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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12년 만에 되찾은 자유

1853년, 흑인 자유인 솔로몬 노섭 구출

자서전 ‘노예 12년’에 삽화로 들어간 솔로몬 노섭. /위키피디아




1853년 1월 4일 미국 루이지애나주 레드리버의 한 농장. 욕설과 저주를 퍼붓던 백인 농장주 에드윈 엡스가 마지못해 문서에 서명했다. 내용은 43세 흑인 노예 플랫에 대한 모든 권리의 포기. ‘플랫은 사유재산’이라며 저항하던 엡스는 신분증명서와 행정명령서는 물론 보안관까지 대동한 플랫 측 변호인에게 포기 각서를 쓸 수밖에 없었다. 플랫이라고 불렸던 흑인 남성은 이로써 12년 만에 자유를 되찾았다. 솔로몬 노섭이라는 본래 이름과 함께.

노섭은 출생부터 노예가 아니었다. 해방 노예인 부친의 재산을 물려받아 유복하게 지냈다. 음악을 배워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목수 겸 농장주, 뗏목 운반 등 다양한 사업에 손댔다. 음식 솜씨가 좋아 호텔에 요리사로 취직한 부인과 세 자녀를 두고 행복하게 지내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노예 신세로 떨어졌다. 높은 보수를 제시한 백인 사기꾼 일당이 준 술을 마신 후 깨어나 보니 쇠사슬에 묶인 채 갇혀 있었다.

사기꾼 일당은 그를 ‘도망 노예’라며 남부에 팔아넘겼다. 여러 주인을 거쳐 12년 동안 노예로 살던 그는 노예제도 폐지론자인 캐나다 백인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구출돼 가족에게 돌아갔다. 명백한 증거가 있음에도 백인 인신매매꾼들은 법적인 처벌을 받지 않았다. ‘흑인은 백인에게 불리한 증언을 할 수 없다’는 법률 탓이다. 소송에 실망한 그는 1853년 말 ‘노예 12년’이라는 책을 출간하며 하고 싶었던 말을 쏟아냈다.



중산층 자유인이던 노섭이 노예로 팔린 것은 초과수요 때문. 1808년 이후 노예 수입이 금지된 반면 수요가 폭증하면서 흑인 자유민을 유괴해 노예로 팔아넘기는 행위가 극성을 부렸다. 18세기 말 발명된 조면기로 면화 솜의 씨앗 분리가 쉬워지며 노예 가격도 치솟았다. 노예 상인들은 ‘흑인이 자유를 누리는 것은 신의 명령을 거부하는 처사’라며 강제 인신매매로 돈을 벌었다.

노섭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 납치됐다가 돌아온 사례 자체가 드물다. 책에서 노예제의 실상을 고발한 그는 북부와 캐나다 일대를 돌며 노예제도 폐지 운동을 펼쳤다. 1863년 이후 자취를 감춘 그의 말년은 명확하지 않다. 심지어 노예로 다시 팔려갔다는 설까지 돌았다. 망각 속에 묻혔던 그는 21세기 들어 재조명받고 있다. 2013년 흥행작 ‘노예 12년’의 원작자가 바로 솔로몬 노섭이다. 168년 전의 새해와 오늘날이 얼마나 다를지는 의문이 없지 않지만 확실한 게 하나 있다. 뭔가 나아졌다면 노섭을 도왔던 인간애 덕분이다. 한 줄기 빛과 소금이 세상을 구한다.
/권홍우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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