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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스포츠문화
[로비의 그림]자연을 존중하며 품격있고 우아하게...서울의 얼굴 된 호텔의 안목

■서울신라호텔

박선기의 샹들리에형 설치작품

세필 촘촘한 김홍주의 꽃들에

자연주의 日작가의 분수조각도

영빈관 뒤로는 조각공원 펼쳐져

서울신라호텔 로비에는 2층 높이의 천장에 박선기의 샹들리에형 조각 ‘An Aggregation 130121’가 설치돼 있고 엘리베이터 통로로 향하는 양쪽 벽에 김홍주의 꽃 같은 회화 ‘무제’ 두 점이 걸려 방문객들에게 환영인사를 전한다. /사진제공=호텔신라




서울 중구 장충동의 신라호텔. 처음 방문한 사람이라면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시선이 자연스럽게 천장 쪽을 향하기 마련이다. 은하수의 한 무더기 별인 양, 새벽 기운 머금은 이슬 같기도 한 초대형 샹들리에가 2층 높이의 천장을 차지하고 있다. 수만 줄의 투명 나일론실 끝에 수정처럼 보이는 투명 아크릴 비즈가 알알이 매달렸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마치 내리다 공중에서 멈춰버린 빗방울 같아 시간이 멈춰버린 영화 속 장면처럼 이곳에서의 순간을 영원토록 가슴에 새겨두라 속삭인다. 박선기 작가의 이 작품은 ‘조합체’로 번역되는 ‘An Aggregation 130121’. 지난 2006년 로비에 설치된 후 단박에 호텔신라(008770)의 얼굴이 됐을 뿐만 아니라 국내외 유수의 대형 호텔들이 앞다퉈 박선기 작품을 찾는 기폭제가 됐다.

객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통로 양쪽의 그림 두 점이 환영의 인사를 건넨다. 존경받는 원로화가 김홍주의 ‘무제’이나 ‘꽃’이라 불리는 그림이다. 성인 키보다 더 큰 커다란 화면을 단 하나의 꽃송이가 꽉 채운 작품이라 멀리서도 눈에 띄고 화사하면서도 충만한 느낌을 준다. 화가는 머리카락만큼이나 가는 붓으로 한땀 한땀 수놓듯 세필을 반복해 캔버스를 뒤덮었다. 고행에 가까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사실 꽃으로 보인다 뿐이지 작가가 실제 꽃을 그리고자 공들인 것은 아니다. 꾸준하고 성실하게 쇠털 같은 나날들로 삶을 채우면 어느새, 어디서 누가 보더라도 꽃 같은 인생이 되노라 묵묵히 말하는 작품이다. 분홍과 연두 등 화사한 작품들이 있지만 이곳에는 회색톤의 작품이 걸려 로비 전체의 차분함과 어우러진다.

루이스 부르주아 ‘코바늘 시리즈(Crochet) Ⅳ’ /조상인기자


한눈에 들어오는 것은 박선기와 김홍주의 작품이지만 서울신라호텔 로비의 숨은 보물은 루이스 부르주아(1911~2010)다. 1982년 여성작가 최초로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회고전을 열었고 1999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최고영예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부르주아를 많은 이들은 거미 모양의 대형 조각 ‘마망’으로 친숙하게 기억한다. 프랑스 태생으로 미국에서 활동한 그는 아버지로 인해 불행했던 가정환경과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작품에 투영했고 20세기를 대표하는 거장이자 페미니즘 예술가로 분류된다. 로비 안쪽으로 열린 공간의 라운지카페 ‘더 라이브러리’의 벽난로 뒤편에는 부르주아의 ‘코바늘 시리즈(Crochet) Ⅳ’가 걸려 있다. 붉은색 굵은 실이 구불구불 율동감 있는 형태를 이뤘는데 어디가 실의 시작이고 끝인지도 알 수 없고 꼬이고 엉킨 듯한데도 그런대로 곱게 볼만한 것이 꼭 우리네 인생을 닮았다. 부르주아가 즐겨 사용한 핏빛 붉은색, 탯줄 같은 붉은 실은 생명력을 상징하며 실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 것에는 과거가 있었기에 현재가 존재한다는 작가의 이념이 담겼다. 부르주아는 어릴 적에 거미가 실을 잣듯 태피스트리(벽걸이 천) 복원 일을 하던 어머니를 도왔고 그 영향으로 실이나 직물을 예술적 소재로 사용했기에 ‘코바늘 시리즈’는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부르주아 작품 3점도 모두 ‘코바늘 시리즈’이며 그중 하나는 이곳 로비의 작품과 동일한 연작이다. 안으로 더 들어가면 좀 더 내밀한 인사들이 오가는 공간이라 작품의 격도 한층 높아진다. 앙리 마티스의 ‘춤’을 떠올리게 하는 추상적 여성 실루엣 그림은 미국작가 세실 터천의 작품이다. 종이나 인쇄물을 오려 붙이는 콜라주 기법으로 유명한 작가가 검은 종이로 인체를 완성했다.

서울신라호텔 정문 앞 중정에는 일본 현대조각계의 원로 세키네 노부오의 분수조각 ‘무지개’가 놓여 자연과의 조화, 동서양의 합일을 보여준다. /사진제공=호텔신라


로비 안쪽 박선기 작품의 투명한 반짝임과 대구를 이루는 바깥쪽 자리에 물방울 무지개가 찬란하다. 일본 현대 조각계의 원로 세키네 노부오의 작품으로 제목도 ‘무지개’다. 90도로 각을 이루며 좌우로 벌어진 돌 사이로 물이 뿜어나와 둥그스름한 곡선을 이룬다. 물줄기의 간격은 흐트러짐 없고 그 움직임은 자연의 순리를 따른다. 작가는 1960년대 후반 등장해 1970년대까지 영향을 미친 일본의 현대미술 운동 모노하(物派)의 일원이었고 그들을 철학·이론적으로 이끈 한국인 미술가 이우환과도 인연이 깊다. 자연을 지배하려 들지 않고 그 섭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그의 예술관이 담긴 이 분수조각은 1995년에 조성됐다. 12년 전 한국에서의 전시를 위해 방한했던 작가는 물줄기가 양쪽에서 솟는 것에 대해 “동서양을 연결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영빈관 쪽으로 걸어가 보자. 이곳에 호텔이 들어서게 된 배경이 바로 영빈관이다. 1959년 이승만 전 대통령이 국빈용 숙소를 지으라고 지시해 터를 다지기 시작했으나 공사와 중단을 반복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단숨에 밀어붙여 1967년에 준공된 한옥 건물이다. 국빈을 위해 사용되다 1973년 정부가 매각을 결정했다. 삼성 창업주 호암 이병철 회장은 평소 “호텔은 도시의 얼굴이며 일국(一國)의 얼굴”이라 했다. 호암은 “서울에는 한국의 얼굴이라고 내세울 만한 호텔이 없어서 찬란한 우리 고유의 문화를 꽃피웠던 신라시대의 우아한 품격의 향기를 재현”하고자 영빈관 인수를 결심해 호텔신라 건설에 돌입했고 1978년 준공했다.



최만린 ‘화랑’ /조상인기자


심정수 ‘승무’ /조상인기자


한용진 ‘가족군상’ /사진=조상인기자


영빈관 뒤쪽 계단을 따라 팔각정에 오르면 사적 제10호인 서울 한양도성의 성곽과 나란한 산책로를 따라 숲속 조각여행이 시작된다. 팔각정 잔디밭 바로 앞에 도성 바깥쪽으로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기고 선 대형 청동조각 ‘화랑’은 국립현대미술관장까지 지낸 원로조각가 최만린의 1973년작이다. 그 옆, 박사 고깔을 쓰고 허리를 젖혀 나빌레라 춤추는 여승 조각은 지난해 김세중조각상의 영예를 안은 원로 작가 심정수의 1987년작 ‘승무Ⅱ’. 걸으며 발치의 돌, 석물 하나 놓칠 게 없다. 활 쏘는 ‘화랑’ 곁에 나직이 모인 돌조각은 한용진의 ‘가족군상’이다. 콩나물 머리처럼 간략하지만 돌덩이가 마치 아기 안은 엄마와 따라다니는 아이들처럼 올망졸망 다정하다. 조금 뒤처진 2점까지 총 7점이 한 작품을 이룬다. 그 맞은편, 호텔신라 본관 방향으로 놓인 작품은 대법원 중앙청사의 ‘정의의 여신상’으로도 유명한 박충흠의 작품이다. 강대철·최기원·김인겸·노재승·홍순모 등의 조각이 산책의 벗처럼 이어진다. 조각공원의 끄트머리에 전국광의 ‘매스의 내면’이 놓였다. 나무를 툭툭 쌓고 포개 만든 일주문 형태의 작품인데 소박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오히려 위엄과 당당함을 내뿜는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홍순모 ‘기다리는 사람들-85’ /조상인기자


전국광 ‘매스의 내면’ /사진=조상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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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레저부 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
친절한 금자씨는 예쁜 게 좋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현대미술은 날 세운 풍자와 노골적인 패러디가 난무합니다. 위작 논란도 있습니다. 블랙리스트도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착한미술을 찾기 위해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미술관, 박물관으로 쏘다니며 팔자 좋은 기자. 미술, 문화재 전담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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