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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그리고, 아들은 메세나…코오롱의 깊은 뜻

['스페이스K_서울' 16일 개관]

공원옆 600평 미술관서 代이어 미술나눔

'베니스 황금사자상' 조민석 건축설계

핫한 작가 총출동 개관전 '일그러진 초상'

야외공원엔 한경우 AR설치 참여형 작품

코오롱그룹의 현대미술관인 ‘스페이스K_서울’ 개관 특별전에 선보인 신미경(왼쪽)의 비누조각과 베트남작가 딘큐레의 작품.




#코오롱(002020)그룹을 이끌던 이동찬(1922~2014) 전 회장은 1995년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아들에게 경영권을 넘겼다. 회장으로 살던 그의 ‘인생 2막’은 화가였다. 미술을 전공하거나 정식으로 배운 것은 아니었지만 젊어서부터 예술을 사랑했고 취미로 그림을 그려오던 터였다. 서울 종로구 통의동 코오롱 사옥에 작은 화실도 마련했고 풍경화를 즐겨 그렸다. 팔순 기념 때도, 88세 미수 때도 전시를 열었고 아들 이웅열 회장을 포함한 가족들의 그림을 함께 걸었다. 예술을 즐기고 함께 공유하는 것이 가풍이었다.

#영화광이며 만능 스포츠맨으로 알려져 있는 이웅열 회장은 사원들 뿐만 아니라 사옥 주변의 지역민과도 예술의 기쁨을 나누고 싶었다. 1998년부터 과천 사옥에서 지역민을 위해 클래식·뮤지컬· 마술쇼 등을 공연하는 ‘코오롱 분수문화마당’을 약 10년간 진행했다. 이후 2009년 과천타워 로비에서 개최한 이벤트성 전시가 의외로 큰 호응을 얻었다. 이를 계기로 2011년 과천 본사 로비에 시민들이 무료로 미술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스페이스 K’를 마련했다. 서울 강남의 코오롱모터스를 비롯해 광주, 대구, 대전 등지로 확장했다. 유휴공간을 활용한 ‘셋방살이’였지만 총 152회 전시로 437명의 작가를 후원했고, 매년 2만여 명이 관람하는 지역 명소가 됐다. 이웅열 명예회장은 지난 2017년 한국메세나협회의 메세나인상을 수상했다.

건축가 조민석의 설계로 마곡지구 내 조성된 코오롱그룹의 미술관 ‘스페이스K_서울’이 16일 공식 개관한다. /사진제공=코오롱


대(代)를 이은 코오롱 그룹의 예술 향유와 메세나 정신이 ‘예술 나눔’의 결실로 이어졌다. 코오롱그룹이 서울 마곡산업단지 안에 마련한 미술관 ‘스페이스K_서울’이 16일 공식 개관한다. 지난 2018년 ‘코오롱 원앤온리(One&Only)타워’를 건립한 것에 따른 공공기여 형식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미술관의 건축·설계는 2014년 제14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 건축전에서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조민석 매스스터디스 소장이 맡았다. 약 105억 원을 들여 건립한 미술관이다. 코오롱 그룹은 이를 서울시에 기부채납한 뒤 향후 20년간 운영할 예정이다.

새로 건립된 미술관 ‘스페이스K_서울’은 마곡지구 문화공원 2호에 연 면적 약 600평(2,044㎡) 규모로 조성됐다. 부드러운 곡선과 호가 어우러진 기하학적 건물이 주변의 녹지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공공장소로서의 미술관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상대적으로 문화 인프라가 부족한 서울시 서남부지역에 위치해 인근 지역민이 자유롭게 방문하며 현대미술을 쉽게 이해하고 접할 수 있는 새로운 전시 명소가 될 전망이다.

코오롱그룹이 예술나눔을 위해 건립한 미술관 ‘스페이스K_서울’의 개관전 전경. /사진제공=코오롱


미술관으로 향하는 공원에서부터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한경우 작가가 증강현실(AR)로 구현한 ‘상상도 할 수 없는 기둥들(Umimaginable columns)’이다. 맨눈으로는 그저 공원인 이 곳에 모바일기기를 갖다 대면 5m 높이의 기둥들이 나타난다. 전체를 파악할 수 없는 거대한 기둥,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만 보이는 기둥이 인식의 한계를 자각하게 한다. 1,2층에서는 벽처럼 보이는 가상 기둥이지만 미술관 옥상에서 AR앱을 구동하면 비로소 글씨를 이루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깨달음을 주는 동시에 기둥의 문구를 국·영문으로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관객 참여형 작품의 재미도 전한다.

글렌 브라운 ‘여인Ⅱ’ /사진제공=코오롱




안드레 부처 ‘무제(방랑자)’ /사진제공=코오롱


1층 전시장에서는 개관 특별전 ‘일그러진 초상’이 내년 1월 29일까지 열린다. 가장 전통적인 미술 장르가 초상화지만, 현대의 미술가들은 일그러진 초상을 통해 자기 자신은 물론 사회를 직시하고 그 부조리까지 들춰낸다. 영국 yBa의 초기 작가 중 한 명인 글렌 브라운은 렘브란트·벨라스케스·피카소 같은 대가들의 유명 작품을 얇은 붓질로 재해석했고 최근에는 찐득한 물감을 덕지덕지 쌓은 독특한 입체로 바꿔놓고 있다. 고대 원시회화처럼 보이는 독일화가 안드레 부처의 작품이 그 유명한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안개 낀 바다 위의 방랑자’에서 영감 받은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실소가 터질지도 모른다. 유럽 역사의 폭력성에 주목하는 루마니아 화가 아드리안 게니, 베트남의 성차별을 지적하는 베트남계 미국작가 딘큐레 등은 높은 세계적 명성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작가들이었다.

국제무대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 예술가 중 한 명이자 ‘집 시리즈’로 유명한 서도호의 1996년작 ‘고등학교 교복’은 교복문화와 군사문화가 뒤섞인 1970년대의 집단적 통제를 비판한 작품이다. 이 밖에도 줄리안 슈나벨·길버트 앤 조지·지티시 칼랏·장샤오강 등 세계적 거장들이 총출동해 ‘미술관다운 미술관’의 시작을 보여준다.

2층 전시장에서는 회화·설치·미디어 분야를 비롯해 연극·극작가 등 각자 영역이 확고한 5명의 예술인들이 협업해 ‘우주로 간 카우보이’라는 공동 작품을 영상으로 선보인다. 과거 ‘스페이스K’에서 케이시 맥키의 작품을 보고 꿈을 품은 소년이 우주로 간 카우보이가 되어 한계를 뛰어넘는 시간을 보낸 후 다시 미술관으로 돌아와 그림 앞에 선다는 내용이다.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미술관의 고민과 의지가 함축적으로 담겼다.

미술관 측은 내년 상반기 미국 마이애미 출신의 화가 헤르난 바스, 하반기엔 영국 개념미술 작가 라이언 갠더 등 굵직한 전시를 예정하고 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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