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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미사일 갭

1958년, 케네디 위기 부풀려 선거 활용





“우리 미국은 미사일 갭(Missile Gap)을 충분히 줄일 수 있었지만 등한시해왔다. 이제는 실행할 때다.” 41세 상원의원 존 F 케네디가 1958년 8월14일 선거 유세에서 강조한 말이다. 미사일 갭이란 말 그대로 소련과 미사일 전력의 격차. 과학자들이 1957년 처음 사용한 이 용어를 일반어로 만든 주역은 케네디다. 30세에 하원을 거쳐 36세에 상원에 진출한 케네디는 재선 고지를 향한 선거전에서 미사일 논란에 불을 지폈다. 속셈은 정치 공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행정부의 무능과 무감각으로 소련 미사일 전력이 미국을 압도하게 됐다는 주장을 펼쳤다.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뒤에는 공화당을 더욱 밀어붙였다. 대선 상대는 리처드 닉슨. 아이젠하워 행정부의 부통령을 지낸 닉슨이야말로 미사일 갭을 초래한 장본인이라며 공격을 퍼부었다. 35대 미국 대통령을 뽑는 선거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TV 토론에서 닉슨 후보가 ‘TV 수상기는 미국이 소련보다 훨씬 많다’고 주장하자 케네디는 ‘TV보다 중요한 것은 핵무기를 탑재한 소련 대륙간탄도탄(ICBM)이 미국을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이라며 맞받아쳤다. ‘미사일 갭’을 강조해 닉슨을 공격한 케네디는 결국 대선에서 승리를 거뒀다.



정작 대통령 취임 후 케네디는 미사일 갭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 일부 언론은 미사일 전력을 강화하겠다는 공약(公約)이 거짓이었다고 비판했지만 케네디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ICBM이 소련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소련의 인공위성 발사 성공(1957년) 이래 미국에 미사일 공포 분위기가 형성되고 일부 매체는 미국과 소련의 ICBM 전력이 130대1,500이라고 떠벌렸다. 실상은 정반대였다. 미국이 130여기를 실전 배치한 ICBM을 소련은 시제품을 포함해 단 4기만 갖고 있었을 뿐이다.

거꾸로 소련이 미국과 미사일 갭에 떨었다. 미국이 터키와 이탈리아에 주피터 중거리 미사일까지 전진 배치하자 소련은 쿠바에 미사일 기지 설치로 맞섰다. 3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갔던 쿠바 위기는 양국의 화해로 진정됐으나 위기를 부풀려 정치적·상업적 이익을 취하는 행태는 여전하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퇴임 연설에서 경고했던 미국의 군산복합체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지구촌의 전쟁도 끊이지 않는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존재하지도 않는 대량살상무기(WMD)를 구실삼아 이라크를 전쟁터로 만들었다. 위기를 부풀리는 세력은 언제나 위험하다. 우리나라에는 그런 자들이 없을까.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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