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가 한번 내리면 풀이 더 자라지 않는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민심의 서리를 맞은 권력은 다시 회복하기 힘들다.”
한 정치인에게서 들었던 얘기다. 임기 말 지지율이 바닥으로 떨어진 대통령은 레임덕(권력 누수) 늪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다는 뜻이다. 권력에도 사계절이 있는 것처럼 영원한 권력은 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40% 아래로 추락한 것을 보면서 떠오른 생각이다. 한국갤럽이 지난 11~13일 전국 유권자 1,0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포인트)에서 문 대통령의 직무수행 긍정평가는 39%였다. 석 달 사이에 지지율이 32%포인트나 곤두박질쳤다. 역대 정권에서 임기 중반까지는 지지율이 내려갔다가 반등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남은 임기가 1년6개월 이내이면 대부분 대통령들은 떨어진 지지율을 되돌려놓지 못했다.
아직은 대통령 리더십이 ‘절름발이 오리’처럼 흔들리는 상황이 아니다. 퇴임을 1년6개월 앞둔 올해 11월 이전까지는 지지율이 롤러코스터처럼 등락을 거듭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지지율이 30%대로 내려가면 관료들이 복지부동하면서 청와대 말을 곧바로 이행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지지율이 33% 밑으로 더 떨어지면 레임덕 터널 입구로 들어선다. 그 뒤 대통령 지지율이 25% 아래로 급락해 유권자의 4분의3 이상이 등을 돌릴 경우 ‘식물 대통령’이 된다.
말년에 돌아선 민심을 붙잡기 어려운 이유는 대통령 지지율의 ‘필연적 하락 법칙(the law of inevitable decline)’ 때문이다. 장밋빛 청사진에 대한 기대감으로 지지율이 최고조에 달했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잇단 정책 실패로 실망이 쌓이면 지지율이 크게 떨어진다. 실제로 5년 단임으로 임기가 제한된 대통령들의 지지율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대체로 하락세를 보였다. 최근 문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 원인도 주로 부동산·일자리 정책 실패 등에서 찾을 수 있다. 대통령 지지율은 시기와 함께 정책 성과, 국정운영 스타일, 권력 비리 등 크게 네 가지 변수의 영향을 받는다.
문재인 정권이 집권 4년 차 1·4분기까지 지지율에서 선방할 수 있었던 것은 두 가지 요인 때문이었다. 우선 살아 있는 권력의 비리가 덜 드러났다. 처음에 지지율 고공행진을 했던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임기 말에 아들과 측근들의 연쇄 비리가 터지면서 시달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순실 비리 파문으로 탄핵까지 당했다. 반면 문재인 정권은 권력형 범죄에 대한 검찰 수사를 철저히 봉쇄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의혹과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등에 대한 수사를 맡았던 검찰 간부들은 줄줄이 좌천됐다. 신설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검찰에서 진행하는 수사의 이첩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한 것도 검찰 무력화를 위한 꼼수로 보인다. 게다가 현 정권은 검찰 수사에 이어 법원의 1심에서 유죄가 나와도 최종 판결이 아니라고 우기면서 혐의를 전면 부인해버렸다.
편 가르기 정치공학으로 지지층 이탈을 막는 울타리를 치는 것도 현 정권 특유의 비법이다. 요즘 여권이 반일(反日) 깃발을 들고 바람몰이를 하는 것은 대표적인 갈라치기 전략이다. 국민을 이념과 진영으로 나눠버리면 이성적 비판을 무시하면서 웬만한 실책은 덮을 수 있다. 게다가 일부 기득권층을 적으로 규정하고 다수 서민을 열렬히 대변하는 것처럼 하는 포퓰리즘으로 정권에 유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세월 앞에 장사 없다. 그럴듯하게 포장했던 정책 상품들이 알맹이 없는 실체였음이 하나둘씩 드러나자 절망하고 분노한 서민들이 늘고 있다. 그러고도 ‘남 탓’만 하는 오기와 폭주의 국정운영은 국민들을 더욱 답답하게 만든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올 11월 서리가 내린 뒤에는 하강곡선을 그릴 가능성이 높다. 일단 레임덕 궤도에 들어서면 탈출이 불가능하다. 반환점을 돈 뒤 종착역을 향해 가는 현 정권은 더욱 겸손한 자세로 조심해서 달려야 한다. 그래야 운전대를 맡긴 국민들도 더 이상 가슴 쓸어내리지 않으면서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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