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작품은 극단 김장하는 날의 ‘에볼루션 오브 러브’다. 인간의 사랑을 사회·문화·정치·철학·생물학·심리학 등 다각도의 시선으로 풀어내는 ‘본격교양연극’을 표방한다. 각각의 주제를 담은 총 12장으로 구성됐으며 해설자가 극 전반을 이끌어나가는 다큐멘터리 형식이다. 7명의 배우는 그리스 비극의 독백부터 인공지능 로봇 연기까지 일인다역을 연기하고, ‘사랑’을 키워드로 다원화된 세계관을 반영한 영상 언어도 멀티스크린을 통해 선보인다. 1월 8~17일.
9~17일에는 창작집단 푸른수염이 ‘달걀의 일’을 공연한다. 남성 중심의 신화와 영웅의 이야기에서 탈피해 여성을 서사로 다시 쓴 현대판 신화물이다. 경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작품은 여성 고고학자와 할머니, 남성, 폭력, 유물, 전설, 신라 시대 ‘향가’를 한데 다룬다. ‘역사’, ‘전통’의 이미지가 강한 배경과 소재를 기반으로 그 속에서 새로운 시도·접근을 모색하는 형식이 돋보인다. 마치 자신을 둘러싼 알에 균열을 내고, 틈을 벌려 새 세상을 맞이하는 ‘알’처럼 말이다. 안정민 작가는 “인간 사회는 서사의 왕국이고, 그 서사가 정해준 대로, 반복되는 서사에 인생을 가두고 살아간다”며 “가부장 체제가 생산한 서사의 왕국을 새로 쓰려는 주인공과 함께해달라”고 작품 의도를 설명했다.
극단 산수유는 ‘누란누란’으로 무대를 이어받는다. 대학교수와 지식인 사회에 ‘구조조정’이라는 키워드를 던져 권위와 명예 뒤에 가려진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기업화가 진행 중인 대학을 배경으로 진리를 탐구하는 상아탑이 당면한 상황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그 속에서 위기를 절감하면서도 대응력을 상실한 다양한 인물들의 단면을 ‘누란지세’에 빗대어 바라본다. 홍창수 작가는 “대학이라는 곳이 진리 탐구라는 본질은 잃어버린 채 ‘살아남고 일류가 되기 위한 경쟁’만이 존재하는 곳으로 변질되는 것 같았다”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 자본주의화 되어가는 대학과 그 안에서 본래의 정서나 목적을 잃고 훼손되어가는 구성원들의 풍경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1월 22~31일.
극단 명작옥수수밭의 ‘깐느로 가는 길’도 기다리고 있다. 1998년 남파 간첩과 전직 안기부 요원의 목숨 건 ‘영화 제작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이념과 실존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간을 그린다. 영화광인 김정일이 지목한 한국 영화 필름을 입수해 북으로 보내는 임무를 맡은 두 명의 남파 간첩. 영화사 직원과 사장으로 위장해 착실히 임무를 수행하던 중 도저히 구할 수 없는 한 작품이 애를 먹인다. 주인공은 고민 끝에 자신이 직접 그 영화를 찍기로 하고, ‘칸 영화제 출품 영화를 만든다’는 거짓말로 사람을 모은다. 왕년의 에로배우, 노숙자, 음모론자, 사채업자가 모여 창고 안에서 영화를 찍는 광경은 좌충우돌의 연속이다. 코믹한 설정이 웃음을 자아내지만, 그 웃음 속엔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묵직한 질문과 울림이 담겨 있다. 인간은 자신의 절대적 신뢰의 대상이었던 이념이 통치와 억압의 기제였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을까. 이념의 진실을 알게 된 뒤 이를 벗어나 실존의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 1월 22~31일.
마지막 무대는 공연연구소 탐구생활의 ‘고역’이 장식한다. 인간이 타인의 삶을 위해 감내할 수 있는 불이익은 어디까지일까. 고역은 지난 2018년 여름, 예멘 난민 500여 명이 제주도로 입국해 난민 신청을 했던 상황을 다룬다. 공생과 배척 사이에서 한국사회가, 나아가 우리가 타인을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태도와 자세를 살핀다. 옳고 그름의 시선이 아닌, ‘다양한 시선’, ‘사유의 확장’에 방점을 찍고 이야기를 전개한다. 2월 19~28일.
자세한 공연 내용 예매·온라인 중계 일정은 창작산실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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