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일본 자민당 신임 총재로 선출된 스가 요시히데의 발자취는 일반적인 일본 정치인들과 사뭇 다르다. 부친의 지역구를 이어받는 식으로 정계에 진출하는 대다수의 일본 정치인들과 달리 그는 아키타현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도쿄로 상경한 그는 마분지 공장과 어시장 등에서 일하며 모은 돈으로 호세이대에 입학한다.
졸업 후 일반기업에 입사한 그는 곧 정치에 뜻을 품고 가나가와현 오코노기 히코사부로 중의원 비서가 된 뒤 11년간 근무한다. 이후 스가는 요코하마시 의회 선거구에 출마해 두 차례 시의원을 역임한다. 당시 연줄은 물론 정치 경험도 부족했던 그는 하루 300여가구 등 총 3만가구를 방문하는 식으로 유세를 벌였고 이 때문에 선거가 끝날 무렵 구두 6켤레가 닳아 없어졌던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요코하마 시의원 재임 시절 그는 요코하마 수변 지역 재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등 요코하마시의 ‘그림자 시장’으로 불릴 정도로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후 1996년 자민당의 공천으로 가나가와현 중의원선거에 출마해 의회에 입성한다.
그간 접점이 없던 아베 신조 총리와의 인연은 2002년 일본인 납치 문제와 관련해 북한 화물여객선 입항 금지를 함께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일본에서는 납치 문제로 반북 감정이 확산돼 북한과 일본을 오가는 북한 만경봉호의 일본 입항을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됐다. 아베 총리는 관방장관으로서 납치 문제에 강경한 태도를 보였는데 자민당 총무였던 스가도 만경봉호 입항 금지를 강하게 주장했다. 이를 알게 된 아베 총리는 스가에게 연락했고 2006년 제1차 아베 내각 때 스가는 총무상을 맡으며 아베 총리의 오른팔이 된다. 2012년 12월 제2차 아베 내각 출범 당시 관방장관으로 기용된 스가는 현재까지 역대 최장기간 관방장관으로 재임했고 사실상 아베 총리의 뒤를 이을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서는 다소 아웃사이더인 그의 위치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악화한 장기불황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자수성가형 정치인인데다 2009년 고가파를 탈퇴한 뒤 현재까지 무파벌 기조를 유지해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테네오인텔리전스의 일본전문가인 토바이스 해리스는 “만약 스가 (정권)가 계속된다면 그가 세습정치인이 아닌 영향도 있을 것”이라며 “그는 아베 총리보다 유권자들과 더 잘 소통할 수 있다. 그가 아베의 수석고문으로 활동할 때 유권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재정 문제에 끈질기게 집중해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총무상 재임 당시 스가는 지방자치단체에 기부금을 낸 사람에게 세액공제를 해주는 고향세를 도입했다.
당시 기존에 없던 세제를 두고 반대가 거셌지만 농촌 출신인 스가는 이 정책이 농촌에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겨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최근까지 줄곧 휴대폰 요금을 40%가량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 같은 서민 행보와 맞닿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4월 아키히토 일왕의 뒤를 이은 나루히토 일왕의 새 연호인 ‘레이와’가 쓰인 액자를 들어 올려 ‘레이와 아저씨’로 불리면서 인기를 얻은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평가다.
/김연하기자 yeon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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