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시 ‘농암면’이라는 이정표가 눈에 띄었다. 농암면이라는 지명은 기자의 뇌리 속에 저장돼 있던 빛바랜 기억을 소환해냈다. 대학 신입생 시절, 친구 셋과 충북 괴산의 한 외딴 마을에서 차에서 내려 하염없이 산길을 걸어 문경시 농암면까지 찾아들었다. 지금이야 서울에서 2시간 거리지만, 그때만 해도 아침 일찍 서울을 출발해 시외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해 질 녘이 돼서야 농암면에 당도했다. 당시 이곳은 사람의 손때가 묻지 않은 말 그대로 ‘청정지역’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이곳에 손때가 묻었다는 얘기가 아니다. 수십 년이 지나 다시 찾았지만 평일이라서 그런지 쌍룡계곡 근처를 지나는 차들은 어쩌다 한 대씩 눈에 띌 정도였다.
계곡물과 흰 바위도 예전 풍광 그대로였다. 다만 다른 게 있다면 등산 코스가 다를 뿐이다.
그 옛날 우리들은 산길을 타고 북쪽을 향해 문경 대야산을 넘어 가은면 완장리로 넘어갔었다. 오늘의 코스는 쌍룡계곡이다. 쌍룡계곡은 문경시와 상주시·괴산군·보은군의 접경에 있다. 그래서 쌍룡계곡으로 차를 몰고 가다 보면 경상북도를 거쳐 충청북도를 지나 다시 경북으로 진입하게 된다. 이 계곡을 찾아가려면 내비게이션에 떠오르는 수많은 쌍룡계곡들 중에서 문경시 농암면 내서리에 있는 쌍룡계곡을 선택하면 된다.
계곡으로 가는 와중에 차는 도계(道界)를 넘나들지만 이 하늘, 이 산하에 무슨 경계가 있으랴. 그저 편리함을 좇는 사람들이 그어놓은 마음의 줄일 뿐이다. 물길은 한결같이 이어지고, 식생은 동일해서 곳곳이 단풍 끝물이다. 그런 쓸데없는 상념에 빠져 있는 동안 차는 다시 문경시로 진입해 도장산(828m) 자락으로 접근했다. 도장산은 문경시 농암면 내서리와 상주시 화북면 용유리의 경계에 있는데 중생대 쥐라기의 지각운동 때 편마암 및 화강편마암층이 침식에 저항하며 형성된 소백산맥 동사면의 산이다. 이 일대는 사람의 인적이 드문 곳으로 도로와 계곡이 나란히 이어져 있다. 고개를 돌려 차창 밖을 바라보니 기암괴석 사이를 돌아 물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이 구간 중 쌍룡계곡으로 불리는 구간은 농암면과 상주시 화북면을 연결하는 쌍룡터널을 지나면서부터다. 이곳에 우뚝 서 있는 산의 이름이 도장산인데 일대의 기암괴석과 층암절벽이 우람차고, 굽이를 돌아 흐르는 계곡물은 명징하다.
계곡의 이름이 쌍룡계곡인 것은 이곳에 청룡과 황룡이 살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계곡은 북쪽의 대야산과 남쪽의 청화산을 경유해 흐른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청화산을 가리켜 ‘병화가 미치지 못하는 땅’이라고 했다는데, 그것은 어찌 보면 두말할 필요조차 없는 말이다. 지금도 사람들의 인적이 이렇게 드문데, 교통과 통신이 불비했을 그 옛날에 어느 누가, 어떤 돌림병이 이 호젓한 산골까지 찾아 들어올 수 있단 말인가.
쌍룡터널을 지나고 얼마 가지 않아 작은 다리가 보이는데, 여기에서 우회전해 다리를 건너면 쌍룡계곡으로 내려가 볼 수 있는 계곡길이 시작된다. 이곳에서 심원사 쪽으로 40분쯤 걸으면 길 오른쪽에 쌍룡폭포가 모습을 드러낸다. 폭포 아래에는 크기와 깊이가 상당한 소(沼)가 있는데, 바위가 우뚝 솟아 물을 가두고 있는 형상이다.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쌍룡폭포의 경치가 일품이다. 다만 지난여름 쏟아진 빗물이 모두 흘러갔는지 폭포 줄기는 가늘고 약했다.
폭포 아래 고인 소의 규모는 상당해 폭도 넓고, 수심도 깊어 사람 키 한 길은 될 듯싶었다. 근처에 선녀탕과 심원폭포가 있다는데 이정표나 안내문이 없어 어느 곳이 심원폭포고 선녀탕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폭포를 벗어나 산길을 따라 1㎞ 정도 더 가면 심원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절의 규모는 암자보다 약간 큰 정도로 스님 3~4분이 수도하는 곳이다. 하지만 규모는 작아도 심원사는 천년고찰이다. 원효대사가 창건하고 윤필대사와 의상대사가 머물던 절로 1958년 화재로 소실된 뒤 뒤 1964년에 다시 지었고, 최근 중수했다. 도장산 정상으로 오르려면 절로 들어가기 100m 전에 있는 사거리에서 왼쪽 혹은 오른쪽으로 가면 되는데 왼쪽 길은 1.8㎞로 짧은 거리에 경사가 가파르고, 오른쪽 길은 3.9㎞로 거리가 먼 대신 경사가 완만해 코스를 골라 오를 수 있다. /글·사진(문경)=우현석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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