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왕 조지 5세(1865~1936년)는 생전에 장남 에드워드 8세의 자유분방한 옷차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니는 아들이 못마땅해 바지에 붙은 주머니를 모두 꿰매라는 지시까지 내릴 정도였다. 조지 5세는 어느 날 아들에게 “내일부터 무조건 정장 차림의 프록코트를 입으라”는 엄명을 내렸다. 당장 옷이 없던 에드워드 8세는 런던 ‘새빌 로(Savile Row)’에서 군복을 납품하던 테일러(양복 재단사)인 프레더릭 숄티의 도움을 받아 아버지 지시를 이행할 수 있었다. 숄티는 이후 40년간 왕실 납품을 도맡았다.
런던의 맞춤형 양복점이 몰려 있는 거리인 새빌 로 또는 새빌 스트리트는 1731년 도심을 재개발한 벌링턴 백작 3세의 아내 ‘도로시 새빌’의 이름에서 따온 말이다. 원래 명사들의 주거지였지만 윌리엄 매덕스라는 테일러를 필두로 재단사들이 모여들어 남성 양복 패션의 메카로 자리 잡았다. 1780년부터 영국 왕실의 관복이나 군복을 주로 제작하면서 ‘양복 재단의 황금 길’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새빌 로에서는 사전 예약과 컨설팅을 거쳐 맞춤형 양복을 만든다. 양복 제작에 통상 3~6개월의 기간이 걸리고 가격도 한 벌에 평균 600만~700만원이며 1,000만원을 넘는 경우도 있다. 보 브루멜은 이곳에서 실크 대신 울로 남성복을 만들고 최초로 상하의 원단을 통일해 맞춤 수트의 신기원을 열었다. 엘리자베스 2세의 드레스를 직접 만들었던 하디 아미스는 기사 작위까지 받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영화 ‘킹스맨:시크릿 에이전트’의 촬영지로 등장했던 양복점 ‘헌츠맨’은 1849년 세워진 곳으로 서울 등 아시아 지역을 순회하며 직접 고객을 유치하기도 했다.
새빌 로가 맞춤 양복 수요 감소에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 최근 극심한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 12~13곳의 유명 양복점 가운데 절반 정도가 문을 닫았으며 영업시간을 줄인 곳도 적지 않다. 일부 가게는 양복 원단으로 고급 마스크를 만들어 판매하는 등 생존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땀 한땀 바느질의 정성이 깃든 새빌 로가 활기를 되찾아 장인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기를 기대한다.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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