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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이 오늘에게…'메이투데이'

[광주비엔날레 5·18 40주년 특별전 '메이투데이']

판화 '오월의 소리' '횃불행진'·설치작품 등

서울·타이베이·쾰른 순회 끝내고 광주로 모여

그날의 기억·울분·투쟁 '예술로 승화' 계승

조진호 ‘오월의 소리’. 1980년 6월10일에 제작한 리놀륨 판화다. /사진제공=광주비엔날레재단




1980년 5월의 광주. 무장한 군인이 시민을 향해 총을 겨눴고 ‘민주주의의 봄’이 군홧발에 밟혔다. 작가 조진호가 현장을 목도했다. 울분을 억누르며 파기 시작한 판화 ‘오월의 소리’는 겁에 질린 얼굴들과 쓰러진 손을 핏빛 바닥에 드리우고 있다. 초록빛 하늘을 빙빙 도는 까마귀떼와 가느다란 그믐달이 소리 내 울지 못하는 고통을 대신 전한다. 1989년 작인 폭 130㎝의 ‘오월의 대학살도’를 목판화로 만드는 등 작가는 ‘그날’의 사건을 곱씹으며 당시의 시대정신을 이어왔다. ‘광주 정신’의 대표작가로 꼽히는 홍성담은 200여 점의 광주 연작을 제작했다. ‘끝까지 싸우자’는 구호 아래 평범한 사람들이 투사가 되는 과정을 새긴 판화들을 보노라면 왜 홍성담의 작품이 그토록 저항적이고 투쟁적인지 이해되기도 한다.

홍성담 ‘횃불행진’ /사진제공=5.18기념재단


이들을 포함한 작가 55명의 200여 점 목판화가 ‘1980년대 목판화:항쟁의 증언, 운동의 기억’이라는 이름 아래 광주 서구 무각사 내 로터스갤러리에 걸렸다. 광주비엔날레가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념해 장기 기획한 온 특별전 ‘메이투데이(MaytoDay)’의 일환이다. 광주를 넘어 국제적 맥락 속에서 5·18정신을 조명하기 위해 서울과 대만 타이베이, 독일 쾰른 등지에서 진행된 전시가 1년여 순항 끝에 광주로 다시 모였다. 사적23호인 옛 국군광주병원,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내 문화창조원 복합5관, 민주평화기념관 3관 등지에서 오는 11월 29일까지 전시한다. 지난 5월 개막할 예정이던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전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서에서의 전시가 코로나 여파로 내년으로 미뤄졌으니 ‘미리 보는’ 자리이기도 하다. 비엔날레는 연기됐지만 특별전 만으로도 비엔날레 못지않은 볼거리와 생각거리가 넘쳐난다.

판화 전시는 독일 기획자 우테 메타 바우어가 광주의 비극을 소재로 한 역대 광주비엔날레 출품작들 중심으로 지난 6월 서울 아트선재센터에서 개최한 ‘민주주의의 봄’에서 목판화만을 집중조명했다. 5·18민주화운동을 기록한 판화들을 한 자리에 그러 모은 최대 규모의 전시다. 김경주 작가는 공안당국이 작업실을 급습한 바람에 수중에 남은 작품이 없고, 5·18기록관 소장품으로 남은 그림이 전시에 선보였다. 시민군이기도 했던 작가 이강하는 ‘그날’ 이후 좀처럼 그림을 못 그리다 심금 울리는 서정적 목판화로 재기했다. ‘광주전남미술인공동체’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판화가들은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지 않는 익명성으로 광주정신의 보편성을 웅변했다. 전시를 기획한 김진하 나무아트 대표는 “1980년 광주가 아니었다면 나올 수 없는 작업들이라 고통·공포·두려움·연민이 혼재한다”면서 “예술이지만 비극적 사건에 대한 역사적 기록물이고. 1990년대 이후로는 새로운 방식으로 시대정신이 계승되고 있다”고 말했다. 오월이 오늘에게 보내준 선물인 셈이다.





작가 카데리 아티아의 ‘이동하는 경계들’. 5.18광주민주화운동을 포함한 집단적 트라우마와 이를 치유하는 과정에 대한 성찰을 담은 작품이다. /사진=조상인기자


옛 국군광주병원은 시민군 부상자부터 고문의 희생자들이 드나들었던 공간의 역사로 인해 ‘울음 같은 울림’을 전한다. 신발 신은 의족을 낡은 의자에 앉혀둔 카데르 아티아의 설치작품 ‘이동하는 경계들’은 상흔과 회복의 의지를 동시에 상징한다. 시오타 치하루는 병원 내 성당으로 쓰이던 곳에 특유의 실 설치작품을 선보였다. 검은 실을 거미줄치듯 겹겹이 엮어 동굴처럼 만들고 그 안에 한·영·일어로 쓰인 성경 창세기편들을 끼워 둔 ‘신의 언어’가 공간이 품은 기억을 불러낸다. 마이크 넬슨은 병원 본관에 걸려있던 거울들 60여개를 떼어다 부속 교회 천장에 매달았다. 낡아 뿌옇게 바랜 거울에 과거의 누군가부터 오늘의 관람객들의 얼굴이 스쳐지난다. ‘GB(광주비엔날레)커미션’이라 불리는 이들 작품은 5·18 당시와 현재를 그렇게 잇는다.

일본 작가 ‘시오타 치하루’의 ‘신의 언어’. 작가 특유의 소재인 실을 거미줄처럼 장치하고 성경의 창세기 부분을 넣어 사라지고 잊힌 단어들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조상인기자


작가 마이크 넬슨이 옛 국군광주병원에 설치한 ‘거울의 울김(장소의 맹점,다른 이를 위한 표식)’. 작가가 국군광주병원 본관의 거울들을 떼어다 병원 내 부속 교회에 설치한 작품이다. /조상인기자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내 전시장에서는 서울, 타이베이, 쾰른에서 열린 전시와 아르헨티나에서 열릴 전시를 한꺼번에 볼 수 있다. 5·18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이 묻힌 광주 옛 묘역에 놓였던 영정사진들을 다시 찍어 ‘망각기계’ 연작을 선보인 사진작가 노순택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학살처럼 돌아가신 분들이지만 각자의 고유한 삶이 있었음을 짚어보고, 제각각 무덤에 놓여 훼손되는 사진들을 통해 잊힌 기억과 기념하고 기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되짚어 봤다”고 말했다. 타이베이에서의 전시는 1970년대 후반 대만의 민주화운동부터 1980년의 광주, 최근의 홍콩 민주화운동까지를 ‘공감’과 ‘물결’을 키워드로 자연스럽게 펼쳐 보인다. 결코 옛 일이거나 남의 일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아르헨티나에서 열릴 예정인 전시는 군부독재 치하의 고통이라는 점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와 광주라는 두 도시가 공명을 이룬다. 최빛나 큐레이터가 기획해 쾰른에서 열렸던 전시 ‘광주 레슨’은 1983년 광주에서 시작돼 전국으로 확산된 비제도권 예술학교인 광주시민미술학교를 재조명했다. 현장에서의 판화체험도 가능하다. 김선정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는 “저항의 시대에 쓰인 시(詩)가 약 40년 후에는 전시 탄생에 영감을 주는가 하면, 1980년 광주의 모습을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에서 발견하기도 했다”면서 “한국의 역사가 아닌 보편적인 시대정신으로서의 5·18을 통한 연대를 이번 전시에서 확인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광주=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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