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문화를 경험한 이들은 PC통신을 기억할 것이다. ‘뚜뚜, 삐~’하는 모뎀 접속음, 파란 바탕에 하얀 텍스트만 가득한 화면, 늦은 밤 부모님 몰래 접속하던 희열 등. 눈 깜짝 할 사이 영화 한 편을 다운받는 지금 시대에 돌이켜보면 PC통신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대체 어떤 매력 때문에 PC앞에 앉아 하얗게 밤을 지새웠을까.
인기의 비결은 혼자가 아닌 다른 누군가와 사이버 공간에서 만나서 소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PC통신 최고의 인기 서비스는 단연‘채팅방’이었는데, 영화, 음악 등을 주제로 한 채팅방에는 같은 취미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로 항상 북적거렸다. 당시 PC통신을 통해‘접속’하는 두 주인공을 그린 영화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방가방가, 정모(정기모임) 같은 신조어나, ^^(웃음), ㅠㅠ(울음) 등 감정을 전달하고자 하는 이모티콘도 이 때 등장했다.
2020년 온택트(Ontact)란 신조어가 생겨난 배경에도 90년대 PC통신의 인기를 불러왔던 사람들의 심리와 욕구가 반영되어 있는 듯하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비대면 서비스에서 올 수 있는 단절과 고립감을 극복하고, 온라인을 통해 외부와 연결한다는 개념의 온택트가 우리의‘접속’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편, 20년 넘는 세월 동안 우리를 연결하는 기술은 천지개벽할 발전을 이루었다. PC통신에서는 유선 전화망을 통한 텍스트가 거의 유일한 연결수단이었지만, 지금은 5G, 라이브 스트리밍, 고해상도 영상 등 온갖 기술을 동원할 수 있다. 지난 10월 단 이틀간 백여만 명의 관객을 불러 모은 K팝 그룹의 온택트 공연만 보더라도 정말 최첨단 기술의 향연이다. 초대형 LED 스크린에 팬들의 얼굴이 생생하게 비쳐졌고, 함께 음악을 따라 부르는 ‘떼창’과 응원 목소리가 무대 위로 고스란히 전달됐다. 단순한 온라인 중계의 한계를 넘어 가수와 관객이 서로 긴밀히 연결 됐다는 평가이다.
새해를 앞둔 지금 거의 모든 기업들이 디지털 전환이나 온택트 전략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온택트란 용어에 우리의 연결 욕구가 반영되어 있는 만큼, 기업은 디지털 기술로 고객과의 접촉을 어떻게 만들어갈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온·오프라인의 경계를 허물고, 고객과 소통하며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어야 진정한 의미의 ‘온택트’를 구현할 수 있다.
농협은행은 ‘디지털 휴먼뱅크’가 되고자 한다. 목표에 ‘휴먼’을 넣은 것은 디지털 기술 너머로 친절한 은행원을 만나는 듯한 경험을 만들어 보자는 다짐에서다. 고객의 목소리를 가까이서 경청하고 공감하며, 고객이 정말로 필요로 하고 열광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 나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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