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부의 지시에 따라 내 일을 했을 뿐이다. ”
2차 세계대전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의 전범이었던 오토 아돌프 아이히만이 1960년 이스라엘 비밀경찰 모사드에 체포된 후 열린 재판에서 한 말이다.
유대인으로 홀로코스트를 겪었던 사상가 한나 아렌트는 법정에 나타난 아이히만의 초라한 모습을 보면서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이송했던 아이히만의 평범함을 발견했다. 그는 악인이라고 해서 태어날 때부터 악의 본성을 타고 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banility of evil)’을 주장하게 된다. 아이히만은 비록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 정부의 공무원으로 히틀러의 지시를 충실하게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하였지만, 과연 아이히만은 그의 의지대로 ‘생각(THINKING)’이란걸 해 본적이 있을까.
철학자 윤은주 박사의 고인돌 2.0강의 ‘다락방에 숨겨진 삶의 보물들’ 세 번째 시간에서 살아가면서 생각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한다. 총 5강으로 구성된 이번 강의는 1강 사랑LOVE(플라톤의 향연), 2강 권력POWER(마키아벨리의 군주론), 3강 생각 THINKING(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4강 자유FREEDOM(밀의 자유론), 5강 행복HIPPINESS(니코마코스의 윤리학) 등으로 이어진다.
윤 박사는 시민으로서 갖춰야 할 것 중에 언어 구사 능력, 자유, 경제로부터의 독립 등을 제시했다. 그 중에서 언어 구사 능력은 듣고, 쓰고 말하기가 기본이다. “언어능력은 오랜세월 소수의 기득권자들만이 누리는 권력이었어요. 즉 언어구사능력은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자질입니다. 만약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편안하고 자유롭게 말하지 못한다면 무능한 자가 됩니다. 철학에서 무능은 결핍이자 부재이죠.”” 곱씹어보면 여러 대목이 걸린다. 생각을 하고 또 그 생각한 바를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비로소 시민이라는 것이다.
히틀러의 명령을 묵묵히 따랐던 아이히만이 만약 자신이 죄 없는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는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해 봤을까.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하루를 생각하고 또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인 것이다. 윤 박사는 사랑, 권력, 생각 등 소중한 정신적인 보물을 다락방에 숨겨놓고 빈 껍질을 덮어쓰고 사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라고 권한다. 말은 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나의 생각이 담겨있는지, 그리고 자유롭게 말은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 한번 해 보자.
한편 이번 강의는 지난 10월 26일 공개된 ‘고인돌2.0’ 유튜브 채널에서 볼 수 있다. 고전 인문 아카데미 ‘고인돌2.0(고전 인문학이 돌아오다)’은 본지 부설 백상경제연구원과 서울시교육청이 지난 2013년부터 공동으로 진행하는 인문 교육 사업으로 8년째 운영하고 있다. 올해 는 코로나 19의 팬데믹으로 직접 강의실을 찾아가는 대신 전문가들이 온라인으로 수업을 한다. 특히 올해 ‘고인돌 2.0’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새로운 형식으로 강의를 기획했다. 해를 거듭하면서 중고등학생들이 인문학에 관심이 커지고 있어 중고등학교 교과목과 연계한 프로그램과 일상 속 인문학적 사고를 확장해 나갈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아울러 인문학 공부를 처음 시작하려는 성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강의도 풍성하다. 2020년 ‘고인돌 2.0(고전 인문학이 돌아오다)’사업은 SK이노베이션, 한화생명, 농협생명, 교보생명, DB손해보험의 후원으로 진행된다. /장선화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위원 indi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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