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고(故)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 연방대법관 후임에 에이미 코니 배럿 제7연방고법 판사를 지명했다. 민주당의 반발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후임 대법관 임명을 강행하면서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대법관 임명을 둘러싼 공화당과 민주당 간 갈등이 한층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26일(현지시간) 미 경제방송 CNBC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배럿 판사와 가족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열어 배럿을 대법관으로 지명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할 데 없는 업적과 우뚝 솟은 지성, 훌륭한 자격, 헌법에 대한 충성심을 지닌 여성”이라고 했고 배럿은 “나는 미국을 사랑하고 미국의 헌법을 사랑한다. 대법관 지명을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는 소감을 전했다.
1972년생으로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난 배럿은 우파였던 앤터닌 스캘리아 대법관의 법률서기를 지냈고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보수층의 지지를 받고 있다. 실제 그는 수정헌법 2조의 총기소지 권리와 이민·낙태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해왔다. 배럿은 지난해 총기 금지는 수정헌법 2조를 2차적 권리로 다루는 것이라며 총기 소유를 지지했다. 지난 6월에는 신규 영주권 신청자들에 대한 불이익이 담긴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을 일시적으로 정지시킨 판결에 반대 의견을 냈다. 2018년에는 법원이 낙태 이후 태아를 화장하거나 묻도록 한 인디애나주 낙태 규정 논란에 대한 재고를 거부하자 보수파 동료들과 함께 이의를 제기한 적도 있다. 배럿은 아이티에서 입양한 2명을 포함해 총 7명의 자녀를 뒀다. 그는 오바마케어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배럿은 오바마케어에 대한 대법원의 2012년 합헌 판결에 결정적 역할을 한 존 로버츠 대법원장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민주당은 배럿의 임명 추진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배럿 인준안이 통과될 경우 대법원의 정치 성향이 보수 6, 진보 3으로 바뀌는데다 보수층이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표를 몰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내 보수층은 보수 성향의 대법관 임명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CNN은 “민주당과 진보층은 배럿이 낙태 권리를 후퇴시키고 오바마케어를 무효화할 수 있다고 보고 인준에 반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상원에서 다수를 점한 공화당이 밀어붙이면 현실적으로 이를 막아낼 방법이 없다는 게 워싱턴 정가의 분석이다. 상원 100석 가운데 공화당 의석은 53석으로 이중 연내 인준 반대 의사를 표명한 공화당 상원의원 2명을 제외하더라도 단독처리가 가능하다.
당초 공화당은 연내처리 방침을 바꿔 대선 전 인준을 마치는 쪽으로 정리했다. 개표과정에서 다툼이 있을 경우 대법원에서 유리한 판결을 받기를 원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통신은 “민주당은 가능한 한 인준 절차를 늦추려 하지만 공화당이 상원을 지배하고 있어 인준은 확실해 보인다”고 분석했다.
/뉴욕=김영필특파원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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