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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休]자연과 예술의 조화, 신안의 그 섬에 가고 싶다

'1島 1뮤지엄' 조성 중인 신안

수화 김환기 100년 고택 있는 안좌도

수석·천사상·저녁노을미술관 등 명소

천혜의 자연경관 함께 문화예술 향유

'섬티아고'로 불리는 12사도 순례길

온통 보랏빛 박지도·반월도 이색적

신안군이 건립하는 ‘인피니또미술관’의 설계를 맡은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이름 붙인 ‘무한의 다리’는 바다 위 섬을 향해 무한한 듯 뻗어가는 모습이다. /조상인기자




“내 고향은 전남 기좌도(箕佐島).…그저 꿈 같은 섬이요, 꿈속 같은 내 고향이다. 겨울이면 소리 없이 함박눈이 쌓이고 여름이면 한 번씩 계절풍이 지나는 그런 섬인데 장광(長廣·길이와 넓이)이 비슷해서 끝에서 끝까지 하룻길이다…그래도 섬에는 수천 석씩 나는 평야도 굽이굽이 깔려 있고 첩첩 산도 겹겹이 둘러 있어 열두 골 합쳐 쏟아지는 폭포도 있다. 순하디순한 마을 안산(案山)에는 아름드리 청송이 숨 막히도록 총총히 들어차 있고 옛날에는 산삼도 났다지만 지금은 더덕이요, 복령(약재로 쓰이는 버섯의 일종), 가을이면 송이버섯이 무더기로 난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화가인 수화 김환기(1913~1974)가 지난 1962년 3월에 쓴 수필 ‘고향의 봄’에서 묘사한 섬은 지금도 그 분위기를 고스란히 안고 있었다. 다만 김환기가 “목포항에서 백마력 똑딱선을 타고 호수 같은 바다를 건너서 두 시간이면 닿는 섬”이라고 했던 전남 신안군 안좌면 읍동리가 지금은 KTX를 타고 목포역에 내려 천사대교를 건너면 차로 한 시간 남짓해 닿는 땅이 됐다. 기좌도와 안창도가 간척사업으로 한 섬이 되면서 각각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 ‘안좌도’라 불리게 된 것도 달라진 점이다.

국가민속문화재 제251호로 지정된 ‘수화 김환기 고택’에는 1900년대 초 백두산에서 구한 목재를 이곳 섬까지 옮겨와 지었다는 얘기가 전한다. 좋은 부재 덕분인지 10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고택의 위용이 당당하다. 북방식 ㄱ자형 한옥인데 툇마루에 앉으면 김환기가 얘기했던 청송 빽빽하고 버섯이 무더기로 나는 안산이 마주 보인다. 이곳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과 일본에서 공부한 김환기는 파리를 거쳐 뉴욕을 누비며 활약했다. 그가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에 걸쳐 그린 ‘달밤의 섬’ ‘산월’ 등의 그림에는 하늘과 바다가 푸르던 고향 풍경이 종종 등장했다.

국가민속문화재 제251호로 지정된 ‘수화 김환기 고택’은 화가 김환기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으로 1900년대 초 백두산의 목재를 가져다 지었다고 전한다. /조상인기자


그러다 1970년대 점화(點畵)로 완성된 김환기의 추상 세계. 그리움 품은 별이 점으로 환원됐다고 하는 김환기의 숱한 점들은 어쩌면 섬이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신안군의 섬들은 ‘천사섬’이라 불린다. 천사가 노닐 법한 낙원을 상상하게 만드는 이름이나 실제는 1,004개의 섬이라는 뜻에서 출발했다. 우리나라 전체 섬이 대략 3,000여개인데 그중 3분의2가 전남지역의 다도해에 몰려 있고 그 가운데 절반가량이 신안군에 집중돼 있다. 정확히는 1,025개이나 간척사업과 다리 개통 등으로 이어진 섬을 제한 후 나무·풀 자라는 곳을 헤아리니 1,004개의 섬이었다.

‘매화도’로 유명한 우봉 조희룡은 신안군 임자도에서 유배생활을 했고 그 인연으로 임자도에는 조희룡미술관이 자리 잡게 됐다. /사진제공=신안군


섬마을 신안은 예술의 고장이다. 김환기를 낳았을 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 섬으로 유배 왔던 우봉 조희룡(1789~1866)을 취하게 했다. 매화를 좋아하고 매화 그림을 잘 그려 아호마저 ‘매화 늙은이’라는 뜻의 ‘매수’로 적었던 조희룡이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 매화 그림으로 이름을 날리던 그는 62세이던 해에 추사 김정희의 심복으로 지목돼 귀양길에 올랐다. 신안 임자도 유배 시절의 조희룡은 그림으로 울분을 달래며 “바다 돌 움푹 팬 곳을 벼루 삼아 먹을 갈고 시골 노인의 서푼짜리 개털로 만든 낡은 큰 붓을 빌려 붉고 흰 1장6척 크기의 매화를 그려냈다”며 전성기 역작들을 완성했다. 임자도 대광해수욕장 인근에는 조희룡미술관이 있다. 군이 소장품으로 확보한 조희룡의 작품 13점뿐만 아니라 미디어아트로 살아나 움직이는 매화 그림도 볼거리다.

신안군 내 섬에 조성된 ‘12사도 순례길’ 중 베드로의 집. /사진제공=신안군


요즘 신안은 ‘1도(島) 1뮤지엄 프로젝트’로 달아올랐다. 1,004개의 섬 중에서도 실제 사람이 사는 유인도는 76개인데 이곳에 크고 작은 미술관·박물관을 건립해 ‘그 섬에 가야 할 이유’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가장 기대를 모으는 곳은 자은도 둔장해변을 끼고 오는 2024년 개관 예정인 ‘인피니또 뮤지엄’이다. 이탈리아어로 ‘무한’을 의미하는 ‘인피니또’ 미술관을 위해 이탈리아를 거점으로 유럽에서 활약하는 조각가 박은선과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손을 맞잡았다. 삼성미술관 리움과 강남 교보타워 설계로 유명한 보타가 공간 구상을 위해 방문했을 때 바다와 갯벌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바라보며 ‘무한의 다리’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섬과 섬을 이으며 물 위를 걷는 듯한 이 다리는 무한히 펼쳐진 천혜의 자연과 끝없는 여운이 교차하는 관광명소로 부상했다. 박 작가는 이곳 미술관에 조성될 조각공원의 중추가 될 예정이다.

압해도의 천사섬분재공원 내 저녁노을미술관./사진제공=신안군




압해도 천사섬분재공원 안에 자리한 저녁노을미술관은 미술관 2층에서 바라보는 바다, 특히 눈부신 저녁노을로 유명하다. 한국화가 우암 박용규의 작품 기증을 계기로 미술관이 들어섰으니 자연의 힘과 인간의 공이 조화를 이룬 곳이다. 매년 15만명이 방문한다.

자은도 ‘1004섬 수석미술관’의 야외 정원. /조상인기자


8월에는 자은도 뮤지엄파크 안에 ‘1004섬 수석미술관’이 개관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떠들썩한 개관식을 열지는 못했지만 입소문으로 알음알음 찾아오는 방문객들이 제법 있다. 실내 미술관은 수석, 야외 수석정원은 정원석·분재·야생화로 가득 차 있다. 볼거리가 ‘너무’ 많아 다소 과한 느낌도 없지 않으나 그 점이 기묘한 재미로도 읽힌다. 가장 위대한 예술가는 신(神)이요, 그의 걸작은 자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옆 세계조개박물관은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관람객이 열광할 만하다. 3,000여종의 희귀 조개와 고둥 표본을 1만1,000여점이나 확보하고 있는데 바다를 품은 신안의 지역색을 드러내면서 조개를 이용한 생활공예품까지 선보인 이곳을 둘러보다 보면 눈이 휘둥그레진다.

자은도의 세계조개박물관 전시 전경. /사진제공=신안군


연륙교 덕에 차로 뮤지엄 투어를 할 수 있지만 다 보려면 최소 1박2일은 필요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인 하의도에는 그의 민주화운동 업적과 노벨 평화상 수상을 기리는 천사상미술관이 들어서 있다. 국내외 작가들의 천사 조각상 300여점이 곳곳에 설치돼 ‘천상의 섬’을 구현한 노천미술관이다. 암태도에는 에로스서각박물관이, 비금도에는 이세돌바둑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배를 타야 닿을 수 있는 흑산도에서는 그곳 출신의 화가 박득순(1910~1990)이 작품을 기증해 세운 박득순미술관을 만날 수 있다.

‘자연경관을 보러 온 관광객들을 좀 더 머무르게 하기 위해’ 신안이 추진 중인 ‘1도 1뮤지엄 프로젝트’는 신축과 낡은 건물 리모델링 등으로 미술관 11개, 박물관 12개, 복합문화관광타운 1개를 조성할 계획인데 이미 11곳이 완성됐다. 박우량 신안군수는 “김환기 고택이 있는 안좌도 일대에는 물 위에 둥둥 뜬 군도형 플로팅미술관을 조성하고 신의도의 폐교를 리모델링한 곳에는 동아시아 인권평화미술관을 마련할 것”이라며 “한국춘란박물관·황해교류역사관·전통한선박물관·자수박물관 등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술관 없이 색으로 멋 내는 섬도 있다. 안좌도의 부속 섬인 박지도와 반월도는 보라색 섬이다. 청보라색 도라지꽃이 흐드러진 섬에 가을이면 보랏빛 아스타 국화가 지천이고 봄에는 라벤더가 향기가 장악한다. 자색 양파와 자색 고구마를 재배하는 이 섬은 지붕과 주소안내판과 쓰레기수거함도 보라색이요, 다리도 보라색의 ‘퍼플교’다.

신안군 내 섬에 조성된 ‘12사도의 순례길’ 중 마태오의 집. /사진제공=신안군


걷고 싶다면 대기점도에서 소기점도까지 바닷가와 언덕·호수·마을길을 잇는 ‘12사도 순례길’을 추천한다. 지역 주민의 90% 이상이 일찍이 기독교를 받아들인 섬 역사를 살려 예수의 제자 12사도의 이름을 딴 건축물을 곳곳에 지었다. 이들 건물은 강영민·김강·김윤환·박영균·손민아·이원석과 장미셸 뤼비오, 브뤼노 푸르네, 얄룩 마스, 파코 슈발 등 작가들의 작품인데 어느덧 명소가 돼 ‘섬티아고 순례길’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신안=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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