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뉴욕 월가에서는 한 기업의 기업공개(IPO) 추진 소식이 화제가 됐다. 세계 최대 암호화폐거래소인 ‘코인베이스’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나스닥 상장을 위한 IPO 신청서를 제출한 것이다. 해외 증시에 소규모 암호화폐 기반의 회사가 상장한 적은 있지만 코인베이스처럼 대형 암호화폐거래소가 IPO를 추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혁신 기술 기업들이 모여드는 장(場)에 암호화폐거래소가 상장을 추진한다는 소식은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거래가 더 이상 투기나 도박이 아니라 주식처럼 금융자산으로 인정받고 투명하게 거래되는 시장으로 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코인베이스가 투자자들 앞에 당당히 나설 수 있는 배경에는 확 달라진 비트코인의 위상이 자리잡고 있다. 지난해 초만 하더라도 비트코인 1개의 가격은 900만 원 수준에 불과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한 3월에는 700만 원대까지 폭락했다. 하지만 하반기부터 상황이 반전됐다. 지난해 9월 1,200만 원을 돌파한 데 이어 12월 중에는 사상 최초로 3,000만 원을 넘어섰다. 올해 1월엔 4,800만 원까지 급등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의 초대 재무장관으로 지명된 재닛 옐런 전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암호화폐에 대한 부정적인 발언 이후 22일 기준 비트코인 가격은 3,500만원대까지 떨어졌지만 여전히 높은 가격대를 유지하고 있다.
시계추를 3년 전으로 돌리면 현재 비트코인의 위상이 더욱 드라마틱하게 느껴진다.암호화페기업공개(ICO) 광풍이 불던 당시 국내에서 비트코인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관료와 전문가·지식인들까지 합세해 비트코인에 ‘사기’ ‘거품’ ‘도박’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평가절하했다. 박상기 당시 법무부 장관은 “암호화폐 거래를 금지하고 거래소를 폐쇄하는 방안까지 추진하고 있다”고 경고할 정도였다. 암호화폐 투자자들 사이에서 ‘상기의 난’으로 불리는 이 발언을 기점으로 비트코인 가격은 급락했다. 투자자들은 떠났고 비트코인은 그렇게 잊혔다.
전문가들은 3년 만에 찾아온 상승장이 과거와 다를 것이라고 분석한다. 우선 금융 선진국을 중심으로 암호화폐 제도가 정비되면서 투자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의 질이 달라지고 있다. 이번 상승 랠리를 기관투자가들이 이끌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인 측면이다. 우리 정부도 이 같은 변화를 읽고 비트코인을 법의 테두리 안으로 유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오는 3월부터 특정금융정보법 개정안이 시행됨 따라 암호화폐거래소를 운영하는 사업자는 일정한 자격 요건을 갖춰야만 한다. 내년부터는 비트코인 투자로 벌어들인 소득에도 세금이 부과된다.
/도예리·노윤주 기자 yeri.d0@decent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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