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사가 그렇듯 개각의 첫 관전 포인트는 물갈이다. 그간 정부 부처나 장관의 업무 수행을 평가해 미흡하거나 문제가 있으면 교체해 책임을 물어왔다. 그런데 국민은 물론 공무원조차 상사로 두기 창피하다는 수장들이 대거 유임될 태세다.
예산과 세금 등 재정정책을 총괄하는 경제부총리는 주식 양도세 부과 ‘대주주 요건’ 강화에 나섰다 물거품이 되자 이달 초 사표 소동을 일으켰지만 대통령이 사표를 반려한 지가 얼마 안 돼 자리를 지킬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부동산대책과 추경, 재난지원금 지급 등을 놓고 번번이 여당에 나가떨어진 경제 사령탑에 대한 신뢰는 기획재정부 내에서도 찾기 어렵게 된 지 오래다.
전 국민을 부동산 스트레스에 몰아넣은 국토교통부 장관을 놓고 “교체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는 데는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매매든 전월세든 손대는 대책마다 부동산 대란으로 이어지고 집 있는 사람, 없는 사람 모두의 원성이 자자해 ‘23전 23패’ 장관이라는 비아냥을 듣는 인사를 유임시키겠다는 오만은 정권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하긴 정의와 상관도 없이 나라를 두 동강 내놓은 법무부 장관은 ‘셀프 유임’을 기정사실화하며 대통령의 인사권도 신경 쓰지 않는 판국이다.
개각을 통해 참신하면서 실력 있고 인품을 갖춘 인재가 발탁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도 어렵다. 대통령은 망신주기와 ‘반대를 위한 반대’로 치닫는 국회 인사청문회 탓을 하지만 그 전에 부동산정책 대실패로 인사 기준까지 엉망진창을 만든 청와대의 실책을 손봐야 한다.
최근 고위직 인사에서 청와대가 ‘다주택자 배제’를 최우선으로 적용하면서 제갈량을 찾듯 삼고초려를 해도 집 한 채에 물려받은 주택 지분이 4분의1이라도 있다 치면 결격사유가 된다. 집 없는 인재를 찾는 인사정책도 동서고금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지만 집 있는 사람을 투기꾼으로 몰아붙이며 탈탈 터는 정권에서 자리를 준다고 나서는 사람에게 어떤 양식을 바랄 수 있을까.
총리가 일찌감치 두 차례 개각을 이례적으로 예고한 것은 1차 개각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아 여론의 비판이 거세지면 2차 개각이 남았다고 에두르며 달래려는 포석일지 모른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지칠 대로 지친 민심은 부동산 대란에 극도로 흉흉해져 있다. 어지러운 아첨 속에 정치적 꼼수들로 위기를 모면하려다 파국을 맞은 4년 전 사태를 남의 일로 여기지 말고 개각 전에 대통령이 직접 민심의 말단이라도 마주하기 바란다. runir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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