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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환 "투쟁바퀴만 큰 민주노총…대화 바퀴도 키워야 미래가 있다"

[김명환 전 민주노총 위원장 단독인터뷰]

민주노총은 투쟁과 대화, 두개 바퀴 가진 기관차

제1노총의 힘, 모든 노동자 함께 잘 사는데 써야

노동 4.0시대, 대전환기에 동참하는 용기 가져야

김명환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11일 서울 종로구 서울경제신문에서 인터뷰를 갖고 있다./성형주기자 2020.08.11




김명환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민주노총도 새로운 질서를 피해갈 수 없다면 당면한 상황을 직시하고 새롭게 바뀔 용기가 필요하다”면서 “제1노총이 된 만큼 투쟁만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전 위원장은 지난 11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노동이 진화하는 과정을 민주노총도 겪어야 하고 참여해서 바꿔야 한다”고 밝히며 이같이 강조했다.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노사정 합의 추인 실패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김 전 위원장이 사퇴 이후 언론과 인터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전 위원장을 인터뷰한 이날은 공교롭게도 그의 사퇴로 출범한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회가 첫 기자회견을 연 날이었다. 비대위는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민주노총의 정신은 투쟁”이라면서도 “정부와의 대화는 열어놨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지난 4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원포인트’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제안해놓고도 정파적 이해관계 때문에 합의문 추인을 부결시켰다. 우군으로 믿었던 민주노총의 행태에 실망한 문재인 정부는 결별을 선언했다.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은 “반찬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밥상을 걷어찬 꼴”이라며 “앞으로 민주노총 없이 사회적 대화를 하겠다”고 못 박았다.

‘제1 노총’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지기 위해 노사정 대화에 나섰으나 내부 강경파에 밀려 직(職)을 내려놓은 김 전 위원장은 현재의 민주노총 상황을 ‘투쟁의 큰 바퀴와 교섭의 작은 바퀴가 달린 수레’라고 비유하며 “두 바퀴의 크기가 맞지 않으니 제자리를 뱅뱅 맴돌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화와 투쟁이 같이 굴러가려면 크기가 같아야 한다”면서 “바퀴가 굴러가야 할 방향은 민주노총만이 잘 먹고 잘사는 게 아니라 ‘모든 노동자를 위한 민주노총’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김 전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대담=김정곤 사회부장 mckids@sedaily.com

김명환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11일 서울 종로구 서울경제신문에서 인터뷰를 갖고 있다./성형주기자 2020.08.11


-위원장 선거 당시 슬로건이 ‘고립·분열·무능을 뛰어넘어 새로운 30년을 개척하는 민주노총’이었다. 2년7개월간의 임기 동안 성과가 있었나.

△김명환 집행부의 의미는 촛불혁명의 정신을 노동환경에 어떻게 구현하느냐였다. 첫 성과는 대표성이다. 100만 조합원을 거느린 제1 노총으로 성장했다. 그만큼 위상도 높아졌다. 두 번째는 여성·청년·비정규직 등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지 못한 노동자와도 결합해 이들을 대변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들과 적극적으로 결합해 민주노총의 사회적 발언력으로 키워냈다.

-성과만큼 아쉬운 일도 있을 텐데.

△지금 사실 아쉬운 상황이지 않나(웃음). 조직이 성장했다는 것은 그만큼 영향력도 커졌다는 의미다. 그 영향력에 대한 책임도 커져야 한다. 제1 노총이 됐다는 것은 강해졌다는 뜻이다. 이 힘을 자신의 이익이나 근로조건을 강화하는 데 쓰기보다 어렵고 약한 이들을 위해 써야 한다고 본다. 사회적 연대와 대화·투쟁이라는 세 가지 축이 촛불 이후 새롭게 나타난 활동방향이었다. 특히 대화의 측면에서 새로운 틀을 짜는 과정이 필요했기에 노사정위원회가 경사노위로 확대 개편됐다. 노사정 대화를 진행해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과정을 겪었으면 했는데 계속 멈췄다.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합의도 추인받지 못했다. 작은 부분이라도 사회적 대화를 통해 승인하는 경험이 있었다면 더 큰 성취로 나아갈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왜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를 하는 데 익숙하지 않나.

△역사 때문이다. 1995년 출범 이후 노동에 대한 적대의식이 팽배한 상황에서 조직을 지키는 것이 승리라고 여겨졌다. ‘민주노총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체화된 상태에서 양적 성장에 걸맞게 긍정적 방향으로 바꿔내는 것이 어려웠고, 결국 숙제로 남았다. 사회적 책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통해 용기 있는 결정을 내리는 과정이 몇 번 반복되면 달라질 것이라고 본다.

-민주노총이 제1 노총이 됐지만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많다.

△내가 바퀴를 보는 사람이 아닌가(김 전 위원장은 코레일 디젤기관차 기술자 출신이다). 민주노총에는 투쟁과 교섭이라는 두 바퀴가 있지만 투쟁의 바퀴는 크고 교섭의 바퀴는 작다. 그러면 제자리에서 뱅뱅 돈다. 대화와 투쟁이 같이 굴러가려면 크기가 같아야 한다. 굴러가야 할 방향은 민주노총이 잘 먹고 잘사는 게 아니라 ‘모든 노동자를 위한 민주노총’이어야 한다. 사업장·산업별 교섭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위한 대화가 같이 진행돼야 한다. 단위 사업장이 갖게 되는 기업 복지·복리후생·고용안정이 공장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사용자 단체도 바뀌어야 한다. 대기업도 내부 노조만 관리하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지난해 1월 경사노위에 참여하기로 했지만 대의원회의에서 부결됐다.



△날짜도 기억한다. 2019년 1월28일. 위원장이 직권상정했는데 동의를 얻지 못했다. 민주노총에는 사회적 대화가 노동시장 양극화의 시작이었기 때문에 상처가 있다(1998년 노사정위원회 합의문에 비정규직·파견제 도입이 포함됐다). 구조를 재편해야 한다고 봤고 민주노총이 주도해 경사노위를 만들었다. 경사노위법에는 안건 의결을 위해 위원의 3분의2가 출석해야 하고 그중 3분의2가 동의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노사 한쪽이 일방적으로 끌고 갈 수 없다. 이렇게 되면 국회에서 그 힘이 작동한다. 사회적 합의가 주는 여론의 힘이 매우 크다고 느꼈지만 민주노총은 참여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그때 ‘극단적 대결로 가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경기장 안에서 충돌이 있으면 조절이 되지만 밖에서 싸우면 그렇지 않다.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도 같은 상황이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현장을 순회했다. 재난은 모두에게 오지만 피해는 같지 않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비정규직 안에서도 차이가 있다. 정부 정책은 기존의 방식대로 금융 지원과 대기업 중심이었다. 방향을 틀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노사정 대화를 하자고 제안했다. 합의할 만하니까 합의했다. 합의를 위한 합의는 아니었다. 어떤 조합원이 ‘김명환은 자본의 하수인’이라고도 했지만 독소조항이 있는 것도 아니고, 노동제도의 개악을 동반하는 것도 아니라면 내용의 취지를 설명하고 합의하려 했다. ‘자본에 굴복했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해고 금지가 없고 구체적이지 못하다는 비판도 있는데 과도하다고 생각한다. 합의문은 유의미하다고 본다.

-합의문 추인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정파’라는 말을 썼다. 민주노총에서는 금기어인데. 어떤 생각이었나.

△‘의견그룹’이라는 말도 쓴다. 정치적 견해에 차이를 두고 활동하는 조직은 노동운동에서 계속 있었다. 금기어는 아니라고 본다. 의견그룹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정파의 결정과 판단이 대중조직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대의원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용적 논쟁을 하기보다는 세몰이를 하는 양상이었다.

-사퇴 기자회견에서 사회적 대화를 놓고 논란을 빚는 모습을 ‘성장통’으로 표현했다. 민주노총이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보는가.

△합의문을 추인하지 못한 결과보다 이를 놓고 논쟁한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중앙집행위원회에서 반대한 것을 대의원대회에 왜 상정하느냐고 문제를 제기하지만,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민주노총에는 아픈 시기일 수도 있지만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민주노총이 25년의 역사에서 조직이 커졌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질서를 피해갈 수 없다면 당면한 상황을 직시해야 한다. 노동이 진화하는 과정을 민주노총이 겪어야 하고 참여해서 바꿔야 한다. 코로나19와 4차 산업혁명이 겹치는 상황은 예측을 불허한다. 하청·불안정노동을 기준으로 삼고 어떤 책임을 다할지 기준을 잡아야 한다. (사회적 대화라는) 경기장 안과 밖의 투쟁을 같이해야 하지만 경기장 밖의 투쟁이 강화돼 자꾸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아 안타깝다.

-다시 합의문 추인을 시도할 때로 돌아가더라도 똑같은 결정을 할 것인가.

△당연하다.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누군가는 남은 5개월의 임기를 채우라고 했지만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는 위원장직이라면 내려놓아야 한다고 봤다. /정리=변재현기자 humbless@sedaily.com

김명환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11일 서울 종로구 서울경제신문에서 인터뷰를 갖고 있다./성형주기자 2020.08.11


8년 만에 기술자로 돌아가는 김명환…“젊은 조합원들과 호흡할 것”
임기를 5개월 남기고 중도 사퇴한 김명환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평조합원이 돼 현장으로 돌아간다. 철도노조 위원장과 민주노총 위원장 등 노조 전임자의 길에 들어서기 전 그는 디젤기관차 기술자로 일했다. 몇 곳 남지 않은 디젤기관차 수리소 중 하나인 청량리 차량사업소로 돌아가면 8년 만의 현장 복귀다.

올해는 그의 입사 30년 차를 1년 앞둔 해이기도 하다. 긴 시간이지만 절반 넘는 기간을 노조 전임자나 해고근로자로 지낸 터라 현장으로 복귀하는 감회가 벅차다. 현장 복귀 계획을 밝히며 환하게 웃는 표정에서 현장 동료들을 만나는 것에 대한 기대감을 엿볼 수 있었다. 김 전 위원장은 “평조합원으로 돌아가서 젊은 조합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할 것”이라며 “그간 쌓은 경험들이 이들과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고 했다.

기대감 사이로 옅은 긴장감도 묻어났다. 그가 담당하는 디젤기관차의 시대가 저물고 전기기관차가 보편화되는 등 기술환경이 크게 변했기 때문이다. 김 전 위원장은 “이번에 현장에 돌아가면 약 8년 만에 복귀하는 셈인데 기술적으로 정말 많은 것이 바뀌었을 시간”이라며 “과연 내가 돌아갔을 때 일을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는 게 사실”이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변화를 확인해 봐야 한다고 생각하고 배울 수 있는 건 배워야 한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김 전 위원장은 현장 복귀까지 남은 3주가량 휴가를 즐길 예정이다. 모처럼 긴 휴가가 주어졌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마음대로 돌아다니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운 눈치다. 그는 “역마살이 있어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데 코로나19로 여행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니 여간 아쉬운 게 아니다”면서도 “위원장 임기 2년7개월 동안 만나지 못한 사람들을 두루 만나보고 싶다”고 전했다. 장마철이 이어지고 있는 요즘은 틈틈이 도서관에 들러 책 읽는 재미에 빠져 있다고 한다. 최근 탐독하는 책은 ‘진보집권 경제학’이다. “경제를 참 쉽게 설명해놨더라”는 한 줄 감상평에서 현장 복귀를 앞둔 전직 노동단체 수장의 복잡한 속내가 읽혔다.
/허진기자 hj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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