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의 징계 사유인 ‘판사 사찰’ 문건에 관한 판사들의 비판적 목소리가 이어지면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 총장 간 갈등에 영향을 줄 새로운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오는 7일 열리는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판사 사찰 문제가 논의 테이블에 올라 구체적 판단이 내려질 경우 징계위를 앞둔 양쪽 진영에 작지 않은 파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관대표회의가 오는 7일 오전 10시부터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이 회의는 각급 법원에서 선발된 대표 판사들이 참여해 사법부의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다. 이번에 논의될 안건은 판결문 공개 확대 등 8개로 정해졌으며, 최근 불거진 대검찰청의 판사 사찰 의혹 문건은 회의 안건에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안건으로 추가될 가능성은 남아있다. 규정상 회의 일주일 전 법관대표 5명이 제안하거나 회의 당일 10명 이상이 제안하면 안건으로 논의할 수 있다. 장창국 제주지법 부장판사는 지난달 25일과 이달 3일 2차례 법원 내부망에 글을 올려 법원행정처에 대응을 촉구하고 법관대표회의에서 이를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송경근 청주지법 부장판사는 전날 “법관대표회의가 독립성 침해 우려를 표명하고 철저한 조사를 촉구하는 원칙적인 의견을 표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봉수 창원지법 부장판사도 이날 “판사에 관한 사적인 정보수집은 부정한 목적을 위해 활용할 의도가 아니라면 무의미하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며 가세했다.
지금까지 부장판사 3명이 이 문제의 진상조사를 촉구하고 법관대표회의에서 의제로 논의하자고 공개적으로 제안했다. 댓글로 호응한 판사들이 있고 대열에 동참하는 판사들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 사안에 관해 사법부 전체적으로는 신중한 분위기가 우세하다.
일부 판사들은 “어떤 판사가 양형이 무겁고 유죄 심증이 강하다든지 하는 세평들은 법무법인에서도 많이 수집한다”며 문건을 문제 삼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이 지난 2월 작성한 이 문건에는 주요 특수·공안 사건의 판사 37명의 출신 고교·대학, 주요 판결, 세평 등이 기재됐다. 세평에는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나 합리적이라는 평가’, ‘언행이 부드러움’ 등의 내용이 기재되어 있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조미연 부장판사)는 지난 1일 윤 총장이 직무 배제 조치에 반발해 신청한 집행정지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판사 사찰 의혹 문건에 관한 판단은 내리지 않았다. 집행정지는 직무 배제로 생길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할 긴급한 필요성이 있는지를 판단할 뿐, 징계 사유가의 정당성은 판단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법관대표회의는 2017년 사법부 블랙리스트 사태를 계기로 출범한 판사 회의체로 2018년 2월 상설화됐으며, 대표 판사 117명으로 구성된다. 사흘 앞으로 다가온 법관대표회의에서 이 문제를 다룰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법관대표회의 관계자는 “이번 사안을 놓고 재판의 독립성을 침해한다는 의견과 신중하게 접근하자는 의견 등이 존재한다”며 “토론이나 안건 상정 여부는 회의 당일에야 확인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법관대표회의에서 이 문제가 다뤄질 경우 논의 결과에 따라 오는 10일로 예정된 징계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판사들의 목소리가 윤 총장의 징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법관대표회의가 문건의 성질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이번 사태의 양상이 달라질 수도 있다.
법관대표회의가 문건을 사찰로 규정하면 추 장관 측에게 힘이 실리고, 반대로 사찰로 보기에 부적절하다는 결론을 내면 윤 총장이 또다시 판정승을 거두는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장덕진 인턴기자 jdj1324@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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