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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1858년 링컨 연설의 진위

'정확한 사실 보도' 교훈 남겨

링컨·더글러스 논쟁 100주년 기념우표, 노예제로 대립한 이 논쟁은 정치가 대중에게 직접 찾아가는 계기로 작용했다. /위키피디아




“모든 사람을 잠시 속일 수는 있습니다. 또 일부는 영원히 속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습니다.” 일리노이주 연방 상원의원에 출마한 에이브러햄 링컨이 현직인 스티븐 더글러스와의 토론에서 남긴 어록으로 알려져 있다. 정치인의 정직을 강조할 때 전가의 보도처럼 쓰인다. 거짓말이 많기 때문일까. 유독 한국에서 인용 빈도가 높다. 정작 미국에서는 잊히는 분위기다. 링컨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가장 일반적인 통설은 링컨이 1858년 9월8일 상대가 거짓말을 일삼고 있다며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이다. 이보다 일주일 앞선 9월2일 대중연설에서의 발언이라는 기록도 있다. 분명한 것은 단 한 가지. 일곱 차례 공식 토론회에서는 비슷한 문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날짜도 맞지 않는다. 세 번째와 네 번째 토론이던 9월의 토론은 각각 15일과 18일에 열렸다. 당시 신문기사에서도 비슷한 문구가 발견되지 않는다. 신문지상에 ‘링컨의 명언’이 등장한 것은 27년 뒤부터다.

뉴욕의 한 신문에 1885년 5월 ‘링컨 명언’이 처음 실린 이래 모든 언론으로 퍼졌다. 명언의 진짜 주인공은 링컨보다 205년 먼저 태어난 프랑스의 목사이자 작가 자크 아다비라는 주장도 있다. 1684년 저술에서 처음 사용했다는 것이다. 당시 토론과 ‘링컨 명언’의 실체 논란은 오늘날 우리에게 세 가지 시사점을 들려준다. 첫째, 링컨·더글러스의 노예제 토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중이 관심을 기울인 최초의 토론으로 시골 변호사인 링컨은 그해 선거에서는 근소한 차이로 졌으나 전국적 인사로 떠오르고 2년 뒤 대권을 잡았다.



둘째, 링컨보다 네 살 아래였던 더글러스는 대선에서 패한 뒤 더 강한 유세 일정을 잡았다. 남부와 북부의 전쟁을 막으려 링컨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다 건강을 해친 끝에 목숨마저 잃었다. 더글러스는 링컨의 아내인 메리 토드가 혼전에 교제했던 남성으로도 유명하다. 셋째는 언론의 자세. 전국적인 관심사로 떠오른 링컨·더글러스 논쟁의 대부분은 신문지상에 그대로 실렸다.

다만 똑같은 사안이라도 언론사별로 기사 내용이 달랐다. 지지하는 후보의 연설과 발언은 애써 교정하고 상대방의 실수는 그대로 놓아뒀던 편집 탓이다. 당시 언론이 공정하게 보도했다면 우리는 실체적 진실에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긴 162년 전 미국 언론을 얘기할 자격이 우리에게 있는지 의문이다. 한국 언론은 악의적 왜곡에서 얼마나 자유로울까.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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