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계의 로로피아나’로 불리는 이탈리아의 가구 브랜드 플렉스폼(Flexform)이 지난달 국내에 상륙했다. 1959년 갈림베르티(Galimberti) 가문이 설립한 플렉스폼은 절제된 우아함을 추구하는 디자인 철학, ‘메이드 인 이탈리아’의 철칙, 최고급 소재와 장인 정신을 고집하기에 ‘명품 위의 명품’으로 통한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 인피니(Infini) 매장에 캐시미어와 천연 가죽을 소재로 한 소파들을 선보였다. 제품 가격은 수천만 원대부터 수억 원을 호가한다. 누군가 물었다. “가구 가격이 그렇게 까지 비쌀 필요가 있나요.” 그래서 짚어본다. 의자는 가구가 아니다.
◇의자는 권력이었다
고대의 의자는 권력 그 자체였다. 의자가 단순히 앉기만 하는 도구라면 들판에 무심히 놓인 돌덩어리가 태초의 의자였겠다. 인간이 공들여 제작한, 앉을 자리 아래에 4개의 다리를 가진 가장 오래된 의자는 고대 이집트의 무덤에서 발굴됐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이집트 피라미드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것이 쿠푸왕의 피라미드인데 기원전 2600년 무렵에 조성된 쿠푸의 어머니 헤테프페레스 1세의 무덤에서 황금 장식의 팔걸이 의자가 나왔다. 고대 국가의 왕좌는 권위의 상징이었다. 왕관이나 홀처럼 의자는 높은 곳에 앉으신 분의 신성한 왕권을 나타냈다. 이집트의 그림에서도 일반 백성들은 바닥 매트나 스툴(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지만 파라오는 의자 위에 앉아 있다. 무덤 벽화에서는 신이나 신격화한 왕들만이 의자를 차지했다. 기원전 1330년 무렵의 투탕카멘 무덤에서는 금과 보석으로 장식된 팔걸이, 다리는 왕권을 상징하는 사자 형태로 조각된 의자가 출토됐다.
고대사회에서 등받이나 팔걸이가 있는 의자에 앉는다는 것은 특권이자 계급의 표시였다. 의자는 실제로 사람을 바닥 위로 끌어올린다. 지위의 높낮이 차를 시각적으로 구현했다. 중국은 중앙아시아 유목 문명의 영향을 받아 7~9세기 당나라 때 의자가 도입됐다. 중국의 의자 또한 권위와 직결됐다.
◇의자는 권위다
의자의 ‘권위’는 언어에까지 파고들었다. 의자를 뜻하는 라틴어 ‘카테드라(cathedra)’는 주교의 왕좌를 의미하게 됐다. 파리 노트르담성당 같은 대성당을 가리키는 ‘카테드랄(cathedral)’은 ‘카테드라’의 파생어인데 교회(church), 채플(chaple) 같은 작은 성전이 아닌 주교의 의자가 있는 곳을 의미한다. 중세시대 유럽에서 왕권 이상의 권력자였던 교황도 의자로 그 위엄을 드러냈다. 르네상스의 3대 거장 라파엘로 산치오는 ‘공포의 교황’이라 불렸던 ‘교황 율리우스 2세 초상화(1511)’를 그리면서 녹색 벽을 택해 황금 장식의 붉은 의자가 더욱 돋보이게 했다. 티치아노 베첼리오의 ‘교황 바오로 3세의 초상(1545)’에서도 의자가 그림의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으며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교황 이노센트 10세의 초상화(1649)’에서도 의자의 화려함이 교황의 권위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1950년대 ‘교황’ 연작을 제작한 영국 전후미술의 거장 프랜시스 베이컨은 신(神)의 대리인이어도 육신에 의지하는 인간일뿐인 교황을 파과적 이미지로 그리면서도 ‘의자’를 항상 표현했다. 4월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이나 새로 뽑힌 레오 14세 교황의 타임지 표지 사진에서는 더 이상 ‘교황의 의자’를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소탈한 모습으로 낮은 곳으로 향하려는 교황들의 의지가 부각됐다. 불교도 마찬가지다. 1세기 무렵 인도 부근 간다라 지역에서 등장한 초기 불교 미술에는 보리수 아래의 빈 왕좌가 부처의 존재를 상징했다. 불화에서는 깨달음을 얻은 부처의 존재를 빈 의자나 윤회의 바퀴로 표현했다. 조선 시대의 왕실 기록화에 등장하는 빈 의자는 왕의 어좌(御座)다. 성군은 형상을 초월한다는 유교 사상의 반영인데 역시나 의자 그 자체가 신성한 권위를 암시했다. 의자는 이처럼 처음부터 가구를 넘어 지위·직무·존엄의 상징이었다.
세속적 맥락에서도 의자는 중요했다. 중세 길드와 도시 의회도 의자를 사용했다. 정교한 조각으로 장식된 대형 의자는 질서 있는 통치와 지위를 이끄는 의장을 떠받쳤다. 의장, 회장을 뜻하는 단어 ‘체어맨(Chairman)’에는 지금도 의자가 남아 있다.
◇의자는 예술이다
그리스 고전의 부활과 인본주의를 실천한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의자는 건축과 조화를 이루며 한껏 멋을 부리기 시작했다. 바로크·로코코 등 그 시대의 예술이 의자에 투영되기 시작했다. 귀족들은 자신의 취향과 부를 과시하는 수단으로 의자를 수집하거나 주문 제작했다. 이것이 18세기 말 산업혁명과 만나자 의자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의자는 가구가 되기 시작했다. 의자가 왕이나 귀족의 전유물이 아닌 중산층과 노동 계급까지 누릴 수 있는 일상 가구가 된 것이다. 단 계층과 안목에 따라 의자의 격은 달랐지만.
20세기 의자는 기술과 예술, 인간 중심주의가 조화롭게 만나는 지점이었다. 마르셀 브로이어는 가구 디자인에 강철 튜브를 도입했고 그의 ‘바실리 의자’는 현대 디자인의 획기적 발전을 이끌었다. 건축가이기도 한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의 ‘바르셀로나 의자’는 합리주의와 기능주의 모두를 만족시켰다. 장 푸르베의 ‘스탠더드 체어’는 북유럽 감성을 품은 기능성 의자를 대표한다. 찰스와 레이 임스 부부의 ‘임스 체어’는 미국 중산층의 생활 감각을 세계적 아이콘으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아르네 야콥센의 ‘에그 체어’나 안토니오 치테리오의 ‘그라운드피스 소파(Groundpiece Sofa)’는 공간의 품격을 정의하고 사용자의 정체성을 말한다.
◇가구는 품격…의자가 사람을 만든다
이탈리아의 저명한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이기도 한 치테리오가 본격 가구 디자이너로 데뷔한 브랜드가 바로 플렉스폼이다. 그가 2001년 제작한 그라운드피스 소파는 현대적인 생활 양식을 탐색해 팔걸이를 선반으로 활용할 수 있는 독창적 구조를 갖고 있다. 경직된 의자에 앉아 종일 일하고 온 소파 주인의 마음을 고려한듯 소파의 깊이를 반쯤 누울 수 있는 122㎝와 기대 앉기 좋은 97㎝ 두 가지 사이즈로 선보인 것 또한 삶의 방식을 세심하게 고려한 결과다. 치테리오가 최초로 만든 ‘122㎝ 깊이 소파’는 이후 다른 브랜드에서도 벤치마킹해 제작했을 정도로 휴식과 실용성 모두를 만족시켰다. 전 세계 불가리 호텔을 비롯해 아만 뉴욕, 포시즌스 등 고급 호텔들이 공통적으로 플렉스폼 가구로 공간을 채우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올 4월 ‘2025 밀라노 디자인 위크’ 기간에 현지 산탈젤로 수도원에서 선보인 플렉스폼의 신제품 컬렉션이 전 세계 최초로 서울에서 선보이는 중이다. 브랜드를 수입한 인피니 측 관계자는 “밀라노에서도 한국을 중요한 시장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귀띔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다. 의자가 결국 자리를 만든다. 그 자리는 단지 몸을 누이고 기대는 곳이 아니라 휴식과 사유가 이뤄지는 공간이다. 의자의 소재와 깊이, 각도와 무게가 자세를 만들고 사람의 태도까지 바꿔놓는다. 옷이나 가방, 자동차처럼 드러내고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진짜 품격은 나만 아는 소재의 차이, 나만의 공간이 갖는 특별함에서 만들어진다. 들고 다니지도 못하고 만져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소재의 차이에 비싼 비용을 지불하는 이유다. 우리가 어떤 의자에 앉는가, 어떤 의자를 바라보는지가 자신의 위치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어떻게 나아가게 할 것인지를 결정지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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