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보 영화 시리즈 ‘007’에서 1대 제임스 본드 역을 맡았던 원로 영화 배우 숀 코너리가 사망했다.
31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 스카이 뉴스는 이날 그의 가족을 인용해 코너리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1930년 8월 25일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파운틴브리지 지역에서 태어난 코너리는 올해 구순(九旬)을 맞았었다. 그는 영국 태생으로 196년 제작된 007시리즈 첫 작품인 ‘007 살인번호’(원제 Dr. No)에서 최초의 제임스 본드 역할을 맡았다. 코너리는 007시리즈 가운데 6편의 작품에서 주연을 맡았다. 영화팬들 사이에서는 역대 007 중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이 공로로 지난 2000년 스코틀랜드 홀리루드궁에서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은 바 있다.
'섹시한 남성' 숀 코너리
그는 007시리즈 이외에도 ‘오리엔트 특급살인(1974)’, ‘장미의 이름(1986)’, ‘언터처블(1987)’, ‘인디아나 존스:최후의 성전(1989)’, ‘더록(1996)’ 등 다수의 작품에서 열연했다. 그는 수십년간 연기생활을 하면서 미국 아카데미상(오스카)과 2개의 영국영화TV예술아카데미(BAFTA)상, 3개의 골든글러브상을 수상했다. ‘언터처블’에서 연기한 아일랜드 출신 경찰 역할로 1988년 오스카 남우조연상을 받은 바 있다.
이언 플레밍의 소설에서 제임스 본드가 영국 명문 사립학교인 이튼스쿨을 다닌 것과 달리 코너리는 어린 시절은 가난했다. 그의 아버지는 가톨릭 출신 공장 노동자였고, 어머니는 신교를 믿는 청소부였다. 코너리 부친의 가족은 19세기에 아일랜드에서 스코틀랜드로 건너왔다.
한때 맨유 입단 제의 받기도
축구에 재능이 있었던 코너리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입단 제의를 받기도 했지만 결국 연기를 택했다. 1954년 단역으로 본격적으로 연기 생활을 시작한 그는 이후 드라마와 영화 등에서 경력을 쌓았고, 1957년 BBC의 ‘블러드 머니’에서 첫 주연을 맡았다.
그를 세계적인 배우로 만든 것은 역시 ‘007 시리즈’였다. 주연 역할인 제임스 본드는 여러 명의 배우가 물망에 올랐지만 당시 제작자의 부인이 코너리의 섹시한 매력이 어울린다고 추천했다.
원작자인 플레밍은 코너리의 첫인상이 본드 역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첫 작품을 본 뒤로는 이같은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플레밍은 나중에 소설에서 본드가 스코틀랜드 혈통을 일부 가진 것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스코틀랜드 독립에도 앞장서
코너리는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났지만 그곳에서 오래 살지 못하고 스페인, 바하마, 뉴욕에서 지냈다. 그는 2003년 스코틀랜드가 독립하기 전에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코너리는 2005년 할리우드에서 활약하고 있는 “백치들같은 영화인들에 신물이 난다”며 “내가 차마 거절할 수 없는 마피아와 같은 제의가 아니라면 영화에 출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후 ‘인디아나 존스4’, ‘반지의 제왕’ 등 유명 작품의 출연 제의에도 응하지 않았다. 코너리의 마지막 작품은 2003년 ‘젠틀맨 리그’다. 코너리는 지난 2006년 미국영화연구소(AFI)가 수여하는 평생공로상을 받는 자리에서 공식 은퇴했다. /박동휘기자 slypd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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