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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 수사권 경찰 이관, 北 첩보 활동에 고속철 깔아주는 격"[청론직설]

[전옥현 전 국정원 제1차장]

경찰의 대공 정보망과 수사력, 국정원에 비해 매우 취약

해외 수사 땐 해당국 주권 침해로 외교 분쟁 비화할수도

보안직무 폐지하면 전문성 추락…정보기관 통합에 역행

北'고난의 행군' 때보다 어려워 '힘 바탕 대화' 추구해야

더불어민주당이 국가정보원법 개정을 밀어붙이고 있다.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을 3년 후 경찰로 넘기고 국정원 직무 범위에서 ‘국내 정보’를 뺀다는 것이 골자다. 북한 김정은 정권의 전체주의 성격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는데 대공 수사 역량을 통째로 무력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전옥현 전 국정원 제1차장은 7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대공 수사권을 경찰에 이관하면 간첩을 잡지 않겠다는 신호를 북한에 보내게 되는 셈”이라며 “북한의 첩보 활동에 고속철도를 깔아준 격이 된다”고 우려했다. 경찰의 대공 관련 정보망과 수사 능력이 국정원에 비해 매우 취약해 보안 수사 기능이 급속히 위축될 것이라는 얘기다. 국정원법 개정안이 국회 정보위원회를 통과해 본회의 상정을 앞둔 가운데 전 전 차장을 만나 국정원 개혁과 한반도 정세 변화 대응 방안 등에 대해 들어봤다.

전옥현 전 국정원 1차장은 7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국정원법 개정은 간첩 검거를 위축시키고 국정원과 국가보안법을 무력화하는 역효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호재기자






-민주당이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을 경찰에 넘기는 국정원법 개정안을 국회 정보위에서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국정원은 국가 안보의 최전선에 있는 종합 국가 정보기관이다. 국가 안보의 개념은 과거 군사 부문에 국한됐지만 이제는 정치·군사·경제·사회·문화 분야와 기후·전염병·사이버 등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으로 바뀌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적인 정보기관들도 국가 정보를 통합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미국 국가정보국(DNI)이다. 민주당이 밀실에서 졸속으로 만든 국정원법 개정안은 이런 세계 추세에 역행한다.

-국정원의 직무 범위를 국외·북한, 방첩·대테러·국제 범죄 조직, 내란·외환죄, 사이버 안보·위성 자산 등으로 제한했는데.

△북한은 남한에서 자신들이 주장하는 사회주의혁명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 노동·문화·정치 등 다양한 분야로 첩보 요원들을 보내고 있다. 그중에서도 정치 분야는 북한이 겨냥하는 핵심 목표다. 정치 정보 수집 활동을 막으면 간첩 체포 기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경찰이 북한 첩보 요원들을 잡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간첩 수사를 하려면 풍부한 대공 정보와 전문 수사 인력, 수사 네트워크를 갖춰야 하는데 경찰은 그렇지 못하다. 국정원은 60년 가까이 보안 유지, 정보 수집, 공작 능력을 키웠다. 이런 능력을 경찰이 갖추려면 수십 년 걸릴 것이다. 경찰은 해외에서 암약하는 간첩을 잡으려 해도 자칫 해당국의 주권을 침해해 외교 분쟁을 야기할 수 있다. 경찰은 주재국 정보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 하지만 국정원은 해외에서 국가 안보와 관련된 모든 정보 공작을 단독 또는 합동으로 할 수 있다.

-결국 대공 수사와 첩보 요원 검거가 매우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인가.

△북한은 국정원·국가보안법·주한 미군을 남한 사회주의혁명의 3대 장애 요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대공 수사권 이관은 간첩 잡는 역량을 떨어뜨려 국정원과 국가보안법을 무력화하는 역효과를 낼 것이다. 대공 수사권을 이관해야 한다면 북한 대남 혁명 전략의 핵심 조직인 통일전선부와 정찰총국 폐지와 상응해 추진해야 한다.

-경찰청 일부에서 보안 직무를 없애고 일반 직무로 통합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얘기도 나오는데.

△누구나 대공 수사를 할 수 있게 하면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북한 첩보 요원은 엄선된 뒤 정밀하고 혹독한 훈련을 받고 내려오는 상황에서 우리가 대공 수사와 정보 수집의 전문성까지 떨어뜨리려 해서는 안 된다. 게다가 법원이 엄격한 증거주의를 채택해 유죄 판결을 받아내기도 쉽지 않다. 결국 국가보안법 폐지로 나아가는 시나리오의 일부로 여겨진다.

-국정원 직무에 오히려 ‘경제 질서 교란 및 방위 산업 침해에 대한 정보 수집 행위’를 추가했다고 한다.

△국내 정치 관련 정보 수집을 금지하는 대신 굉장히 포괄적이면서 불명확한 개념을 넣었다. 또 다른 정치 개입 논란을 낳을 수 있는 정보 활동 무대가 펼쳐질 소지가 다분하다. 말을 잘 듣지 않는 기업들을 길들이고 부동산과 원자력발전 등과 관련된 정부 정책에 반하는 행위를 통제하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 경제 사찰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

-국정원이 현 단계에서 가장 신경 써야 할 개혁이 있다면.

△국정원의 기능을 현행대로 유지하고 오히려 내사 수준에 그친 산업 기술 유출과 테러범 수사 등에 대해 수사권까지 주는 게 바람직하다.



-민주당이 대북 전단 살포를 금지하는 법안도 추진하고 있는데.

△대북 전단 살포는 북한의 실체를 드러내 김정은 정권에 치명적 타격을 가할 수 있다. 정부와 여당은 북한에 대화를 구걸하기 위해 우리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까지 어기며 김정은 체제를 지원하는 법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민주화 투쟁을 했던 집권 세력이 사실상 김정은의 독재 유지를 도와주는 행태를 보이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김정은 체제가 안정돼 있다고 보는가.

△외형적으로는 안정돼 보이지만 내부적으로 굉장한 위기에 처했다고 본다. 북한 핵 위협으로 국제 제재가 장기화하고 있는데 홍수·태풍 피해에다 코로나19까지 겹친 3중 재앙이 엄습했다. 여기에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으로 중국이 대놓고 북한을 지원하기도 쉽지 않다.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때보다도 더한 위기에 직면했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에 우리 정부가 북한에 퍼주기식 경제 지원을 하는 바람에 김정일 체제가 살아났고 핵과 미사일까지 만들었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북은 핵을 개발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식으로 언급했으나 북한은 그 뒤 핵과 미사일 실험을 여러 차례 강행했다. 2018년부터 북미정상회담과 남북정상회담이 수차례 열렸으나 북한은 말로만 ‘한반도 비핵화’를 약속하고 북핵 폐기 의지를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현 정부는 다시 내년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실패한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려 한다.

-앞으로 대북 정책을 어떻게 펴야 하나.

△국제사회의 제재 틀을 지켜 김정은 정권이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대화의 장으로 나오도록 해야 한다. 8 대 2 정도로 제재를 앞세우는 전략을 펴야 20%밖에 가능성이 없는 대화를 80% 정도로 끌어올릴 수 있다. 북한과의 대화는 힘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 성립된 적이 없다.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강력한 군사력 우위’를 바탕으로 하는 협상 전략으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대화로 끌어냈듯이 우리도 그 길로 가야 한다. 동구권을 무너뜨린 역사적 협상 전략을 대북 협상에 원용할 줄 아는 지혜와 배짱이 필요하다.

-미국의 조 바이든 새 행정부가 어떤 대북 전략을 펼 것으로 예상하는가.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부통령으로 있었기 때문에 ‘북한은 쉽게 대화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라는 점을 잘 안다. 그래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대화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갖고 있다. 협상 전략도 정상에서 실무진으로 내려가는 ‘톱다운’이 아니라 실무진에서 위로 올라가는 ‘보텀업’ 방식을 선호한다. 바이든은 현재 세계 정상들 가운데 외교 안보 부문의 실전 경험이 가장 많은 지도자다. 절대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쇼’를 하면서 알맹이 없는 대화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바이든 정부가 이 같은 대북 정책을 펴면 문재인 정부는 어떻게 대응할 것으로 보는가.

△문재인 정부는 김정은과 대화하려면 선물을 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쉽게 선물을 내줄 것 같지 않다. 그러다 보니 우리 정부가 일본으로 달려가고 있다. 얼마 전까지 일본을 북한보다 더 적대시했던 점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다. 북일 대화를 촉진해 일본인 납치 문제를 풀고 북일 수교를 통해 수백억 달러의 식민 지배 배상금을 지급하게 해 북한을 도우려는 구상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 사이에 미북·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는 큰 그림을 그리는 것 같다. 하지만 한일 양국은 징용 문제로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김정은을 짝사랑할 우매한 지도자가 결코 아니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과 중국의 패권 전쟁 양상은 어떻게 변화할 것으로 전망하는가.

△미중 패권 다툼은 더 치열해질 것이다. 바이든 정부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민주주의 가치를 기준으로 동맹을 더욱 강화하는 전략을 펼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2050년까지 ‘중국몽’을 실현하기 위해 경제 분야뿐 아니라 군사 분야의 팽창을 강하게 추진하고 있다. 미중 패권 전쟁이 30년 이상 지속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 같은 위기 국면에는 제3 지대를 찾기 어렵다. 신(新)냉전 체제에서 한국이 서야 할 곳은 이미 정해져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인권 등을 지키는 가치 동맹, 즉 한미 동맹 강화를 추구해야 한다. 지금이 굉장히 중요한 분기점이다. 흐트러진 한미 동맹을 재정비하고 무너진 한미일 삼각 공조를 복원해야 한다. 물론 우리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의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협력하는 방안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현 정부가 정파적 관점에서 남은 임기 1년 반만을 생각하면 외교 안보 정책은 실패할 것이다. 장기적 안목에서 국가 안보와 국익을 지키기 위해 중심을 제대로 잡아야 한다.

He is …

1956년 충남 서천에서 태어나 대전고와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했다. 국정원에서 30여 년 동안 일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국정원장 비서실장과 해외정보국장 등을,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정원 1차장을 지냈다. 주요 전공이 해외 부문으로 미국·중국·북한 분야를 두루 다뤘다. 주유엔 공사, 주홍콩 총영사와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정보관리실장을 역임했고 한반도 4자 회담 대표단으로 활동했다. 현재 운영하는 유튜브 ‘전옥현 안보정론TV’는 구독자가 61만 명에 달한다. 저서로 ‘한국의 보수 어디로 가야 하나’ ‘위대한 보수 영원한 평화’ 등이 있다.

/오현환 논설위원 hho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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