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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화상 입어도, 맹장 아파도…병원이 거부할 자격 있나요?[서지혜 기자의 건강한 육아]

응급상황 아동, '자가격리' 이유로 치료 거부 사례 속출

코로나19 10개월인데.. 자가격리 중 응급상황 매뉴얼 없나

아이 아픈 부모들 아등바등...'안 아픈게 상책' 다짐도

사진=이미지투데이




“우리 둘 다 코로나19에 걸리면 어쩌지?”

지난 주 남편과 이 문제를 두고 한 시간 여를 토론했습니다. 경남 진주에서 일가족 4명 중 3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고, 음성 판정을 받은 나머지 1명이 ‘9세 여아’라는 안타까운 뉴스 때문입니다. 다행히 현재는 외할머니께서 아이를 돌보고 계시지만 엄마·아빠가 모두 격리돼 아이가 2~3일간 홀로 지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기사를 읽고 마치 내 아이가 그런 상황에 처한 것 마냥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만약 내가 이런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게 해결했을지, 아무리 생각해도 뾰족한 답은 없습니다. 아이도 밀접접촉자로 분류되니 누군가를 부르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혹시 상대가 거절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결국 남편은 ‘우리가 경증이라면 그냥 마스크를 쓰고 아이와 같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했습니다. 아이가 어쩌면 무증상 확진자일 수도 있는데 연로한 부모님을 또 다른 밀접접촉자로 만들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다 우리는 이런 의문에 봉착했습니다.

아무리 부모라도 확진자와 아이가 같이 있는 걸 보건소에서 허락해 줄까? 만약 부모 외에 돌봐줄 어른이 없는 아이는 이런 상황에서 어디로 가야 하는 거지?

다음 날 저는 ‘이 사례처럼 아이가 혼자 자가격리 되는 경우 따로 가이드라인은 있는지’ 방역당국에 질문했습니다. 돌아온 답변은 ‘격리는 독립된 공간에서 혼자 생활하는 것이 원칙이나 영유아, 거동이 불편한 자, 정신질환자는 보호자 등과 함께 거주 가능합니다’입니다. 9살 아이는 영유아도 아니고, 거동이 불편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15일이나 혼자 있을 수 있는 나이도 아닙니다. 자가격리 기간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응급 상황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매뉴얼은 없는 걸까요?

코로나19 10개월, '자가격리자' 낙인에 안타까운 사연 속출






코로나19가 유행한지 10개월이 다 되어가면서 어린이 관련 안타까운 사연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지난 19일에는 평택에서 자가격리 중인 한 학부모가 청와대 국민청원에 ’코로나 음성 결과인 자가 격리자의 맹장 수술을 도와주세요’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습니다. 글쓴이는 ‘(초등학생인) 아이가 맹장 통보를 받았는데 평택의 병원이 모두 수술을 거부해 현재 아무런 조치도 받지 못하고 대기 중’이라며 도움을 청했는데요, 특히 ‘아이가 5일째 복통을 호소하고 있다’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이 아이가 다니고 있는 학교에서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자가격리 상태에 놓이자 병원들이 혹시나 모를 ‘확진 가능성’ 때문에 치료를 거부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이 아이는 다행히 청원을 읽은 한 병원 관계자의 도움으로 수술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5일이나 맹장 수술을 하지 못했다니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또 최근 자동차 정보 공유 사이트 ‘보배드림’에는 ‘제가 확진 판정을 받았고, 다음 날 아이가 2도 화상을 입었는데 밀접접촉자라는 이유로 모든 병원이 거부한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외관상으로 봐도 아이의 상태가 심각할 정도로 화상을 입었지만 부모가 확진자기 때문에 아이가 화상 치료를 받지 못한 것입니다. 아이는 밀접접촉자니까요. 이 사례 역시 결국 글쓴이가 올린 글을 보고 분당의 한 병원에서 직접 자택으로 방문해 치료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결론만 보면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인데 왠지 씁쓸합니다. 코로나19가 아니라 어떤 감염병이 유행하더라도 환자는 발생합니다. 맹장, 화상과 같은 당장 치료가 급한 아동을 ‘확진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병원이 거부할 자격이 있을까요? 물론 병원 입장에서는 자칫 한 번에 수십 명의 추가 확진자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니 조심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애초에 병원에는 ‘감염병 상황에서 확진 가능성이 있는 환자가 방문했을 때’의 치료방법이나 대응 방안 등이 매뉴얼로 마련돼 있어야 합니다.

매뉴얼 없는 재난상황...'선한 마음'에만 기대는 응급환자들


지난 2월 코로나19가 국내에 상륙한 이후 맘카페와 SNS에는 ‘아이가 열이 나 병원에 갔는데 코로나19일 수 있다며 병원에서 출입을 막았다’는 내용의 글이 자주 올라왔습니다. 부모들이 ‘결코 코로나19가 아니다’라며 하소연해도 고열이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다며 병원 입구에서부터 차단당하는 일은 비일비재 했습니다. 제 주변에도 비슷한 일을 경험한 부모가 꽤 많습니다. 사실 보건소에서는 자가격리자라도 긴급한 상황에서는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병원이 거부하면 보건 당국이 강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합니다. 병원에서 격리된 공간에서 치료받아야 하는데 모든 병원이 그런 시설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병원의 상황도 이해할 만합니다. 무작정 자가격리자를 받았다 자칫 수십 명의 확진 환자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요. 결국 자가격리 중 발생하는 응급상황에 대응할 별도의 가이드라인이 없다면 아픈 아이들이 병원을 전전긍긍하는 일은 계속해서 발생할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부모들은 매일 ‘절대 아프면 안 된다’고 다짐합니다. 앞선 사례들처럼 누군가가 따뜻한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도와주지 않는다면 자신과 아이의 건강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응급 상황이 되면 불안해하다 인터넷에 글을 올리고, 그래서 그 글을 읽은 선한 사람에게 도움받는 아름답지만 기형적인 구조에만 기댈 수밖에 없습니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지 10개월이 지났는데요, 왜 아직까지도 ‘누구나 상상 가능한’ 이런 기본적인 상황에 대한 지침이 마련돼 있지 않은걸까요. 아이를 가진 부모들은 코로나19가 유행하자마자 가장 먼저 떠올린 최악의 상황인데, 방역당국은 그간 이 같은 상황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던 건지 묻고 싶습니다.

19일 정부는 민간 병원에 대해 ‘병상 수 1%를 비우라’는 행정 명령을 내렸습니다. 코로나19 중증 환자의 병상이 수도권 전체에 13개 밖에 남지 않은 것으로 집계 되면서 내린 긴급한 조치입니다. 하지만 저의 걱정은 다른 방향으로 향합니다. 민간 종합병원에는 심근경색, 암 등 코로나19 만큼이나 다급한 중증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가 많습니다. 당장 우리의 가족일 수도 있습니다. 정부는 이들의 병상 부족에 대해서는 어떤 대안을 갖고 있는 걸까요. 국가적 재난 상황이니 ‘코로나19를 물리치는 것’에 모두 동의하고 희생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매뉴얼 없는 긴급 정책이 또 다른 재난으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우려되는 까닭입니다.
/서지혜기자 wis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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