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스캔들에 휘말려 사실상 망명 중인 후안 카를로스 1세 전 스페인 국왕이 이번에는 신용카드 부정 사용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스페인 검찰은 4일(현지시간) 스페인 국왕 펠리페 6세의 아버지인 후안 카를로스 전 국왕의 금융 거래 내역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밝혔다고 일간 엘파이스, AP 통신 등이 전했다.
검찰의 이날 발표는 후안 카를로스와 그의 친인척 몇몇이 자금 출처를 알 수 없는 신용카드를 사용한 의혹으로 조사를 받고 있다는 스페인 일간 엘디아리오의 보도 직후 나왔다. 후안 카를로스를 제외한 다른 수사대상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엘파이스는 검찰 소식통을 인용해 그의 아내 소피아, 아들 펠리페 국왕과 며느리 레티시아 왕비는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검찰은 후안 카를로스의 2016∼2018년 신용카드 거래내용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그는 2014년 퇴임하면서 면책특권을 상실했기 때문에 혐의가 입증된다면 기소될 수 있다. 후안 카를로스는 1975년 11월 독재자 프랑코가 사망하고 나서 즉위한 입헌군주로 39년간 재위하면서 스페인 민주화에 큰 역할을 했지만 잇단 추문에 휩싸였다. 2012년 아프리카 보츠와나에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는 여성과 코끼리 사냥 여행을 갔다가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이후 딸 크리스티나 공주 부부의 공금횡령 혐의까지 불거졌고 건강 문제까지 겹치자 후안 카를로스는 2014년 6월 아들 펠리페에게 왕위를 물려줬다.
퇴임 후에도 잡음은 계속됐다. 그가 사우디아라비아의 고속철 수주사업을 도와주는 대가로 거액의 뇌물을 받아 자금을 은닉했다는 의혹을 스위스 언론이 제기했고, 스페인 대법원은 지난 6월 검찰에 수사 개시를 명령했다. 스위스 당국도 별도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아버지의 부패 의혹은 아들인 펠리페 국왕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세탁된 거액의 자금이 결국 자신에게 오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펠리페 국왕은 지난 3월 유산 상속을 포기하고, 아버지가 전직 국왕으로서 받는 국가연금도 취소하겠다고 발표했다. 결국 후안 카를로스는 지난 8월 점점 악화하는 여론에 등 떠밀리다시피 고국을 잠시 떠나있겠다는 뜻을 스페인 왕실에 전했다. 그의 거처를 두고 이런저런 소문이 많았으나 왕실은 추후에 그가 아랍에미리트(UAE)에 있다고 밝혔다.
/김연하기자 yeon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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