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22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코로나19 상황의 심각성을 지적하며 “의사단체가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신설에 대해서는 수도권 상황이 안정된 이후 의료계와 논의를 하며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는 이달 말 교육부에 의대 정원 규모를 통보하려던 계획을 미뤄 정원 확대 관련 절차를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대한전공의협의회는 “당장 내일이라도 확정통보할 수 있는 사안을 일시적으로 미룬다는 말은 국민과 의료인을 기만하는 말”이라고 반박하고 “코로나19 종식 때까지 정책 추진을 중단하고 원점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재논의해 정책을 결정한다고 이야기하면 언제든 단체행동을 중단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보건복지부가 집단휴진에 들어간 의사와 의료기관에 대해 업무개시명령과 불응자 처벌을 언급한데 대해서도 “다 같이 면허정지·취소 조치를 당하겠다. 수련병원의 의료공백이 불가피해질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의료법에 따르면 의료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중단하거나 의료기관 개설자가 집단으로 휴업·폐업해 환자 진료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거나 그럴 우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보건복지부장관, 시도지사나 시장·군수·구청장은 해당 의료인이나 의료기관 개설자에게 업무개시명령을 할 수 있다. 또 정당한 사유 없이 업무개시명령을 거부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최장 1년까지 의료업 정지, 개설허가 취소 또는 의료기관 폐쇄를 명할 수 있다.
일요일인 23일부터 모든 전공의가 파업 참여대상으로 확대되면서 환자들이 부쩍 늘어나는 월요일인 24일부터 중환자들이 몰리는 대학병원들은 상당한 진료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26일부터 대한의사협회 파업에 전임의(임상강사)·봉직의(고용 의사)까지 참여하면 진료 차질은 훨씬 커진다. 대학병원들은 이미 수술과 응급실 입원 환자, 선별진료소의 코로나19 의심자 검사를 줄이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전공의들이 업무복귀 조건으로 의대 정원 확대 등 정부의 ‘4대 의료정책’의 철회를 요구하는 게 확실하다면 “원점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의료계 등과 논의해 정책을 결정하겠다”고 약속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정부가 ‘지역의사’ 등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성사시키려면 그 필요성과 의료취약지,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과 등 필수 진료과목 전공 기피 현상을 개선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하고 부실 의대 신설, 의대 교육 부실화 우려를 씻어낼 필요가 있어서다.
앞서 국립대학병원협회, 사립대학병원협회와 사립대학교의료원협의회,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는 지난 20일 정부에 “의대 정원 확대 등 쟁점이 있는 정책의 진행을 중단하고 (코로나19) 위기극복 후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의료계와 논의하겠다고 발표해달라”고 요청했다. 또 의협과 전공의협의회에는 집단휴진 등 단체행동 보류를 촉구했다.
4개 단체는 논의의 틀에 대해서는 “총리실 직속으로 정부, 의사, 병원, 의과대학, 시민사회 등 관련 조직과 기관이 참여하는 의료정책협의기구를 구성해 쟁점들을 새롭게 논의해 달라”고 제안했다.
사실 정부·여당은 의대 정원 확대 방침을 발표할 때 이를 포함한 청사진을 함께 제시하지 않아 사태를 키웠다. 정책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면 이참에 원점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논의해 정책 실패 위험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전공의들의 요구는 4대 의료정책 철회를 요구하는 대한의사협회와 결이 다른 측면이 있다. 전공의 다수가 업무개시명령을 따르지 않는다면 갈등만 커져 사태 해결을 어렵게 할 수 있다.
/임웅재기자 jae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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