 ‘핀셋규제’라고 자평하고 있다. 그런데 규제 영향을 받는 계층과 지역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다주택자뿐 아니라 1주택자, 심지어 무주택자도 규제 사정권에 들어가 있다. 지역도 강남에서 서울, 이제는 수도권으로 넓어지더니 지방 중소도시마저도 집값 규제로 신음하고 있다. 언제는 40대 무주택자를 위해 가점제 물량을 넓히더니 지금은 30대를 위해 특별공급을 확대한다고 한다. 20여차례 이상의 규제를 뜯어보면 사실 소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정부의 투기세력 범주에 들어가고 있다.
설상가상이라고 할까. 최근에는 정부 내부에서도 ‘직언’을 하는 관료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여당이 슈퍼 여당이 되고, 시민단체까지 사퇴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도 조만간 ‘역대 최장수 국토부 장관’ 타이틀을 쥐게 된다. 국토부 장관의 임기는 평균 1년여 안팎이다. 관료들 역시 이제는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에 몰리고 있다. A교수는 “관료들을 만나면 예전에는 ‘어쩔 수 없이 대책을 내놓는다’며 속내를 털어놓았는데 지금은 장관과 여당에 충성하는 모습”이라고 꼬집었다.
집값 정책 실패로 지지율이 떨어지자 최근에는 부동산에 정치마저 결합됐다. 앞으로 집값 대책을 내놓는 주체가 정부가 아닌 거대 여당이라는 말도 나온다. 논란의 임대차 3법 등 현재 수많은 집값 규제들이 여당의 지휘하에 일사천리로 처리되는 것이 현실이다. 대선 등 향후 선거일정을 고려해볼 때 정치의 부동산 정책 개입은 더 강도가 세질 것으로 보인다.
정치까지 섞인 중구난방식 정책이 되다 보니 일각에서는 집값 정책으로 얻으려는 의도가 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마저 나온다. 대표적인 게 집값을 잡겠다는 건지 세금을 더 걷겠다는 건지 모르겠다는 비판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 발 집값 띄우기라고 비판하고 있다.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오히려 시장이 조정되면서 집값과 전셋값만 더 급등하고 있어서다. 물론 이 과정에 정책 신뢰성은 갈수록 추락하고 있다.
정부는 공급대책을 곧 내놓는다. 물론 공급대책이 없는 것보다 낫다. 하지만 정치 주도로 나올 공급대책이 과연 시장에서 신뢰를 줄 수 있을지는 별개 문제다. 서울 집값만 더욱 공고히 할 것 같다는 지적이 벌써 나오고 있다. 집값 대책은 정치의 영역이 아닌 경제의 영역이다. 또 특정 계층에 세금 폭탄을 투하하며 토끼몰이하듯이 밀어붙이는 것도 더더욱 아니다. 이는 시장의 반감과 민간 영역 축소라는 결과를 가져온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부동산 전문가들의 충고를 이제 곱씹어볼 때다. ljb@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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