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초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에 김진욱 헌법재판소 선임연구관을 지명함에 따라 공수처 설립이 ‘초읽기’에 돌입했다. 청와대는 “김 후보자가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며 공수처가 권력형 비리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 인권 친화적 반부패 수사 기구로 자리 잡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후보자는 이날 오후 6시20분께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퇴근하며 기자들을 만나 “공수처 출범에 대한 국민 여러분의 기대 그리고 또 걱정 잘 알고 있다”고 초대 공수처장으로서의 각오를 밝혔다. 김 후보자는 ‘정치적 중립성 공정성 의문이 있다’는 질문을 받고는 “그런 것은 공수처가 출범하고 차차 진행되어가면서 아마 서서히 불식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공수처가 공직자 부패를 척결해 권력형 비리를 근절한다는 설립 취지를 넘어 정권의 홍위병 같은 권력기관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공수처장 1인에 수사·인사 등 모든 권한이 집중된 구조라 부작용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견제 장치 없는 무소불위의 권한으로 소위 공수처장 1인 독주 체제가 굳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무분별한 사건 이첩 등으로 사정 기관의 ‘옥상옥’으로 군림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인사부터 ‘기울어진 운동장’
정웅석 서경대 공공 인적 자원학부 교수는 “공수처장의 가장 큰 권한 가운데 하나는 인사”라며 “공수처장은 인사위원장으로 최대 9년 동안 재직할 수 있는 수사처 검사를 임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과거 대검 중앙수사부가 9년간 이어질 수 있는 구조를 공수처장이 결정하는 셈”이라며 “때문에 (수사에서)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될지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수사 대상 선정도 ‘자유자재’
공수처장 판단에 따라 사건이 공수처와 검찰·경찰 등 사정 기관 사이에서 오고 갈 수 있다는 점도 우려 대목이다. 공수처법 제24조에는 ‘공수처장 판단에 따라 이첩을 요구하는 경우 해당 수사기관은 응해야 한다’고 못 박고 있다. 그러나 ‘수사 진행 정도·공정성 논란 등에 비추어 판단한다’고 만 언급돼 있을 뿐 다른 구체적 기준이 없다. 반대로 공수처장이 ‘다른 수사기관이 수사하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할 때’는 사건을 해당 수사기관에 넘길 수 있다. 특정 사정 기관에서 사건을 수사하는 기준을 공수처장이 결정할 수 있는 셈이다.
게다가 경찰이나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고위공직자 범죄 등을 인지하면 곧바로 공수처에 통보해야 한다. 인지 사건은 물론 수사 중인 사건이라도 수사의 주체를 결정하는 권한이 공수처장에게 있는 것이다. 출범하기도 전에 앞으로 수사를 두고 공수처가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의 ‘옥상옥’으로 군림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총장의 경우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통해 견제할 수 있지만 공수처는 다르다”며 “(공수처장의) 운영의 묘가 필요하겠지만 현재 구조라면 자칫 헌법이 보장하는 견제와 균형의 원칙이 제대로 반영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수처가 각 수사기관 사건을 자유자재로 선택·수사하는 등 폭주하는 비이성적 모습을 보이면 권력기관 사이의 견제와 균형이 무너질 수 있다는 얘기다.
정 교수도 “검찰이나 경찰이 수사 중인 고위공직자 사건이라도 공수처장이 판단하면 곧바로 가져올 수 있다”며 “만약 공수처가 친(親)정부 인사를 불기소해도 현재로서는 막을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공수처에 한정되지만 입법 건의까지
관련기사
이 밖에도 공수처장에게 보장된 권한은 입법 요청이다. 공수처법 17조에는 ‘공수처장이 소관 사무에 대해 법무부 장관에게 의안을 요청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요청 범위에는 대통령령까지 포함된다. 비록 법무부 장관을 통하긴 하지만 공수처장이 공수처에 관한 법률은 물론 대통령령까지 바꿀 수 있다는 얘기다.
또 공수처장은 헌법·정부조직법 등에 명시된 중앙행정기관의 수장으로 공수처의 예산 관련 업무도 수행할 수 있다. 인사·수사·입법·예산 등까지 헌정 사상 유례없는 권한을 지니고 있지만 사실상 공수처장을 견제할 수단이 없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공통된 지적이다.
한상희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공수처의 핵심이 독립성이라 권한이 공수처장에게 몰렸는데 이를 견제할 별도 기구 등은 현행법에는 사실상 없다”며 “검찰이 판검사를 제외한 고위공직자 사건에 대한 기소권을 행사하는 게 공수처를 견제할 유일한 방법”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국회가 공수처에 대한 견제 차원에서 인사청문회를 통한 자질 검증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첫 수사 사건에 촉각… 중립·공정성 가늠자 거론
공수처가 어떤 사건을 수사 대상으로 삼을지도 관심이다. 첫 수사 대상이 정권과 관련된 사건일 경우 그 결과에 따라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후보자는 ‘1호 수사 생각해둔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 “없다”며 “그건 나중에 인사청문회 때, 그리고 그 이후에 말씀드리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했다.
법조계에서는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의혹 사건을 현재 수사 중인 대전지검에서 이첩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대전지검은 최근 산업통상자원부 간부 공무원 3명을 구속 기소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다음 수순은 청와대가 산업부에 월성 1호기 폐쇄를 부당하게 지시했는지를 수사하는 것이다. 여권에서 “검찰이 정부의 정당한 정책을 무리하게 수사하고 있다”며 압박하고 있는 만큼 공수처로 이첩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위원회 관련 고발 사건들도 공수처가 이첩받을 가능성이 있다. 현재 ‘고위공직자’ 신분인 추미애 법무부 장관, 심재철 법무부 검찰국장 등은 시민단체들로부터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고발돼 여러 검찰청에 사건이 분산돼 있다. 공수처는 해당 사건들을 통째로 가져와 수사에 착수할 수 있다. 현재 논란이 계속되는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 기사 폭행 사건도 공수처가 가져올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민감 사건 부담에 판·검사 비위부터 처리할수도
공수처가 만약 월성 원전 1호기 사건, 윤 총장 징계위 사건 등 정권에 불리한 사건 수사를 맡았는데 묵히거나 봐줬다는 의구심이 제기될 경우 첫발부터 공정성 시비에 휘말리는 것은 불가피하다. 윤 총장 관련 사건을 첫 사건으로 결정할 경우 수사에 착수한 것만으로도 ‘윤석열 찍어 내기’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정권에 민감한 사건은 부담이 큰 만큼 일반 사건부터 처리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민감한 사건 대신 일선 검사나 판사 등의 비위 혐의부터 수사하고 천천히 존재감을 드러내는 방향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
/안현덕·손구민기자 always@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