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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에세이] '펜트하우스'에서 개콘을 봅니다





드라마를 분석하고 리뷰하며 참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막장극이 흥행하는 시기다. 잊을만 하면 돌아오고, 또 잊을만 하면 어김없이 돌아온다.

보통 막장극은 초반에 뭐 좀 해보려는 듯 굵직한 사건을 하나 크게 던져놓고, 결말 직전까지 온갖 클리셰(진부한 설정)로 돌려막기하며 시청자를 자극한다. 개연성과 메시지가 사라지고 짜릿한 자극이 더해질수록 시청률은 올라간다. ‘이게 말이 되냐’는 초반의 비판도 엄청난 시청률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분석해보겠다며 고민하다 포기할 때면 ‘개그콘서트’ 시청률의 제왕 코너를 떠올린다. 조금 지루해진다 싶으면 던지는 황당한 설정, 그리고 이걸 또 연기자들이 곧잘 받아내는…. 아침드라마로 막장에 면역이 된 시청자들에게 프라임타임의 ‘고급 막장극’은 TV에서 보던 시청률의 제왕을 마치 대학로 무대에서 보는 것 같은 생생한 재미로 다가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SBS ‘펜트하우스’에는 드라마에서 쓰는 클리셰라는 클리셰는 싹 다 들어있다. 살인, 왕따, 불륜, 갑질, 복수, 출생의 비밀, 학교폭력, 학대, 사기, 베일에 싸인 인물, 부동산 개발 폭리까지…. 민설아(조수민)의 살인사건을 추적한다는 큰 그림 안에 이들을 곳곳마다 배치한다. 감나무에 달린 잘 익은 홍시만 눈에 들어오듯 굵은 줄기는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대놓고 ‘집값 1번지, 교육 1번지’라고 설정한 최고급 주상복합 펜트하우스에는 욕망과 부도덕만 존재한다. 서로를 질투하며 경멸하면서도 돈 앞에서는 하나가 되는 사람들, 불륜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아내와 이를 이용하려는 남편, 때밀이를 시작으로 큰돈을 벌었지만 돈 없는 이들을 혐오하는 여자, 능력없는 남편과 지옥같은 시집살이에도 돈 때문에 참고 살아가는 전직 아나운서, 어디서 못된 것만 배운 아이들까지.





눈여겨 볼 점은 이들 모두 앞에 보이는 것만 볼 뿐, 이면을 읽지 못한다는 부분이다. 주기적으로 모임을 갖기도 하고, 돈 때문에 오유진(유진)을 몰아낼 작당모의를 하지만, 서로가 뭘 하는지 관심이 없다. 강마리(신은경)이 때밀이였고 남편은 교도소에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다는 것이 말이 되나. 헤라팰리스에서 오유진을 쫓아내는 투표를 진행하는 것도 웃기지만, 그 큰 주상복합에서 투표권이 고작 4가구에게만 있다는 것은 또 말이 되나.

이런 개연성 떨어지는 상황에 ‘이게 말이 되냐’며 고민할 필요는 없다. 고민하기도 전에 다른 에피소드로 훅 넘어갈테니. 다른 드라마였으면 설왕설래하거나 큰 논란으로 번졌을 이야기도 이 작품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시청률이 잘 나오니까. 재미있으니까. 생각해보기 전에 또다른 자극적인 이야기로 눈을 사로잡을 거니까. 마약처럼.

모두 ‘김순옥이니까 괜찮아’라고 넘기기에 도가 지나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하나당 한편만 나와도 충분한 자극적인 소재들을 싹 다 몰아넣었음에도 말이 되는 이야기를, 그것도 코미디가 아닌 드라마로 만들어낸 작가의 필력에는 감탄만 나올 뿐이다. ‘황후의 품격’도, ‘왓다 장보리’도, ‘아내의 유혹’도 모두.

20%를 훌쩍 넘긴 시청률, 최고급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 온갖 명품 PPL, 정상인에서 벗어날수록 돋보여 보일 수밖에 없는 배우들의 연기. 거칠 것 없고, 아무것도 문제되지 않는 김순옥 월드는 오늘도 ‘도덕없지만 괜찮아’라고 말하며 오늘 저녁도 품격 있는 황후 같은 아내들을 유혹하고 있다.



/최상진기자 csj8453@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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