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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의 왕실 도자기는 왜 이토록 화려했나

개항 이후 조선왕실 적극적 해외문물 수용

왕실도 근대국가로 나가려는 노력 기울여

고종이 프랑스대통령에게 선물받은 도자기

화려한 왕실식기 등 처음 한자리에 공개

고종이 사디 카르노 프랑스 대통령으로부터 조불수호조약 체결기념으로 선물받은 세브르산 ‘백자 채색 살라미나병’이 처음으로 공개 전시됐다. /사진제공=문화재청




고종은 1886년 조·불수호조약(1886) 체결 기념으로 사디 카르노 프랑스 대통령으로부터 국립 세브르 도자제작소가 만든 ‘백자 채색 살라미나(Salamine)병’을 선물 받았다. 예술적 자부심이 높은 프랑스는 자국을 대표하는 명품인 세브르 도자기를 택했고, 황금색 바탕에 활짝 핀 꽃을 그려넣은 도자기는 자체 발광하듯 화려하다. 조선이 개항한 후 수교를 맺은 서양 국가로부터 기념 선물을 받기는 이것이 처음이었다. 고종은 답례로 12~13세기 고려청자 두 점과 금속제 화분에 금칠한 나무를 세우고 각종 보석으로 꽃과 잎을 단 ‘반화(盤花)’ 한 쌍을 선물했다.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이 개항 전후 조선왕실의 도자기 변화를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특별전 ‘신(新)왕실도자, 조선왕실에서 사용한 서양식 도자기’를 10월4일까지 개최한다. 고종이 프랑스 대통령에게 받은 세브르산 살라미나 병을 비롯해 그동안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는 근대 서양식 도자기 40여 점이 전시된다. 이뿐 아니라 프랑스·영국·독일·일본·중국에서 만들어진 서양식 도자기 등 약 310건 400점의 소장 유물이 한자리에서 선보인다. 이들 유물은 조선 후기에 이국 문물이 적극적으로 소개됐으며 개항 이후 왕실도 근대국가로 나아가고자 노력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조선 후기 왕실은 용이 그려진 커다란 백자 항아리인 용준(龍樽)과 모란무늬 청화백자 등을 애용했다. 정조초장지, 화협옹주묘 등 출토 유물도 왕실의 도자기 문화를 보여준다. 1876년 강화도 조약 체결 이후에는 서양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는데, ‘오얏꽃무늬 유리 전등갓’ 등 1887년 전기 도입 후 궁중 실내외에 설치됐던 150여 점의 유리 등갓이 찬란하게 빛난다.



개항 이후 조선 왕실에서 사용한 서양식 식기. /사진제공=문화재청


개항 이후 서양식 연회가 열리던 조선왕실의 분위기는 창덕궁 대조전 권역에 남아 있는 서양식 주방을 그대로 옮긴 구조에 ‘철제 제과틀’ 등 각종 조리용 유물로 만날 수 있다. 영상물까지 마련돼 각종 외교 정보가 오가던 왕실 연회를 ‘간접 체험’할 수 있다. 조선에서 주문 제작해 이화문(李花文)이 찍혀있는 프랑스 회사 필리뷔트(Pillivuyt) 양식기는 정통 프랑스식의 12가지 정찬이 담기는 그릇이다.

이외에도 만국박람회를 통해 세계 자기 문화의 주류로 떠오른 자포니즘(Japonism) 화병과 중국 무역상의 후손으로 동남아에 퍼져간 페라나칸(Peranakan)의 법랑 화병도 볼 수 있다. 곽희원 고궁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조선이 서양식 건축물을 짓고 세계적으로 유행한 대형 화병을 장식한 것은 근대적 취향과 문물을 받아들이려는 노력의 하나였다”고 설명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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