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트콤 ‘논스톱’에서는 구리구리 뱅뱅을 외치며 세상 특이한 캐릭터를 연기하더니,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에서는 뇌종양을 앓는 소매치기 출신 스턴트맨으로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또 래퍼 YDG로는 힙합계까지 뒤흔들며 레전드 반열에 올랐다. 참으로 종잡을 수 없는 커리어를 가진, 다재다능한 연예계 대표 만능 엔터테이너 양동근이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양동근은 앞 가림막을 설치하고 마스크를 끼고 있는 기자들을 향해 “진풍경이다”라며 “사진 좀 찍어도 되냐”며 물었다. 그리고는 “(인터뷰가)기대 된다. 세상도 바뀌고 저도, 기자분들도 바뀌었다”며 엉뚱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그가 출연한 영화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은 죽지않는 언브레이커블을 죽이기 위한 이야기를 그린 코믹 스릴러이다. ‘시실리 2km’, ‘차우’, ‘점쟁이들’로 독보적인 장르와 스타일을 개척한 신정원 감독이 8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코미디의 귀재 장항준 감독이 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신정원 감독이 SF와 스릴러 등 생소한 장르적 변화를 꾀해 하이브리드한 작품으로 완성했다.
양동근은 SF, 스릴러, 코미디, 호러, 액션 등 다양한 장르를 담은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에 끌린 이유로 “외계인을 소재로 다뤘다는 점에서 희소성이 있었다”고 말했다.
“출연 자체가 도전이었어요. 제가 모르는 미지의 세계에 부딪혀보고도 싶었고요. 일단 대본이 술술 넘어갔어요. 이해는 안 되지만 재미있을 것 같아 구미가 당겼죠. 계속 해프닝이 이어지는 부분에서 가장 큰 재미를 느꼈어요. 대본을 기대하게 되고, 다음 신이 뭐지? 궁금하게 됐죠.”
그는 영화에서 언브레이커블의 정체를 추적해온 미스터리 연구소 소장 ‘닥터 장’ 역을 맡아 신스틸러로 맹활약한다. 거의 영화 대부분의 웃음을 담당할 정도의 신들린 코믹 연기를 펼친다. 정작 그는 “사실 제가 나오는 부분이 재미있다고 하는 게 이해가 안된다”며 의아해했다.
“사실 코믹연기는 자신이 없었고, 이건 제 역량으로는 할 수 없는 캐릭터였어요. 이 캐릭터는 감독님이 만들어 낸 거예요. 신정원 감독님 코드가 워낙 독특하고 저는 이해할 수 없는 코드를 갖고 계셔요. 감독님의 코드를 사전에 먼저 이해하기에는 감독님도 워낙 말이 없으시거든요. 혼자만의 세상에서 구상하고 펼쳐내는 분이세요. 그래서 현장에서 작품에 임할 때부터 어떻게 나올지 가늠할 수가 없었죠. 무조건 감독님의 디렉션에 충실해보자고 생각했어요. 오히려 현장에서 많이 준비하지 않고 비우고 갔어요.”
‘논스톱’에서 구리구리 캐릭터의 인상이 강해서였을까. 왠지 모르게 코믹한 이미지를 가진 양동근은 평소 길에 지나다니면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피식피식 웃는다고 했다. 자신의 코믹한 이미지에 대해 그는 “난 원래 진지하다. ‘진지충’이다”라고 해명했다.
“사람들과 말도 잘 안 섞었어요. 재미있는 사람인줄 알았다가 실망하는 분들도 있었어요. ‘논스톱’을 할 당시 사람들이 다 제가 그런 사람인 줄 알더라고요. 그때도 내성적이고 소극적이고 진지했어요. 평소 다가가기 힘들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어느 순간 사람들이 눈만 마주쳐도 웃어요. 아, 많은 분들이 재미있는 제 캐릭터를 좋아하나 보다 했죠. 직업적으로 즐거움을 주는 게 가치가 있고 큰 미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양동근은 가정을 꾸리고 아빠가 되면서 연기에 대한 가치관도 크게 바뀌었다고. 그는 자신을 “생활형 연기자, 기술직”이라고 표현했다.
“예전에는 이해가 안 되거나, 몰입이 되지 않으면 작품을 선뜻 선택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어요. ‘생활형 연기’라고도 하잖아요. 육아를 하고, 가정을 이끌기 위한 기술직이 된 느낌이에요. 아빠가 된 후 어떤 역할이든 뭐든지 해보겠다는 마음가짐이 생겼죠. 이젠 저를 위한 삶이 아니예요. 예전의 저는 없다고 봐도 돼요. 이제는 아내와 아이들을 위한 삶을 살아요.”=
결혼 전 예능 프로그램은 보지 않았던 그는 육아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하기도 했다. 예능을 좋아하는 아내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일종의 도전을 했다.
“아내가 예능을 너무 좋아해요. 아내한테 재미없다고 많이 혼났죠. 저는 거부감이 있어 예능을 전혀 안 봤는데, 아내가 좋아하니까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사람보다는 제가 즐거움을 주고 싶잖아요. 그래서 나간 게 ‘쇼미더머니3’였어요. 어디 가서 말하고, 의사표현하는 데 울렁증이 있었는데, 그때부터 다 도전해보는 성격으로 바뀌었어요. 그러다보니 지금은 내성적이지 않아요. 활달해졌어요.(웃음)”
1987년 9살 때부터 연기를 시작해 드라마 ‘서울 뚝배기’, ‘형’ 등으로 전 국민적인 사랑을 받은 양동근. 성인이 된 현재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며 어느새 33년차 배우가 됐다. 그는 자신의 연기 인생에 대해 “그냥 ‘버텼다’고 밖에 설명이 안된다”고 말했다.
“20대 때 연기할 적에는 기술보다는 너무 몰입하는 ‘메소드 연기’를 하다 보니까 에너지가 많이 소모됐어요. 이제 그런 것들을 내려놓고 ‘나는 기술직이야’라고 마음을 바꾸니까 연기가 되게 편해졌어요. 그만두고 싶었던 때도 있었지만 딱히 재주가 없었어요.(웃음) 잘 버텼다고, 대견하다고 제 자신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앞으로도 버텨내야 될 순간들이 더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남자배우는 40대부터 시작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 시작점까지 잘 온 것 같아요.”
지난 2002년 방송된 MBC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는 많은 시청자들의 인생작으로 거론된다. 물론 양동근의 대표작으로도 손꼽힌다. 그러나 ‘네 멋대로 해라’는 20여년 동안 양동근에게 부담감이자 짐, 부담스러운 꼬리표였다.
“근 20년 동안 저는 ‘네 멋대로 해라’와의 싸움이었어요. 그게 너무 셌고, 기준이 되어 버린 거죠. 장외 홈런을 넘기니 사람들이 모두 장외 홈런을 기준으로 봤어요. 좋은 타자는 번트도 치고 삼진 아웃도 당하잖아요. 20년 간 딜레마였어요. 제가 이것을 어떻게 벗어날까. 근데 이제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어요. ‘네 멋대로 해라’와 같은 작품을 할 수도 없고, 넘어설 수도 없어요. 배우로서 진중한 작품은 ‘네 멋대로 해라’ 하나로 됐다고 생각해요. 이제 그 작품에 크게 기준이나 가치를 두지 않아요. 자유로워졌다고 할 수 있죠. 이제 겨우 40대가 됐어요. 사실 예전에 했던 건 워밍업이고, 배우 인생은 지금부터죠. 편안하게 마음 먹고 있어요.”
결혼 후 연기에 대한 가치관이 180도 바뀐 양동근이다. 그렇다면 작품을 고르는 기준도 바뀌었을까. 그는 “이제는 ‘막장’ 드라마에도 출연할 수 있다”고도 말했다.
“저는 작품 보는 눈이 정말 없어요. 예전에도 제가 직접 작품을 고른 건 거의 없어요. 그냥 주어지면 열심히 해왔어요. 회사와 저의 관계의 산물이에요. 물론 정말 하고 싶었던 것도 있고, 울며 겨자먹기로 한 작품도 있죠. 그래서 아직까지도 저한테 어울리는 게 뭔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연기 스펙트럼은 넓은 것 같아요. 이제는 해보고 싶은 것 보다는 주어지면 뭐든지 해볼 수 있는 깡이 생겼어요. 예전에는 막장 드라마가 이해가 안됐거든요. ‘왜 저런 드라마를 만들까’, ‘왜 과장하고 현실을 왜곡시킬까’ 싶었죠. 이제는 그것 또한 현실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막장 드라마도 나갈 수 있어요.”(웃음)
/이혜리기자 hyer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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