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또 심상치 않다. 대구·경북지역 확산과 서울 이태원클럽 확산에 이어 수도권에서 3차 대확산이 일어나고 있다. 두 차례의 파고를 힘겹게 넘겼는데 세 번째 파고는 이전과 달리 전국적 확산으로 이어질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지금의 상황이 다른 나라보다 심각하지는 않지만 K방역의 우수성을 허물어뜨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게 만든다.
코로나19는 1차·2차·3차의 파고 때마다 새로운 문제를 고민하게 한다. 1차 때는 모두가 처음 겪는 낯선 상황이라 생활과 생업의 불편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관심이 온통 감염의 확산을 막는 쪽에 쏠려 있었다. 방역 수칙이 공개되고 다들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 약국 앞에 긴 줄을 섰다. 경계가 화두였던 셈이다. 모두 코로나19가 각자에게 다가와 감염이 일어나지 않도록 신경을 쏟았다.
2차 때는 방역만큼이나 경제가 핵심 의제가 됐다. 코로나19의 완전 종식이 단시간에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우리는 당분간 코로나19와 함께 사는 전대미문의 상황을 서서히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중단되거나 부분적으로 가동됐던 경제가 본격적으로 문제가 됐다. 결혼식은 열리기 어려워졌고 관광·항공 분야를 비롯한 산업은 도산 위기에 빠졌으며 신규채용 시장에서는 합격을 통보했다가 취소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1차와 달리 2차 파고 때는 당장 먹고살 일이 걱정인데 방역 수칙을 준수하면서 어떻게 하느냐는 문제를 풀어야 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긴급재난기금과 보조금을 지원하는 결정을 내렸다.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이지만 일단 경제가 돌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부득이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경기도 V자 반등을 기대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정부도 경기 활성화에 방점을 찍기 시작했다.
3차 파고 때는 이제껏 방역 수칙을 지키며 코로나19의 종식을 바라던 수많은 사람이 실망하게 되고 종교·정치 등 사회 여러 분야에서 갈등이 표면화했다. 정치권은 코로나19의 3차 파고가 일어난 원인을 두고 첨예하게 맞섰다. 보수 진영은 정부가 방역 수칙을 스스로 허물었다고 비판하고 정부와 여당은 개신교 단체가 광화문에서 주최한 광복절 집회가 문제라고 규정했다. 또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자 종교 예배의 자유와 방역 수칙의 준수가 날카롭게 대립하기 시작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코로나19의 종식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코로나19는 현재만이 아니라 미래에도 커다란 어둠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여기서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최일선에 있는 사람들의 고통과 인내력의 한계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덕분에’의 표현은 그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지만 심신의 고통을 덜어주지 못한다.
방역의 최일선에 있는 모든 사람의 고통은 우임금의 치수 사업에 비견할 수 있다. 그는 물난리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13년간 집을 떠나 있었으며 세 차례나 집 근처를 지났지만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이러한 헌신으로 큰 강 300곳과 지류 3,000곳의 치수 사업을 완수했다. 장자의 표현에 따르면 당시 우임금의 몰골은 눈 뜨고 보기 힘들 지경이었다. “장딴지에 살이 없고 정강이에 털이 다 빠졌다. 쏟아지는 비에 흠뻑 젖고 세찬 바람으로 머리를 빗는다(비무발·비無? 경무모·脛無毛. 목심우·沐甚雨, 즐질풍·櫛疾風).”
뒤의 구절은 ‘즐풍목우’로 널리 알려졌지만 앞의 구절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둘 다 우임금이 치수 사업에 헌신하느라 망가질 대로 망가진 몸의 상태를 대변하고 있다. 작금 방역의 최일선에 서 있는 사람들도 방호복을 벗지 못해 땀이 비 오듯 흘러 속옷까지 젖고 방호복을 벗으면 몸이 땀에 절어 쭈글쭈글해진다. 우임금과 마찬가지로 사명감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상황에서 방역과 치료에 협조하지 않고 방해를 하거나 불편을 토로하며 더 나은 대접을 요청한다면 인성의 문제를 건드리게 된다. 3차 파고는 어디까지 인간의 자유로 보장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해보게 만든다.
*** 발(?)은 月+拔에서 제방 변을 뺀 글자로 그래픽 처리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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