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이천은 쌀보다 도자기로 더 유명하던 곳이다. 왕실용 도자기를 굽던 관요(官窯)가 있던 이천은 경기도 광주, 충남 공주와 함께 조선 시대 3대 도요지로 꼽혔다. 조선의 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이천 특산물이 쌀이 아닌 도자기로 기록돼 있다. 이천이 이처럼 자기 명소로 이름을 알린 것은 도자기의 주재료인 흙 대부분이 이천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이천 쌀이 명품 대접을 받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한때 좋은 흙을 찾아 전국의 도예가들이 모여들던 이천을 찾았다.
이천은 최근 도자 문화의 중흥을 꿈꾸며 전국 공예인들을 한자리로 불러 모았다. 지난 2018년 신둔면 고척리에 조성된 이천도자예술마을 ‘예스파크(藝’s Park)’가 공예인들의 새 터전이 됐다.
예스파크는 도자기를 중심으로 옻칠·가죽·회화·조각·목공·유리·섬유 등 각종 수공예 공방 221곳이 집결한 국내 최대 규모의 예술인 마을이다. 테마공원을 연상하게 하는 이름은 예술을 뜻하는 한자 ‘예(藝)’와 영어로 공원을 의미하는 ‘파크(park)’를 조합해 만들었다고 한다. 단순히 예술인들을 지원하는 공간을 넘어 체험·쇼핑까지 한 곳에서 모두 할 수 있는 복합형 문화체험 공간이다.
예스파크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한반도 모양을 하고 있는데 마을 중앙을 가로질러 흐르는 학암천을 중심으로 회랑마을과 가마마을·별마을·사부작마을로 나뉘어 있다. 그 중심인 가마마을은 전통 장작가마를 갖추고 있거나 이천에서 뿌리를 내린 터줏대감들이 운영하는 대규모 공방들로 구성돼 있다. 이천시 도자기 명장 이향구 명장의 ‘남양도예’부터 이규탁 명장의 ‘고산요’, 달항아리로 유명한 도예가 신철의 ‘흙으로 빚은 달’ 등 대표작가들의 걸작부터 신진 도예가의 생활자기와 소품까지 다양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예스파크는 방문자가 작가를 직접 만나 설명을 듣고 체험을 하면서 작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방문자들은 도예가들과 함께 공방에서 물레를 돌리며 핀칭기법·코일링기법·페인팅기법 등을 배워 도자기를 빚고 전통 장작가마에서 구워내는 전 과정을 체험할 수 있다. 그중 화목토(火木土) 도예연구소는 라쿠소성(RAKU) 기법으로 도자기를 구워내는 국내에서 몇 안 되는 곳이다. 라쿠소성은 초벌 도자기를 왕겨·톱밥·낙엽 등에 넣어 실금이 간 도자기 표면 사이로 연(燃)을 먹이는 기법인데 그 특유의 문양 때문에 일본에서는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예술인만 모인 것이 아니라 마을도 예술가의 감각으로 꾸며놓았다.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건축물과 학암천 주변을 따라 양각산 산책로까지 이어지는 장미터널·수변공원·카페거리 그리고 마을 구석구석에 위치한 다양한 휴식·문화시설이 예술가들의 작품과 결합해 하나의 거대한 갤러리를 연상시킨다. 예스파크 내에는 1㎞ 길이의 회랑 산책로와 반려견과 함께할 수 있는 산책로, 반려동물 놀이터가 마련돼 있어 작품을 감상하며 한가로이 산책하기에 좋다. 매년 봄 열리는 이천도자기축제 외에 플리마켓, 버스킹 공연, 기획전시와 같은 크고 작은 행사도 연중 진행된다.
총 40만6,900㎡(12만3,000평) 규모인 예스파크는 사람들로 붐빌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여유롭지만 반대로 그 크기 때문에 하루 만에 전체를 다 돌아보기 어렵다는 게 단점이다. 방문 전에 미리 동선을 짜거나 관광안내소에서 각 공방의 특징과 운영하는 프로그램 등을 먼저 숙지한 뒤 관심이 가는 곳 위주로 계획을 세워 움직이는 것이 좋다. 관광안내소에서 전동스쿠터를 대여하거나 예술인들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루 이틀 머물며 구석구석을 느긋하게 둘러보는 것도 방법이다.
예스파크가 현대식 예술인 마을이라면 ‘사기막골 도예촌’은 고려 시대부터 이어져 온 원조 도예촌이다. 이천시 사음동 산제당골산 아래 위치한 사기막골은 인근에 흩어져 살던 도예가들이 모여 자연스럽게 형성된 마을로 1978년부터 도예촌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현재 도자기 도예공방 51곳이 운영되고 있으며 3대째 한자리에서 대를 이어 고려청자를 빚는 전통 도예가부터 경력 10년 미만의 신진 도예가까지 신구세대 문화가 공존한다. 도자기를 직접 만드는 체험도 가능하지만 주로 전통자기를 생산하는 곳으로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가까이에서 감상하기에는 오히려 예스파크보다 편리하다.
사기막골은 도자기가 인기를 끌던 시절 국내외 관광객들이 단체로 찾으며 명성을 얻었다. 1965년 한일협정 이후 일본인들의 방문이 자유로워지면서 한국 전통 도자기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고 일본인 관광객들이 사기막골로 모여들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내국인이나 일본인보다 주로 미국·유럽 관광객들이 선물용 도자기를 구입하기 위해 찾았다고 한다. 예스파크가 조성되면서 상인 일부가 옮겨갔지만 대부분의 사기막골 도예가들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며 전통 자기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글·사진(이천)=최성욱기자 secre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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