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 요시히데(71) 신임 자민당 총재가 16일 일본의 새 총리로 선출됐다. 스가 총리는 대외관계에서 미일동맹을 강조해온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외교 노선을 계승하는 전략을 고수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미중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만큼 특정 국가를 일방적으로 편드는 모험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아베 전 정권의 미일동맹 기조는 유지하면서도 경제적 실리를 위해 대중관계의 치명적인 손상은 피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일본 하원 격인 중의원은 이날 오후 본회의에서 아베 총리의 사퇴에 따른 새 총리 지명선거를 실시해 과반의 지지를 얻은 스가 총재를 제99대 총리로 뽑았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일본에서 행정수반인 총리가 바뀌는 것은 제2차 아베 정권이 출범한 지난 2012년 12월 이후 7년8개월여 만이다. 스가 신임 총리는 중의원에서 총 투표 수(462표) 가운데 절반(232표)을 크게 웃도는 314표를 얻었다.
스가 내각에서는 아베 내각의 주요 인사들이 그대로 자리를 이어간다. 제2차 아베 정권 내내 같은 자리를 맡아온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을 비롯해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 하기우다 고이치 문부과학상, 가지야마 히로시 경제산업상, 아카바 가즈요시 국토교통상, 고이즈미 신지로 환경상,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재생상, 하시모토 세이코 올림픽상 등 8명의 유임이 확정됐다.
국제사회에서 가장 주목하고 있는 대외관계와 관련해 스가 총리는 아베 정권의 외교 노선을 따르겠다는 뜻을 천명했다. 12일 그는 외교정책을 놓고 아베 총리와 “상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전문가들은 스가 내각이 아베 전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다져온 미일동맹의 강화에 주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스가 정권의 핵심과제는 중국과 북한 견제인데, 이를 위해서는 미국의 절대적인 지지가 필수라는 게 워싱턴 정가의 시각이다. 이를 고려하면 스가 총리 아래에서 미국이 추진하는 인도태평양전략 동참과 역내 4각 안보협력체인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 강화에 가속도가 붙을 가능성이 크다.
대중 외교전략은 미중갈등의 지속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 중국과의 국지적인 갈등을 피하려 할 것으로 분석된다. 아베 정권이 헌법 개정과 적 기지 공격능력 보유 등을 추진해왔지만 중국의 반발을 살 수 있는 만큼 스가 정권은 유보적인 입장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일관계의 최대 갈등 요인인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을 놓고도 강경한 대응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과거 센카쿠열도 이슈로 중일관계가 최악의 갈등 상황에 빠졌을 때 중국 내에서 일본차 불매운동이 벌어졌던 사례 등을 감안하면 경제적 측면에서는 중국과의 협력관계를 최대한 유지하려 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대표적 친중파인 니카이 도시히로 자민당 간사장이 스가 총리 당선의 결정적인 역할을 한 만큼 중국을 향해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일본은 중국이 주도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참여한 상태인데 앞으로 통상협력이 더 강화될 수 있다.
50일이 채 남지 않은 미국 대선과 관련해서는 최종 승자에 대한 불확실성이 남아 있는 만큼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며 당분간은 신중한 자세를 견지할 것으로 보인다. 스가 총리는 월간지 분게이슌주 기고문에서 “아베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이 서로 ‘도널드’ ‘신조’라고 부르는 특별한 관계를 만든 데는 내 역할도 다소 있었다”면서 “외교에서 중요한 것은 ‘전체를 보는 눈’이다. 만에 하나 상황에도 대비하는 위기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롄더구이 상하이 국제문제연구원 아태연구센터 부주임은 “일본은 항상 미국의 충실한 추종자였다”면서도 “미국 대선 전의 불확실성 속에서 일본이 미국의 대중 압박전략에 일방적으로 기울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스가 신임 일본 총리에게 취임 축하 서한을 보내 “스가 총리의 재임 기간 중 한일관계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함께 노력하자”는 뜻을 전했다. 또 “일본 정부와 언제든지 마주앉아 대화하고 소통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김기혁기자 뉴욕=김영필특파원 coldmet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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