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북구 미아동에 위치한 삼양시장, 우이신설선을 타고 삼양역에서 내려 북한산을 등지고 걸어가면 조그만한 시장이 반겨준다. 여타 다른 시장처럼 왁자지껄 시끄럽지도 않고,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것도 아닌 동네의 작은 시장이지만 작은 고추가 맵다고 했던가. 그 안의 사람들은 그 어느 시장보다도 정겹다.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시장 사람들을 만나보자.
① 가마솥에 튀기는 바삭바삭 치닌 '할렐루야 닭장'
양순덕 사장 "치킨 맛의 비결은 가마솥의 화력, 한번 잡숴봐"
삼양시장에는 유명한 터줏대감이 있다. 36년의 세월동안 삼양시장을 지켜온 할렐루야 통닭집이다. 시장의 터줏대감임을 남들에게 티라도 내는 것 일까. 할렐루야 통닭집은 마을버스가 지나가는 정류장 앞에 위치해 사람들을 반긴다.
가게 안에 들어서게 되면 통닭집의 오래된 세월이 드러난다. 20년이 넘은 세월동안 가게 한편에 놓여있던 TV와 전화기, 그리고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35년이 훨씬 넘은 석유난로 등 가게의 작은 부분부분 하나까지 모든 것이 옛날 정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예스러운 것은 할렐루야 통닭집을 35년동안 운영해온 내외분들의 마음씨다. 정겨움이 묻어나는 양순덕(66), 이춘세(68, 남) 사장님 부부가 운영하는 '할렐루야' 가게를 소개한다.
- 치킨이 맛있다고 소문나서 맛 좀 보러 왔어요.
양순덕 사장님(이하 양): "아유, 치킨 양이 많을텐데 혼자 다 먹을 수 있겠어? 일단 앉아서 기다리고 있어. 금방 튀겨줄게. 아유 근데 다 못 못먹을텐데"
- - 사장님 제 덩치를 봐요. 키가 180cm가 넘어요. 몸무게도 90kg인데 당연히 다 먹을 수 있죠.(웃음)
- 양: "맞아. 젋은 사람들은 또 금방 배 꺼져. 기달려봐"
- 사장님 내외분들은 여기 근처 사시나요.
양: "그렇지. 여기 삼양동에 살고 있지. 남편과 상경해서 쭉 여기서 살았어. 그런데 가끔 서울 다른 동네 갔다 와보면 여기가 너무 시골같아 보이긴 해. 그래도 살다보니 너무 정겹고 좋아서 계속 살게 되더라고.
이춘세 사장님(이하 이): 이 사람은 자기도 시골 출신이면서 여기가 시골 같아보인데, 이상한 소리하고 있어.(웃음)
- - 고향이 어디세요.
- 이: "전북 장수지. 거기서 아내와 같이 상경했어. 장수에 있으면 할 일도 많지 않고, 먹고 살기도 막막했지. 젊은 패기로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어. 상경하고 나서 이것 저것 많은 일을 했지.
- 닭집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건가요.
- 이: "큰 딸 친구네가 닭장사를 했는데 그만둔다는 거야. 그때가 1985년도였던거 같아. 내가 보기엔 괜찮아보였는데 말이야. 그래서 그 가게를 인수해서 장사를 시작했어. 하기 시작했지.
- 그런데 왜 가게 이름이 '할렐루야'인가요. 교회를 다니시는군요.
양: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웃음) 교회 다니진 않고. 아까 큰 딸 친구네 가게를 인수했다고 했잖아. 그 분이 교회 집사였지. 가게 간판이 '할렐루야'면 교인들이 닭을 많이 팔아줄거라 생각했어. 굳이 이름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둔거야.
- 지상파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도 출연한걸로 안다. 유명세를 타셨겠다. ('할렐루야 닭장'은 지난해 KBS 1TV 도시기행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동네 한바퀴'에서 소개된 바 있다.)
양: "삼양동 시장 편으로 나간 적이 있었는데 시청률도 높고, 반응이 엄청 좋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스페셜 편으로 한반 더 방송됐지. 내가 방송체질인가벼. 얼마나 재미 있었으면 재방송을 했겠어."
- 잘 됐다. 방송을 보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은데.
양: "많이들 찾아왔지. 굴지의 재벌 회장도 방송 보고 찾아 온적이 있어. 사람 냄새 난다고. 그리고 옛날 삼양동 근처에 살던 사람들이 방송을 보고 옛 기억이 떠올라 찾아오기도 했지. 지난번엔 남양주에서 50대 주부가 왔어. 어렸을 때 부모님이랑 이 동네에서 살았다며,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는데 옛 추억이 떠올라서 왔다는 거야. 통닭 두 마리 주문하고 가게에 앉아 있는데 부모님 얼굴이 떠올랐는지 눈시울이 금방 붉어지더라구. 나도 괜시리 눈물이 나더라. 참 짠하더라고."
이: "맞아. 이렇게 찾아와 주는 사람들 보면 너무 고마워. 세월이 그만큼 흘러 갔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아, 통닭 나왔으니가 맛좀 봐봐."
- 생각보다 통닭이 너무 크다. 혼자 먹기 부담스러울 정도다.
양: "아휴, 내가 뭐랬어. 혼자 먹기 많을거라고 했잖어.(웃음) 우린 12호 짜리 닭을 써서 튀겨. 아마 보통 치킨집들은 9호 짜리 닭을 쓸거야. 우리 집이 큰 닭을 쓰는 이유는 단 하나야. 손님들이 배 부르게 드시라고 하는거지."
이: "음식이란게 식으면 맛이 없잖아. 그런데 우리집 통닭은 희한하게 식어도 맛있대. 식어도 맛이 있어야 진짜 통닭이지. 어여 잡숴봐."
- 바삭바삭한게 정말 맛있다. 비법이 있나.
이: "튀김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않나. 바로 화력이야. 우리 집은 무쇠 솥에 석유 난로로 떼서 쓰니깐 화력이 장난 아니야. 불이 세니깐 닭 냄새도 안나고 바삭바삭하니 맛있는거지."
- 사장님 두 분이 인품도 좋으시고. 치킨 맛도 일품인데. 장사가 잘 될 것 같다.
이: "요즘은 뭐...워낙 먹을게 많잖아. 옛날만큼 잘 되진 않아. 35년 전에 처음 닭 장사할 때만 해도 치킨 프랜차이즈는 전혀 없었어. 삼양동에서 유리가 유일한 치킨집이었지. 그땐 닭을 튀기는 가마솥 3곳에 불이 꺼진 적이이 없었지. 농담이 아니라구. 저녁만 되면 퇴근 길에 통닭을 사가려는 아빠들로 가게 앞에 긴 줄이 늘어지기도 했지."
- 가마솥에 온도계가 따로 없다. 3곳에서 동시에 닭을 튀기다보면 살짝 태운 것도 생기고 하지 않나.
- 이: "장사를 오래하다보면 노하우가 쌓이는 법이야. 우리집은 닭을 튀길 때 기름 온도를 따로 안맞춰. 시간도 똑같아. 양념도 눈대중으로 해. 그래도 항상 맛이 일정해. 그런게 다 장사 노하우지. 태운 적 한번도 없다구."
- 한 자리에서 30년 넘게 장사를 해오고 있다. 가게로 걸어오는 손님을 보면 뭘 주문할지 감이 오지 않나.
양: "맞다. 장사를 오래하다 보니 손님인지 아닌지 티가 난다. 우린 생닭도 파는데, 이사람이 통닭 사갈 손님인지 아니면 생닭 사갈 손님인지 문앞에서 서성여도 바로 알지.
이: 그리고 장사 시작하기전에 항상오늘 얼마 팔릴 거 같다. 딱 느낌이 와. 그래서 오늘 팔릴꺼 같은 수량만 딱 맞춰서 도매시장에서 닭을 사와. 우리집 닭이 싱싱하다고 소문 난 이유야"
- 원래 치킨 한 마리 정도는 뚝딱 해치우는데, 아직 절반이나 남았다. 양이 정말 많다.
양: "젊은 사람들은 배가 금방 꺼지니깐 많이 먹어. 아, 통닭만 먹어서 느끼해서 그런가. 우리 이제 밥 먹으려던 참인데, 이리 와서 밥이랑 같이 먹어."
- 더 먹으라고요? 살쪄서 안된다.(웃음)
이: "에이, 젊으니깐 괜찮아. 앉아서 먹어. 우린 시골 사람들이라 다 집에서 해 먹는 반찬이야. 같이 먹어."
- 너무 잘 먹었다. 얼마인가.
이: "만원인데, 돈 안받을래. 아들같아서 못받겠구먼.(웃음) 나중에 한 번 더 오면 그때 내고 가."
그렇게 통닭 먹으면서 수다를 나누고, 돈을 내니 안 내니 한참 기분좋은 실랑이를 나눴다. 통닭집 앞 작은 슈퍼에서 커피믹스를 사와 가게에 놓고 나올 수 있었다. 통닭도 맛있고 가게 분위기 또한 너무 정겨웠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사장님들의 따스한 정을 느낄 수 있던 순간이었다.
②고소한 콩냄새가 일품 '즉석 두부공장'
이상순 사장 "장사는 거짓부렁으로 하면 안돼, 정직이 제1원칙"
기분 좋은 배부름과 함께 다시 길을 나섰다. 얼마 걷지 않아, 고소한 콩내음이 진동했다. 아무리 배가 불러도 냄새가 좋으니 자연스레 발이 이끌렸다. 발길이 멈춘 곳은 '즉석 두부공장.' 직관적인 간판 이름이 말해주듯 이곳은 두부를 직접 만드는 작은 노포다. 막 찐 두부에서 모락모락 피어나오는 수증기에 자연스럽게 시선이 멈출 수밖에 없다. 이상순(73) 즉석두부공장 사장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 콩 냄새가 너무 좋다, '즉석 두부공장'에 대해 소개해 달라.
"삼양시장의 두부 판매 가게다. 두부 외에도 참기름 김, 칼국수면 등을 판매하고 있다. 메인 상품인 두부는 매일 아침에 손수 만든다. 국산 콩으로 하면 좋겠지만 단가가 맞질 않고, 솔직히 정성 대비 큰 차이를 못느끼겠더라. 대신 좋은 재료로 정성 껏 만들고, 청결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다."
- - 장사는 언제부터 시작하셨나.
"1998년도부터 했으니깐 올해로 22년째다. 고향은 충청도인데 1966년 무작정 서울로 왔다. 이런 저런 일을 하던 중에 IMF가 터졌고 이곳 삼양시장에 자리를 잡았다. 처음엔 토치 불로 김도 구워 팔고 했는데 지금은 나이도 있고, 기계로 김을 굽는 가게도 많아지고 해서 직접 굽진 않는다.
- 이전엔 두부 장사 말고 다른 장사를 하셨나.
"처음 서울 올라와서 식품 장사는 안해봤다. 삼양시장에 터를 잡고 두부를 팔기 시작했는데 뭘 아는게 없었다. 너무 어색했다. 그래서 시간 날때마다 청소만 하면서 지냈다. 문을 열고 청소하고, 문 닫기 전에 청소하고. 청소만 주구장창 했던 것 같다. 아마 그때 가게 앞을 지나가던 손님들은 '여기 사장님은 두부는 안팔고 맨날 청소만 하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웃음)"
- 그래서인가. 20년 된 가게 치고 내부가 너무 청결하다. 구석구석 청소 내공이 느껴진다.
"맨처음엔 멋쩍어서 시작한 청소인데, 몸에 베인거다. 매일 아침 7시에 가게문을 열고 밤 10시에 닫는다. 지금도 출근해서 30분, 퇴근 전 30분 동안 청소를 해야 직성이 풀린다."
- 두부를 직접 만드시다보니 청결이 중요할 것같다.
"맞다. 두부를 만드는 기계는 청소를 잘 안해주면 내부에 콩 찌꺼기가 들러 붙고, 안 좋은 냄새가 난다. 예전에 다른 두부 가게 가서 두부를 만드는 걸 봤는데, 내가 먹는다고 생각하니 못 먹겠더라. 그래서 하루에 꼭 두번씩 두부 기계를 포함해 가게를 청소한다. 손님들이 먹기 전에 내가 먹어도 이상 없는 두부를 만드려면 청결을 따지지 않을 수 없다."
- 귀찮지는 않나.
"청소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청소가 귀찮지 않는 사람, 아마 없을거다. 나도 당연히 귀찮다. 내가 열심히 가게를 청소한다고 해도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내가 먹기에 부끄럽지 않는 음식을 만들고 싶은 거다. 그러면 손님들에게도 깨끗하고 신선한 두부를 제공할 수 있다."
- 두부 한 모에 얼마씩 받나.
"다른 가게랑 다 똑같다. 한모에 2000원."
- 정성에 비해 너무 저렴한거 아닌가. 더 받아도 될 것 같은데.
"개똥철학일수 있는데, 장사는 거짓부렁으로 하면 절대 안된다. 내가 만약 이 콩을 국산으로 속여서 팔면 더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장사도 그렇고 인생도 그렇고 정직하게 해야한다. 남을 속여서 좋을게 없다. 이건 좀 다른 얘기일 수 있는데, 난 30년 운전하면서 그 흔한 신호위반 한번 해본적 없고, 과태료를 부과 받은 적도 없다. 성격이 답답하고 고지식해서 그렇다.(웃음)"
- 너무 정직하면 손해볼수 있는거 아닌가.
"아이고, 난 그렇게 생각 안한다. 만약 내가 오늘 하루 아침에 100만원을 번다고 해도 그게 전부 내 돈이 아니다. 내가 가진 게 있을 때 남한테 베풀고 챙겨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내가 나중에 목이 마를 때 누군가 물 한잔 챙겨줄 수 있는 거 아닌가. 절대 손해 보는 게 아니다. 인생은 혼자 사는게 아니라 같이 사는 거니깐."
- 말씀드다보니, 성격이 너무 좋으셔서 단골 손님이 많을 것 같다.
"지금은 시장이 워낙 작아져서 예전만큼 사람들이 많이 오진 않는다. 시장에 이것 저것 살 것이 많아야 사람들도 오고 할텐데, 그런 점은 좀 아쉽다. 그래도 가끔 옛 손님들이 이 근처에 와서 우리집 두부가 맛있다고 사갈 때 기분도 좋고 감사함을 느낀다. 그래서인지 모르겠는데 한번에 두부를 많이 사가는 손님이 있으면 마음이 불편해진다.(웃음)"
- 무슨 의미인가.
"내가 한 손님에게 두부를 많이 팔면, 가끔 먼 길을 찾아온 소님이 사가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런 상황이 불편하다. 두부가 남으면 버리더라도 한번에 많이 팔지는 못하겠더라."
- 콩 냄새에 이끌여 이곳에 왔다가 사장님에게 많은 걸 배우고 간다.
"말 동무 해준다고 기자님이 고생 많았지 뭐. 나는 젊은 사람들이 잘 됐으면 좋겠다. 요즘 청년들 보면 참 착하고 정직한데 많이 힘든 것 같다. 사회 분위기가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손해를 보는 쪽으로 바뀌어 가는 것 같아 어른으로서 미안하다. 약은 사람들이 잘나가는 것 보면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정직하게 살면 복을 받을 거다. 정직하게 살자.(웃음)"
콩냄새에 이끌려 들어갔던 가게는 사람 사는 내음으로 가득했었다. 콩냄새가 발을 이끈게 아니라, 사람 내음에 발이 자연스레 향했던 것 일까. 정직함과 고지식함으로 일평생을 살아온 사장님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 시간이었다. 삼양시장의 첫 인상은 한없이 작고, 얼핏보면 초라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이 넘치고 그 어디보다 사람냄새가 가득하다. 작은 고추가 맵다고 했던가. 작은 시장인 삼양시장엔 정이 넘친다. 풀꽃처럼 자세히 볼수록 아름다웠던 시장, 삼양시장 방문기를 마친다.
/이재무 썸데이 기자단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