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은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 등에게 건넨 뇌물 액수를 86억 원으로 보고 이를 ‘적극적 뇌물’이자 ‘묵시적 부정 청탁’에 따른 것으로 판단했다. 정치권력의 압박에 마지 못해 돈을 줬는데도 뇌물 사건의 주범으로 규정한 셈이다. 그러면서 법원에서 권고했던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는 실효성을 충족하지 못했다며 양형에 반영하지 않았다. 그간 삼성이 보여온 도덕성 강화나 노조 활동 보장 등 준법 경영 노력을 애써 무시하고 경제부터 살려야 한다는 경영계의 간곡한 호소도 외면한 셈이다. 법원마저 여론 몰이와 반(反)기업 정서에 휘둘려 기업인을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은 이번 판결로 해외 인수합병(M&A)이나 신사업 진출 등 굵직한 의사 결정에서 차질을 빚고 신규 투자나 인력 채용도 어려움을 겪게 됐다. 글로벌 반도체 대전이 치열한 가운데 대기업 총수의 과감하고 신속한 의사 결정도 불가능해졌다. 이는 삼성뿐 아니라 미증유의 경제 위기에 직면한 우리 경제 전반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삼성이 조속히 ‘사법 리스크’를 해소하고 총수의 인신 구속이라는 최악의 사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다. 재판부도 지적했듯이 이 부회장과 삼성이 진정으로 반성하고 달라졌다는 사실은 향후 사법절차 등을 통해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 정치권력의 무리한 요구에 기업인들이 희생되는 불행한 사태를 과감히 끊어내지 못하면 그 피해는 결국 나라와 모든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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